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빈 헌금주머니

운영자 2011.04.07 12:05:57
조회 239 추천 0 댓글 0

바람 같은 여행길에 두 번 만난 노인이 있다. 나이 칠십인 그는 뒤늦게 한을 풀 듯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정말 돈에 혈안이 돼서 사업을 하다가 나이 오십에 부도가 났어요. 그때 생각하니 허망했어요. 인간성도 사람도 재산도 모든 것을 잃었어요…”

그에게 씌워진 멍에는 부정수표 발행범이었다. 도망을 다녔다. 피신할 곳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비로소 그는 스쿠리지 영감으로 살아왔던 과거를 느꼈다. 주위에 너무 인색했었다. 그는 자수를 하고 감옥에 들어가 6개월을 복역했다. 지명수배란 족쇄를 찬 상태에서는 죽을 때까지 도망자였다. 다시 일어설 실낱같은 희망도 없었다. 출소 후 나타난 그에게 아내는 생활비가 없다고 울상이었다. 아이들이 다 기가 죽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는 쌀값을 구걸하다 시피 했다. 두 번 찾아가면 안줘도 처음에는 약간씩의 성의는 보이는 게 그래도 세상인심이었다. 그는 낡은 봉고를 몰고 다시 공사판에 뛰어들었다. 나이 오십이 넘은 그가 재기하려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혀를 찼다. 절망에 도전하려는 그가 측은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망하고 나니까 비로소 교회에 나가게 되더라구요. 하나님한테 내신용도를 평가받는 방법은 그 동안 얼마나 맡겼나 하는 건데 내가 하나님에게 낸 돈이 전혀 없었어요.”

노인이 씩 웃었다. 안경 뒤로 보이는 감긴 듯한 작은 눈에서 빛이 났다.


“나 교회에 나가서도 어떻게 사기친줄 아슈? 현금함이 올 때 맨손을 그 속에 넣었다 빼면서 돈 낸 것처럼 가장했지. 그래서 그걸 확인하지 않는 소망교회를 나갔지.”

그가 멋쩍은 듯 식 웃었다. 그가 덧붙였다.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 아니요? 그래서 장학금도 조금 내놓고 이렇게 쫓기듯 여행도 다니지……”

그는 여행이란 단어조차 몰랐다. 일하고 또 일을 했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십년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아내도 시어머니 병수발을 하느라고 지쳤다. 환갑이 넘었다. 난생 처음으로 자식들이 동남아를 다녀오시라고 주선했다. 처음으로 외국구경을 하고 돌아오면서 그는 ‘인생이 개미처럼 일만 하는 게 아닌데……’하고 느꼈다. 그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죽으면 이 세상은 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 전에 구경이라도 해야 세상을 살다간 게 되는 것이었다. 부부는 여행단 여기저기에 끼어 구경을 시작했다. 한 서린 여러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육십대 중반의 남자 곁에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의 허리 중간에는 창자를 빼고 똥봉지를 채워놓고 있었다. 악취가 심했다. 심지어 그의 부인마저도 옆에 앉기를 꺼렸다. 평생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만 돈만 하면서 살아온 그가 병에 걸렸다. 국을 날이 멀지 않았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을 줄 알았던 내일이 이제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봉지를 허리에 차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런 한풀이 여행의 노인들이 제법 많았다. 한 노인은 어울리지 않게 온갖 고급제품을 몸 가득 채웠다. 로렉스금딱지에 세계명품 옷들을 입었다. 알고 보니 그는 ‘아바이’라고 불리는 실향민이었다. 소주 한잔 값도 아끼면서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이제 남은 날이 얼마 안 된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소중하게 모아둔 돈을 일부라도 쓰려고 악을 썼다. 그러나 몸과 세월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는 허둥지둥 많은 고급품을 사서 몸에 두르지만 그 효용과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올가미에 걸려 당황하는 짐승보다 더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때그때 인생을 즐기도록 하세요. 시간 역시 마찬가집니다. 허송세월을 보내지 마세요.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더라구요.”

