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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덕 변호사의 돈 쓰는 법

운영자 2011.06.02 15:06:12
조회 662 추천 1 댓글 0

  대한변협 임원들과 기자들이 만나 얘기하는 간담회에서 기자대표가 건배를 제의하면서 말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변호사는 불쌍한 사람을 돕고 정의를 상징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종악역을 전담하고 부정부패에 머리를 빌려주는 악의 상징같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변호사 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뼈있는 말이었다. 옥의 티만 보고 전체를 더럽다고 한다는 반론을 제기 할 수도 있었다. 변호사들 대부분은 사실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말만으로는 안 된다. 변호사사회를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가 있는 가 하면 그걸 정화하는 숨은 천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보여줘야 한다.

 

  우연히 오윤덕 변호사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그러고 보니 기억의 저쪽 깊은 바닥에 고여 있던 오윤덕 변호사의 고시합격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실패의 연속을 솔직히 기록해 놓은 감동 깊은 겸손한 글이었다. 그런 그가 힘들어 하는 후배변호사들을 위해 5억원을 협회에 쾌척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아나 노인 병자를 위해 기부한다는 소리는 들어봤다. 그러나 변호사들을 위해 기부한다는 건 얼핏 뇌리에 와 닿지 않았다. 세상은 변협을 더 이상 공익단체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더구나 기부를 해도 세금감면이 되는 데서도 빼버린 상태 같았다. 그런 곳에 선배 오윤덕 변호사는 거액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오 변호사는 이미 많은 선행을 소리 없이 실천해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거액의 장학금을 이미 대학과 종교단체에 남몰래 내놓았었다. 돈만 내는 게 아니라 시간과 땀도 흔쾌히 바쳤다. 그는 신림동 고시촌지역에 건물을 빌려 남몰래 좌절한 고시낭인들의 영혼을 구제 해 왔다. 그를 부장으로 모셨던 배석판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매년 연초의 한가한 철이 되면 부장판사인 오윤덕은 고전서적 20권 정도를 구해 배석판사들의 책상위에 놓아주었다고 했다. 좀 더 깊은 지혜를 가진 인간이 되라는 메시지였다. 배석 판사들이 그 책을 읽는 기간 동안은 사건기록을 일체 읽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부하들은 그가 인간존재의 본질을 추구하는 정말 존경하는 상관이었다고 지금도 말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객관적인 증명은 충분했다.

 

  봄비가 가늘게 뿌리던 지난 4월26일 오후 3시경 교대역근처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미 그는 합격기 속의 청년이 아니고 장년의 판사도 아니고 황혼을 맞이한 학자풍의 칠십 노인이었다. 다섯평 정도의 좁은 사무실 안은 곳곳에 기록과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오래된 청색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단정히 받쳐 입은 형형한 눈빛의 그와 마주앉았다. 변호사라 그런지 관심은 로스쿨과 앞으로 쏟아져 나오는 후배 변호사들에 대한 얘기였다. 연수원출신과 로스쿨출신들이 2천5백명 가량 나오고 그들 사이에 혹시라도 반목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법조의 분위기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중심에 서 있는 입장이기도 했다. 아들 형제중 한 사람은 연수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내년부터 많은 변호사들이 배출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예전과는 달라진 환경은 오히려 변호사들이 겸손을 배우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특권의식이나 선택됐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없어요. 대접받는데 익숙해지면 봉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많은 숫자의 변호사가 탄생하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법치주의를 앞당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법조인의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걸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계속했다.

  “저는 앞으로 배출되는 변호사 중에서 틀림없이 대통령이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미국대통령 오바마 보세요. 컬럼비아 로스쿨 졸업하고 억대연봉을 받을 수 있으면서도 그걸 포기하고 시카고의 빈민굴에 들어가 활동했어요. 스스로를 흑인이라고 정의하고 그들을 위해 뛰었어요. 위대한 미국대통령은 바로 그런 겸손과 자기희생 속에서 탄생한 겁니다. 우리나라 젊은 변호사들 중에도 앞으로 그런 사람이 나올 겁니다. 역 앞에서 노숙자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먹을 걸 주는 그런 변호사들이 탄생한다면 빈부격차에서 오는 극단적인 혁명도 사전에 막고 법의 강물같이 흐르는 세상을 만드는 대통령이 되는 세월이 분명히 올 겁니다.”

 

  그는 어둠속에서 새벽을 보고 먼 앞날을 보는 지혜를 가진 분이었다. 후배로서 변호사의 도(道)에 대해 듣고 싶었다.

 

  “변호사란 뭐라고 보십니까?”

  내가 물었다.

 

  “판사도 해보고 변호사도 해 봤는데 아무래도 판사보다는 변호사가 진실을 더 안다고 봐요. 직접 찾아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최고의 변호는 논리나 법리가 아니고 감동을 얻고 그걸 변론이라는 그릇에 담는 거죠. 감동이 빠진 변론은 이미 변론이 아니죠.”

