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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상황의 급박함을 알 수 있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사람을 잡아먹는 땅을 떠나 궁으로 돌아오는 정문의 숨소리였다.
정문이 왕가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소식은 그새 백성들에게도 퍼져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궁으로 향하는 정문의 양 옆으로 늘어 선 백성들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서 오물을 퍼부어댔다.
정문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백성 중 누구 한명이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분위기였다.
아니, 백성들은 오히려 누군가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때 정문의 시야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황급히 인파를 빠져나가는 남자가 들어왔다.
익숙한 체구였다.
"찌에로!"
정문이 달려가서 찌에로의 망토를 붙잡고 벽으로 몰았다.
"당신이 배신하는 바람에 이게 무슨 꼴이야!"
급습당한 찌에로는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일단 이것 좀 놔요... 난 왕 시해자에요. 이런 곳에서 얼굴을 드러냈다간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요!"
"내가 바라는대로네!"
정문이 망토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군중은 칼 같은 눈빛들을 하고 정문과 찌에로를 둘러싼 반원을 좁혀오고 있었다.
'팅'
화살이 날아와 찌에로의 귀를 스쳐 찌에로가 기대있는 벽에 꽂혔다.
"으아악!"
찌에로가 피가 흐르는 귀를 손으로 감싸며 주저앉았다.
놀란 정문은 찌에로가 주저앉으면서 찢어져 자신의 손에 남은 망토자락과 화살을 번갈아 쳐다본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 활을 들고 걸어나와 주저앉아 있는 찌에로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너 이 자식! 믿었건만!"
출버나이트 준석이다.
찌에로는 찢어진 귀를 붙잡고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조언자 동민이 나를 궁으로 불러준다고 했어요. 나와 같이 가면 궁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거에요."
"난 궁 가까이에만 가도 병사들이 죽이려들텐데..." 준석이 중얼거렸다.
"그럼 일단 나랑 가요. 난 그래도 왕자의 약혼자고... 나는 받아줄거에요. 그 다음에 출버나이트를 부를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정문이 찌에로와 준석을 설득했다.
"그래요. 그럼 가시죠."
찌에로가 검은 망토를 정문과 함께 쓰고 골목으로 빠져 지나갔다
궁에서는 현민이 앙헬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앙헬란은 현민이 없는 동안 동민이 정문의 말을 듣고 자신을 내쫓았던 얘기를 해주었다
"그럴수가..." 현민은 시선을 땅에 깔았다.
앙헬란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네가 왕이되고.... 새로운 약혼자를 구했으면해"
현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호를 조언자로 임명하고 당분간 나의 섭정을 받아."
"...!"
현민은 이번에는 꽤 오래 고민하는듯 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현민은 그렇게 말을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현민이 나가는 걸 본 진호가 방으로 들어왔다
"바능이 갱차나요?"
"좀 고민하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동민과는 어릴때부터 사제지간이니..."
"의회를 소집해야겠어"
앙헬란이 일어섰다.
잠시후 왕비의 권한으로 의회가 소집되었다.
"조언자 동민이 판단 착오로 정문의 말을 믿었다가 왕실에 큰 위기가 닥쳤으므로
왕자는 정문과의 약혼을 파하고 진호를 새 조언자로 임명한 후 왕위에 오르는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안건이 상정되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정도 사건으로는 제가 조언자를 계속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안건을 들은 동민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두가지 투표를 하겠습니다
동민의 조언자직 지속 여부와
왕자와 정문의 약혼무효화 여부."
앙헬란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놔! 난 조언자의 부름을 받은 몸이다!"
"무씅 소란이양?"
진호가 밖을 내다보았다.
"왕 시해자가 정문아씨와 함께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병사가 찌에로를 회의실 한 가운데 무릎 꿇렸다.
"뭐하는 짓이냐! 나는 조언자의 은인이다! 날 받아준다고 하셨다!"
"하필 지금..." 동민이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게 사실인가요?'
현민이 동민에게 그럴리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입니다."
대신들이 술렁거렸다.
"왕 시해자가 조언자의 은인이라니.."
"아무래도 찌에로를 궁에서 받아 줄 것인지도 투표에 올려야겠네요.
