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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6 - 明堂과 名家

운영자 2019.04.08 14:57:35
조회 281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6


明堂과 名家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돌무더기 투성이인 산길을 달리는 지프차가 몹시 흔들렸다. 앞자리에 앉은 김병진이 차창 밖 도로를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고조할머님과 증조할머님 모두 이 선운사에 와서 불공을 드리고 이 일대의 전답을 엄청나게 시주(施主)하셨어. 절의 스님들도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안에 끔찍했지, 김요협 고조할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선운사 주지스님은 묏자리를 봐 주신다고 자청하셨어. 그리고 지금의 선운사 뒤쪽에 있는 명당자리에 김요협 고조할아버님을 모시라고 했어, 우리 집안에서는 그 스님의 말씀대로 했지.” 

선운사 뒤쪽의 울창한 숲길은 햇빛이 들지 않아 음음(陰陰)한 그늘을 이루고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로 나있는 길에는 허리까지 자란 풀들이 무성했다. 지프차는 바위가 튀어나온 산길을 힘겨운 엔진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차가 더 올라가지 못할 가파른 지점에 이르자 숨이 넘어갈 듯 엔진이 비명을 질렀다.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지금 가는 곳이 조선 최고의 명당 자리래. 우리 고조부이신 김요협 할아버님을 여기에 모신 후에 증조부님이 경주 최(崔)부자를 누르고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셨지. 큰증조부님은 백양사 뒤쪽의 산꼭대기에 묻히셨는데 그 자리도 명당이야. 거기 올라가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줄기들이 물결치듯 그곳을 감싸고 있어. 풍수지리로는 포란(抱卵)이라고 해서 최고로 좋다는 곳이지. 묘를 거기에 잘 쓴 탓인지 우리 할아버님이 일제시대 조선 최초의 재벌회장이 되셨지. 우리 할아버님이 경성방직을 모체로 계열기업을 확장하면서 만주까지 사업제국을 펼치셨지.”

그는 숨을 고르기 위해서 잠시 제자리에 섰다. 그가 얘기를 계속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우리 집안의 묘가 워낙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니까 밤새 어느 집에서 산꼭대기까지 조상의 시신(屍身)을 가지고 올라와 우리 묘 앞에 몰래 묻었던 일이 있었어. 정말 대단한 집념을 가진 사람들이야. 어떻게 시신을 모시고 그 험한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느냐 말이야, 그것도 한밤중에 말이지. 그게 발각이 되자 우리 김씨가에서 문중회의를 했지, 몰래 묘를 쓴 그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할 건지 말이야. 

결론은 그냥 놔두기로 했어, 밤중에 그 고생을 하고 올라와 묘를 쓴 건데 어떻게 다시 파가라고 하겠어? 하여튼 명당 덕분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그 집안에서도 국회부의장이 배출됐지. 그 명당을 쓴 후에 우리 집안에서 부통령이 나왔지. 또 그 아랫대에 와서 고대 총장을 하셨던 김상협(金相浹) 둘째 숙부님이 장관도 하고 국무총리도 하셨지.” 

이마와 목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거대한 동백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옆을 지나고 있었다. 김병진이 그 숲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 우람하게 들어차 있는 동백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원래는 우리 고조부님 묘지 주위에 자생하던 작은 동백나무들이었는데 말이야. 여기 산도 동백나무 숲도 모두 우리 고조부님 소유였지. 이 선운산도립공원 대부분이 우리 집안 땅이었어. 고조모님이 그걸 절에 공양하신 거지.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대(代)가 바뀌니까 이 안에 들어오는 것조차도 절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니까.”

어느새 하늘을 덮고 있던 숲 사이에서 손수건 펼친 것만 한 하늘 조각이 보였다. 그 사이로 신기루같이 고풍스런 솟을대문과 이어진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다 왔다. 여기가 우리 고조부님의 재실(齋室)이야.”

고급 백송으로 지은 솟을대문이 보였다. 유약을 발라 구운 기와가 햇빛을 받고 도자기같이 번쩍거렸다. 대문에 걸린 녹슨 둥근 자물쇠를 성 지점장이 열었다. 끼이익 하고 경첩이 마찰음을 내며 묵중한 나무문이 열렸다. 갑자기 황량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주춧돌만 듬성듬성 보였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김병진이 설명했다.