나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회환의 덩어리를 느꼈다. 그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차를 놓친 승객의 안타까운 달음박질이었다. 인생이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삶은 하나의 과정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 젖 냄새나는 아기가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주름살 많은 노인으로 변해간다.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보며 한 잔의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고마움과 잔잔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 행복은 결코 돈의 액수나 거창한데 있는 게 아니니까.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515 한우물정수기 강송식 사장 운영자 11.06.30 583 1
514 어떤 치과의사 [1] 운영자 11.06.30 477 0
513 감옥갔다온 수의사얘기 - 희랍인 조르바가 된 부자수의사 [1] 운영자 11.06.30 352 0
512 사과 한 알, 우동 한그릇의 추억 [1] 운영자 11.06.28 278 0
511 김동리아들 김평우변호사 - 좋은 선배들 운영자 11.06.28 5302 0
510 티파니의 보석과 검정 슬리퍼 운영자 11.06.28 269 0
509 각오한 가난 뒤의 자유 운영자 11.06.23 418 0
508 변호사와 조폭 [1] 운영자 11.06.23 618 2
507 사법종사자들의 말과 태도 운영자 11.06.23 396 1
506 어느 무신론 철학지망생의 변신 운영자 11.06.21 257 0
505 위대한 유산 운영자 11.06.21 188 0
504 악령과 자유인 운영자 11.06.21 252 0
503 노르웨이바다에서 만난 두 선배 [2] 운영자 11.06.16 445 0
502 고 김대권검사 약전 운영자 11.06.16 1211 0
501 착한 부자의 분노 운영자 11.06.16 322 0
500 황혼이혼 - 아낌없이 주는 아내 운영자 11.06.14 455 0
499 좀도둑 아줌마의 소망 운영자 11.06.14 292 0
498 쇼생크탈출 운영자 11.06.14 620 0
497 들었다 놓더라구요 운영자 11.06.09 262 0
496 가족은 사랑입니다 운영자 11.06.09 235 0
495 검은딸기의 겨울 운영자 11.06.09 280 0
494 오윤덕 변호사의 돈 쓰는 법 운영자 11.06.02 662 1
493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 4 [1] 운영자 11.06.02 290 0
492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 3 운영자 11.06.02 241 0
491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 2 [1] 운영자 11.05.31 359 0
490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 1 운영자 11.05.31 450 1
489 변호사 저널리즘 운영자 11.05.31 205 1
488 내가 만난 어떤 천사 운영자 11.05.26 305 0
487 도둑엄마의 모정 운영자 11.05.26 218 0
486 어느 노화백의 곤혹 운영자 11.05.26 232 0
485 멍들어 버린 엄마의 사랑 운영자 11.05.24 247 0
484 박쥐장 명인의 서러움 운영자 11.05.24 238 0
483 어느 장군의 죽음 운영자 11.05.19 481 0
482 변호사를 그만 때렸으면 운영자 11.05.19 308 1
481 가수와 변호사 운영자 11.05.19 297 0
480 스승 변호사 운영자 11.05.19 250 0
479 예술인 K교수의 추락 운영자 11.05.17 351 0
478 법과 인간 사이에 낀 K부장판사 운영자 11.05.17 362 1
477 감옥희망자 땅꼬마 아저씨의 사연 운영자 11.05.17 255 0
476 어느 심부름센터 직원의 고백 운영자 11.05.13 839 1
475 마음좋은 쌀가게 아저씨의 수난 운영자 11.05.13 278 0
474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아요 운영자 11.05.13 269 0
473 어느 공무원의 성급한 사랑 운영자 11.05.10 478 1
472 숨어서 함께 사는 천사 [1] 운영자 11.05.10 259 0
471 공장에 나가는 장군부인과 전기공 할아버지 운영자 11.05.10 406 1
470 작은 천사의 진짜사랑 운영자 11.05.05 258 0
469 어느 아버지의 절규와 냉냉한 법정 4 운영자 11.05.05 294 0
468 어느 아버지의 절규와 냉냉한 법정 3 운영자 11.05.05 268 0
467 어느 아버지의 절규와 냉냉한 법정 2 운영자 11.05.05 284 0
466 어느 아버지의 절규와 냉냉한 법정 1 운영자 11.05.05 351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