정문이 저 자와 같이 궁에 돌아왔다고 했으니 모든 투표는 저와 왕자.동민.진호.정문 다섯명이 참여합니다."
앙헬란이 말을마치고 진호와 함께 회의실을 나갔다
동민은 정문을 찾아갔다
"다시 돌아올줄은 몰랐네요."
"그땐 정말 죄송해요...저는 아는대로 말한것 뿐인데..."
"저의 조언자직 지속과 아가씨와 왕자의 약혼 무효화 여부가 투표에 부쳐질거에요
나는 약혼 무효화에 반대할테니 내 조언자 직책이 지속되게 투표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동민은 찌에로를 다시 찾았다.
"이봐"
"...어..! 얼마나 잔거지?"
"아이씨. 상황이 이런데 자고 있어."
"사람을 잡아먹는 땅에서 도망쳐서 방금 도착해서 피곤하다구요."
그때 앙헬란의 시종이 동민을 불렀다.
"왕비께서 뵙고 싶으시답니다."
"여기에 정문아씨 불러놓고 기다려."
동민은 찌에로를 뒤로하고 앙헬란에게 향했다.
"동민을 아예 몰아낼 생각은 없어. 조언자가 아니더라도 왕의 호위대 대장에 임명해줄게."
동민은 조언자 자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한발 물러나는 척 했다.
"알겠습니다..."
동민은 정문과 찌에로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조언자 자리를 포기하는 척을 할거야. 그러면 저쪽은 날 다시 믿을테고 난 모든 정보를 당신들에게 가져올 수 있어."
동민이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절대로 내가 조언자 자리를 포기 안했다는걸 발설하면 안 됩니다.
자. 해산."
방에서 나온 정문은 고민했다.
"나와 동민의 표 만으로 내 투표에서의 승리가 보장이 될까?"
투표를 하는 사람은 다섯명이었다.
"..뒷길을 하나 파놓고 있어야겠어."
정문이 앙헬란에게 왔다.
방으로 들어온 정문을 앙헬란이 말없이 째려본다.
"조언자 동민이 조언자 직책을 포기한게 아니라고 하던데요."
"...뭐?"
"자기가 호위대 대장에 만족하는 척 하면서 안심시킬 거라고...."
"우리의 정보를 빼내려했다 이거야?"
앙헬란이 정색했다.
정문이 끄덕였다.
이 때 찌에로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소리를 듣게 된다.
"젠장!"
찌에로는 동민에게 향했다.
"그 여자가 왕비에게 다 털어놨어요."
"하...걘 왜그러니...."
"양다리를 걸쳤다고 밖엔 생각할수없죠."
분노한 동민은 진호와 함께 있던 앙헬란을 찾아갔다.
"정문아씨가 왕비께 얘기했죠?"
"그렇습니다만"
"그건 제가 그냥.."
"우리 정보를 다 주기로 했다는데?"
"그러니까 그건...제가
제가 정문을 안심시키려고..."
"...알았어요 믿을게요."
"어차피 왕비께서 원하시는대로 되게 되어있습니다.
전 그냥 조언자가 되면 되고 안되면 말겠습니다."
"정문은?"
"정문아씨는 계속 배신한겁니다.
어디에도 없죠."
"...몰아내자는거지요?"
"어쩔 수 없는거죠 ."
"그럼 조언자는 날찍능거디?"
진호가 옆에서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는 날 찍어야지..."
동민이 이야기했다.
"그럼 조엉자욕씨미 이따는마링 사실이어꾸만!"
"난 그래도 가능성을 걸어봐야 하지 않겠어?"
"무승소리양 그게!"
동민은 진호의 외침을 들으며 방을 나왔다.
"아...이건 너무한거다...
내가 날 찍는것도 못하게하다니..
이건 너무한거야.. 이건 전쟁이야."
방을 나온 동민은 정문과 마주쳤다.
"아가씨가 왕비나 진호한테 무슨말 했어요?"
"네? 뭐요? 아닌데요?"
"하..."
동민은 깊은 밤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투표날이 되었다.
가장 먼저 정문의 투표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3:2 정문과 현민의 약혼은 지속되게 되었다.
"...어떻게?"
동민이 결과를 보고 흠칫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앙헬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진호가 정문을 데리고 나갔다.