“10여 년 전에 갑자기 이곳 재각(齋閣)에 불이 나서 다 타 버렸어. 문화재 가치가 있는 귀중한 건물이었는데 말이야. 듣기로는 승려 중에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방화를 했다고 하기도 하고 여러 소문이 있어.”

재각 뒤쪽에 조그만 문이 보였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묘로 가는 돌계단이 있었다. 옆으로 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진홍색과 노란색의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은은한 꽃향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잠시 후 커다란 봉분이 보였다. 김요협의 묘였다. 김병진이 상석(床石) 앞에서 절을 했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고 아래로 평화로운 마을과 냇물이 내려다 보였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방학이면 더러 이곳을 찾아왔었지. 특히 한겨울 눈이 하얗게 쌓였을 때 사진기를 메고 여기에 오곤 했었어. 여기는 정말 자연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야.” 

우리는 묘지 앞 잔디에 앉아 잠시 쉬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으로 인촌리에 있는 인촌(仁村) 생가를 찾아갔다. 논 사이에 한옥이 보였다. 김요협과 정씨 부인이 살았다는 집이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집들을 구성하는 목재들을 한번 잘 살펴봐.”

김병진 회장이 내게 말했다. 대들보나 서까래 그리고 기둥들의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왜 저렇지?”

내가 물었다.

“고조부님에 이어 증조부님 때 이 집이 지어졌는데 인근의 집터에서 폐자재들을 구해다가 그걸 조립해서 이 집을 지으신 거지. 지독히 검소하셨다고 그래.”

그의 증조부는 김요협의 아들인 지산 김경중(金暻中)이었다. 김요협이 중소지주(中小地主)가 되어 시작을 했다면 김경중 대에 이르러 조선 말 전라도 최고 갑부 소리를 듣게 됐다. 나는 창호문이 닫혀 있는 앞채의 툇마루로 갔다. 주먹만한 자물쇠가 문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방구석에 낡은 베틀이 보이고 벽에는 빛바랜 노란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 베틀은 뭐지?” 

내가 뒤에 있는 김병진에게 물었다.

“그건 정씨 할머님이 시집을 오셔서 그 방에서 살림을 시작하셨을 때 밤새 쉬지 않고 베를 짜셨다는 베틀이야.”

김씨가의 나지막한 담 옆으로 옆집의 처마 끝이 보였다. 퇴락한 모습이었다. 

“저 집은 누구 집이지?”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집은 김요협 고조할아버님의 장인 되시는 인촌리 갑부 정계량 님의 집이지. 원래는 집안에 돌로 만든 구름다리가 있을 정도로 호화로운 집이었는데 집안이 망하면서 저 흔적만 남았다고 그래.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어. 여기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터도 6·25 사변 때 여섯 가구가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님이 그 사람들에게 집과 과수원이나 전답까지 마련해 주고 나가게 한 후에 이렇게 다시 복원하신 거지.”

70대쯤의 안내인이 보였다. 그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경주 최부자를 누른 조선 갑부 김경중 증조부님이 태어났고 다시 그 아들인 김성수(金性洙) 부통령과 재벌 김연수(金秊洙) 회장이 나셨죠. 그 외에도 6·25 때 그 집을 지키던 사람에게서 정운천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는데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 농수산식품부장관이 됐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지프차로 10분쯤 걸리는 반암리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들녘에서 풋풋한 흙냄새가 바람을 타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야트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한가운데 돌담이 쳐진 소박한 구역이 보였다. 

“여기가 정씨 할머님 묘소야.”

김병진이 말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밤이 새도록 베를 짜고 장작을 아끼느라 요강이 얼어터지게 했다는 주인공이었다. 조선 갑부의 전설이 된 정씨 부인은 무덤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정씨 부인의 둘째 아들 김경중이 조선 말 최초의 기업적 지주이자 지금도 존재하는 동아일보, 고려대학과 삼양사 그룹의 초석(礎石)이었다. 조선 말 김경중은 어떤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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