  한마디 한마디가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였다. 그가 계속했다.

 

  “변호사를 개업하고 8년 동안 한주도 거르지 않고 구치소를 갔었어요. 거기서 법정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아 이거구나’하는 가슴 뭉클한 걸 발견했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찜통같은 구치소에서 하루 종일 사연을 듣곤 했어요. 돌아와서는 밤새 수십장의 변론 요지서를 썼어요. 더러 법정에서 내가 울어버린 경우도 있었다니까요. 변호사가 먼저 감동하지 않고 절대로 판사의 마음을 뒤흔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수감자들에게 나를 흔들 수 있도록 반성문을 써보라고도 요구하기도 했어요.”

  가을 계곡물 같이 맑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게으른 변호사는 말할 것도 쓸 것도 없다고 그는 얘기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슬펐던 때는 없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변호사마다 숨어있는 애환도 많다.

 

  “무죄를 확신했던 사건이 엉뚱하게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 정말 화가 났습니다. 법대에서 내려와 방청석에 섞여앉아 보니까 재판받는 사람들의 절반은 판사들을 저주하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너는 20년 동안 판사생활을 어떻게 했니?라고 말이죠.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담당 판사에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근원은 믿음인 것 같았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에게 법률지식은 연료고 믿음은 불이었다. 불이 없는 지식은 아무리 많아도 연소될 수 없었다.

 

  “고시낭인을 돕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동기로 그런 활동을 하셨죠?”

  내가 물었다. 왜 그들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들 둘을 뒀는데 모두 공부를 잘해서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아들형제는 저희 부부의 기쁨이었죠. 둘째는 안 보내려고 했는데 기어이 법을 공부하겠다는 거였어요. 아들형제가 법대 합격했을 때는 출근길에도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죠. 그런데 이놈들이 고시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떨어졌을 때는 깜깜한 어두움이더라구요. 그때 신림동 고시촌에서 좌절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도 하나하나가 모두 집안에서는 기둥이고 희망인데 거기서 기가 죽은 채 숨도 못 쉬고 사는 걸 보니까 참 딱하더라구요. 수 만 명의 청년들이 여러해를 츄레이닝 차림으로 쪽방에서 한끼 2천원짜리 백반으로 연명하면서 박제가 된 삶을 살고 있어요. 현실은 극소수만 구제되고 나머지는 좌절하고 자살까지 하는 상황이죠. 그걸 보면서 다급할 때 손 한번 내밀어주면 그들을 절망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잠시 쉬었다 그가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살고 있던 집을 작은 아파트로 옮기는 과정에서 5억원이 생겼어요. 그 돈으로 신림동 고시촌에 건물 100평을 얻어 ‘사랑샘’이라는 쉼터를 만들어 주었죠. 그 안에 종교별로 변호사들이 분담해서 교리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선배 변호사들의 강연도 시도했어요. 김승진변호사, 강봉수변호사, 나천수 변호사 같은 분들이 와서 힘이 되어주었죠.  성직자들에게 부탁을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들은 고시낙방생들을 출세주의 속물로 보는 경향도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솔직히 우리 변호사들 대부분이 서러운 시절의 따뜻한 말 한마디 밥 한 끼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를 경험으로 아는 사람들 아닙니까?”

  성직자들이 보지 못하는 걸 그는 보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그는 돈뿐 아니라 시간과 몸도 바치게 된다.

 

  “시험에 실패한 청년들을 모아 영등포의 노숙자 시설이나 행려병자 보호시설에 함께 가서 봉사를 하기도 했어요. 더 불행한 존재를 보는 자체로도 그들의 실패를 위로하는 치료제가 되니까요. 나비의 꿈을 가진 그들에게 실패는 겸손을 배우는 귀한 기회인거죠.”

  확실히 그는 삶이 뭔지를 아는 것 같았다. 그에게 기성의 변호사들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세상에서는 변호사를 도둑놈이라고 하는데 있는 변호사들이 사재를 털어 세상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자체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강한 메시지죠. 돈은 빙빙 돈다고 해서 돈입니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살려고 가지고 있으면 안돼요. 그리고 우리들 공부할 때 흔히 공부해서 남주냐 라고 했었죠? 살아보니까 정말 공부해서 자기만 잘먹고 잘살게 아니라 남에게 그 지식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좋은 세상이 오는 거예요. 돈을 나만 위해 쓸 게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 쓰는 맛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맛을 안다는 건 더욱 소중한 일입니다. 늙고 총기가 없어진 다음에 돈이 있으면 뭘 하겠습니까? 그건 정신이 빠진 돈이죠.”

  그의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어느새 2시간이 넘게 흐르고 있었다. 그를 찾는 전화가 오고 여직원이 문을 열고 다급하게 들어와 메모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훌륭한 변호사였다. 좋은 변호사란 높은 관직이나 많은 돈을 벌어 속물적인 성공을 쟁취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스스로를 아낌없이 주는 그런 변호사다. 일과 열정을 가진 그의 영혼은 결코 늙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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