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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변호사

운영자 2011.05.19 18:49:43
조회 249 추천 0 댓글 0

  변호사실무교육을 돌아가신 김정규 변호사 사무실에서 받았다. 아버지 같던 그 분은 작달막한 키에 비해 코가 유난히 크고 작은 눈은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정동교회 앞에 있던 그의 사무실로 매일 출근해서 변호사의 일상을 관찰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그분은 적막한 사무실에서 규칙적으로 독서를 했다. 법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축적되어야 하는 게 변호사인 것 같았다.

 


  오전에 예약된 의뢰인이 한 사람 정도 찾아오면 김변호사는 잠시 소곤거리듯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하도 조용한 목소리라 옆에 있어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김변호사가 하는 말은 아주 간단했다. 흐음, 하고 공감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래서요? 하고 가끔씩 관심을 보이곤 했다. 상대방의 두서없는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 하세요”라고 했다.

 


  화가 들끓던 사람들이 마음이 풀어져서 기분 좋은 얼굴로 스스로 결론을 내곤 했다. 의뢰인의 말 몇 마디를 듣고 다 안다는 듯 성급한 결론을 내려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젊은 시절 한번 인연을 맺었던 의뢰인들은 김 변호사와 함께 늙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단골고객하고만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법률사무소를 돌아다니면서 지식을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극히 싫어했다. 평소에 양 같던 김 변호사도 그런 사람들이 오면 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안에서 양손으로 밀면서까지 그들을 완강히 거부했다. 교활하고 탐욕스런 인간들을 아예 차단하는 것 같았다.

 


  그는 손안에 호두 두 개를 쥐고 빠작 소리가 나게 문지르면서 법적 쟁점을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결론이 나면 흰 종이위에 준비서면의 문안을 작성했다. 기껏해야 한 두 패러그래프 정도였다. 판사들은 그 문장들을 그대로 판결문에 담았다. 법리나 진실에서 신용을 인정받은 것이다.

 


  내성적인 그는 사건유치를 위해 인위적으로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법률사무소를 개업할 때 친구들은 고립된 그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변호사인 그는 학 같은 선비의 인상을 풍겼다. 변호사실무교육이란 법률서류 몇 장 작성하는 걸 배우는 게 아니었다. 훌륭한 변호사의 삶의 한 토막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적막한 사무실, 독서, 진지한 법률검토와 소박하고 겸손한 생활을 나는 스승변호사에게서 배웠다.

 

  어느새 26년이 흐르고 내가 어느새 그분 나이의 변호사가 됐다. 지금 나는 적막한 사무실에서 경전을 읽고 독서를 한다. 옛 선비들은 초당을 짓고 만권의 책을 읽는 행복은 삼대 적선을 하고도 받기 힘든 축복이라고 했다. 변호사의 특권은 세상 눈치를 보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의뢰인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만난다. 오랫동안 훈훈한 관계를 지녀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갓김치를 담아주기도 하고 한과나 떡을 만들어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책상위에는 젊은 시절 봤던 곽윤직 박사의 민법교과서가 노랗게 찌든 채 놓여 있다. 페이지 중간 중간에 촛농이 묻어 있다. 산사에서 촛불을 키고 볼 때 떨어졌던 자국이다. 젊은 시절 죽을 때까지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 책을 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법률가로서 녹슬지 않으려면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볼 때가 많다. 좋은 변호사는 사랑과 감동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걸 담을 수 있는 마음그릇이 있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과 소박한 삶을 깨닫는다면 실제로 파산하거나 굶어죽는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요즈음 로스쿨에서 ‘법률가의 길’을 특강해 달라는 요청이 온다. 연수원생들이 팀을 짜 말을 들으러 오기도 한다. 판사들이 바른 재판을 위해 어떤 언행을 할 것인가를 강연해 달라고 한다. 스승변호사를 보고 따른 결과가 약간의 성공을 이룬 것 같다. 높은 지위나 많은 돈만이 성공한 변호사의 상징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지 마음을 비울 수 있는지가 훌륭한 변호사의 가치기준이 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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