"아가씨가 아무거또 못해보공 쪽겨나는게 안탁가어성
제가 왕자를 설득해 투표했어영
그로니까 조언자로 저를 뽑아세영."
"...고맙습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네"
다시 들어오는 진호와 정문을 보고 동민이 중얼거렸다.
다음으로 조언자 투표가 있었다.
"이길 수 있는 거야?"
앙헬란이 진호에게 물었다.
"내가 알기롱...정문아씨가 나 찍어여!"
동민은 찌에로를 찾아갔다.
"너는 이대로면 그냥 쫓겨나는건데 괜찮아? 왕자 설득해볼까?"
"조언자 투표부터 설득해요.
당신이 조언자여야 나 한테도 궁에 다시 돌아 올 여지가 있죠.
전 기쁜 마음으로 나갈 수 있어요."
동민은 현민을 쉽게 설득해 냈고 결과는 동민의 3표 승리였다
"...! "
진호는 정문이 자기를 찍지 않은걸 알아챘다.
현민과 동민,정문이 동민에게 투표했으리라.
"ㅇ야앙.....충겨쩌기다...."
마지막으로 찌에로의 투표였다.
찌에로는 1대4로 쫓겨나게 되었다.
"뭐야? 동민은 날 궁에 불렀고
정문은 나와 궁에 남아서 출버나이트를 부르기로 했는데?
2표는 나왔어야해!"
진호가 찌에로에게 다가왔다.
"정문아씨강 왕전 배싱항거아라?"
"네?"
"동밍이 계획도 다 말해꿍. 그여자는 나와의 계약도 지키지두아나씅.
그냥 자기가 약콘자 싱분이 지켜징거 알구 널 버링그양."
찌에로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동민이 찌에로를 배웅해주러 왔다.
"미안하다. 제일 고생하고... 네가 궁에 남았어야 되는데..."
"조언자 자리 지키셨으니까 나중에 또 방법이 있겠죠."
"그래. 잘 가라."
"근데.... 저 마지막으로 사고 한 번만 치고 가도 쉴드 쳐 줄 수 있어요?"
"무슨...?"
"배신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민은 그게 정문이란걸 알아챘다.
"흠... 난 못 들은거다. 빨리 갔다와."
찌에로가 칼을 빼들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큰 목소리가 궁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배신하고도 편히 살아남을 줄 알았지!"
“내가 궁에 오래 없었다고 네 방을 기억 못 할 줄 알았지!
흐흐흐흐!!”
광기 섞인 웃음소리가 궁에 울렸다.
3층 방에 있던 정문은 놀라서 황급히 방문을 닫고 문 앞으로 침대를 밀었다.
“스머프 동상을 지나서!”
찌에로의 목소리가 1층에서 들렸다.
정문은 급히 숨을 곳을 찾았다.
"별이 보이는 테라스를 지나서!"
찌에로의 목소리가 2층에서 들렸다.
정문은 허겁지겁 옷장 안에 몸을 숨겼다.
"왕자의 싱싱한 물병을 지나서!"
찌에로의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정문은 숨을 죽였다.
"똑똑똑"
찌에로의 목소리가 문 앞에서 들렸다.
정문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쿠당탕!'
문을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문은 두려움에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똑똑똑”
찌에로의 목소리가 옷장 앞에서 들렸다.
진호가 정문의 방 문을 닫고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끼이이익'
옷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방 안은 여자의 비명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꺄아아아아악!”
1층에선 동민이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내 소리가 잠잠해졌고 새빨간 칼을 든 찌에로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궁을 빠져나갔다.
궁을 빠져나가는 찌에로의 땀과 피로 물든 찢어진 귀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쫓을까요?” 동민의 부하가 물었다.
“쫓는 척만 해.” 동민은 뒤를 돌아 방으로 향했다.
진호가 방 안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을 나왔다.
현민이 뒤늦게 방으로 뛰어와 정문을 품에 안고 창백한 볼을 만져본다.
앙헬란이 현민을 안아주며 쓰러진 정문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정문은 죽었다.
그녀를 죽인 건 찌에로였지만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궁의 모두이기도 했다.
며칠 후 준석은 정문의 장례 행렬을 목격하게 된다.
준석은 장례행렬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궁궐이다.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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