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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침 놓는 천사

운영자 2021.04.05 10: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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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침 놓는 천사




녹내장이 있어 서울대 병원 안과부터 시작해서 여러 곳을 다녔다. 미국의 죤스홉킨스병원 안과의사로 있는 친척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매달 찾아가는 녹내장 전문 안과 선생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동경대학교 의과대학에 가서 녹내장에 관련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었다. 그 분이 이렇게 말했다.

“녹내장은 회복될 수가 없는 병이야. 시신경이 상한 거야. 그냥 현 상태만 유지하면서 지내다가 끝을 보아야 해.”

그게 나의 현 상태이다. 하나님이 이제 보는 걸 줄이라고 시야를 좁혀주신 것 같다. 다행히 칠십 고개를 앞에 둔 아직도 흐릿하고 눈이 아파도 책을 볼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안 보일 때까지는 독서를 하고 글을 쓸 예정이다. 변호사로서 걸을 수 있는 한 법정에도 가기로 했다. 변호사로서 시작했으니까 변호사로 끝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는 약하고 돈 없는 사람을 위해 법정에서 말 한마디, 법률서류를 통해 글 한줄을 써 주는 건 보람 있는 일이다. 돈에의 탐욕이라는 독만 빼버리면 변호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공권력에 대한 투사도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약한 존재인 것 같다. 눈이 불편하니까 성경 속의 기적처럼 어느날 글씨가 디지털 화면같이 잘 보였으면 하는 소망을 은근히 가지기도 한다. 어느 날 대학동기이고 변호사인 친구가 내게 진지하게 이런 말을 했다.

“침을 놓는 내 친구가 있어.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이야. 자기 사업을 하면서 병자들에게 침을 놓아주는데 돈을 받는게 아니라 침을 맞으러 오는 사람마다 오히려 선물을 줘. 사업도 바쁜데 시간을 내서 침을 놔주고 꼭 뭔가 또 베풀어준단 말이야. 나는 옆에서 대학병원에서 못 고치는 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와서 당장 회복되는 기적을 여러 번 봤어.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일어서서 나가는 걸 봤단 말이야. 그러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한번 가보는게 어때? 내가 한쪽 다리를 못쓰잖아. 나머지 한쪽 다리도 힘이 빠져서 그 친구한테 가서 침을 맞으니까. 다리에 힘이 붙는 거야. 내 경험이 그래.”

그가 성의를 다해 진지하게 내게 권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권고에 응하지 않았다. 그냥 늙고 병이 드는 걸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생각이었다. 희망을 가지는 순간 그 뒤에 절망이 따라붙어 올 가능성이 많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열정에 등을 밀려 이년 후에 침을 놓는다는 친구의 고교동기라는 사람을 찾아갔다. 사업가로 풍요하게 잘 사는 사람 같았다. 그의 방에는 그가 취미로 수집하는 골동품도 있고 악기 클라리넷과 기타도 있었다. 믿음이 깊던 그는 젊은 어느 날 갑자기 두 손가락이 타는 듯한 신비체험을 겪고 나서부터 수지침을 놓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겪은 기적 같은 치유체험을 내게 몇 가지 얘기해 주었다. 갑자기 성경 속의 앉은뱅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베드로가 구걸을 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다가갔다. 거지인 앉은뱅이는 돈을 줄까 하는 기대의 눈빛으로 베드로를 올려다 보았다.

“저는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진 걸 드리죠.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베드로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순간 기적이 일어나 그는 정상인 같이 걷게 된 것이다. 나는 침을 놓는 사업가에게 나를 그에게 데리고 간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친구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다고 하는데 고교동창인 친구의 다리는 못 고치십니까?”

“저 친구의 다리는 너무 오래됐습니다. 고치기에는 늦었죠.”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싱싱하던 새 자동차도 세월이 흐르면 바퀴가 터지고 기름이 새고 헤드라이트도 고장이 났다. 칠십 고개의 우리들도 그런 자동차의 상태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침을 놓는다는 그가 진땀을 흘리면서 성의껏 침을 놓아주는 성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는 두 달가량 침을 맞으러 다녔다. 어느 날 눈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고정적으로 가는 안과에 가서 시야 검사를 했다. 그 안과 선생님은 시야의 일부가 뚫렸다고 의아해 했다.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걸 보고 나는 감격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녹내장인 눈에 짙은 안개가 다가와 시야를 가렸다. 항상 포도막염이 겹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걸 받아들임이 깨달음 아닐까. 엉뚱하게 나는 그 분이 보내주신 천사 같은 좋은 친구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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