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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사랑입니다

운영자 2011.06.09 18:51:58
조회 236 추천 0 댓글 0

  오래 전 칼부림으로 구속된 한 아주머니의 사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녀가장이던 가난한 그녀는 결혼 무렵 고민에 빠졌다. 어린 동생을 돌 볼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동생을 데리고 시집을 갔다. 그때부터 그녀는 죄인 아닌 죄인이었다. 남편이 때려도 아무 말 못했고 바람을 피워도 항의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절대빈곤의 그 시절 남편은 그녀와 동생의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대판 노예였다.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자 남편은 그녀가 싫어졌다. 남편은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래도 그녀는 말 한마디하지 못했다. 그냥 그대로 살게만 해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아이까지 빼앗긴 채 쫓겨 나온 그녀는 고생 끝에 변두리에 다방을 차렸다. 낡은 건물 지하의 초라한 시설이었다. 한쪽 구석에 주방 겸 방 한 칸을 만들어 거기서 살았다. 졸업장도 없고 기술도 특별히 없는 그녀는 음습한 지하다방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세월이 흘러가고 그 동네도 어느새 고급스런 분위기의 커피숖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쳐진 지하다방은 하루종일 차 몇잔을 팔기 힘들었다. 이래서는 임대료도 내기 힘들었다.


  그녀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다방을 대폭 고쳤다. 선금을 주고  아가씨들을 고용했다. 그무렵 어느새 두고 나온 딸의 결혼소식이 들렸다. 사위감은 박사학위를 따고 이제 곧 교수가 될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이따금씩 몰래 딸을 만나서 소식을 주고 받곤 했었다. 딸과 백화점을 돌면서 살림을 사줄 수 없는 그녀의 형편이 서러웠다. 다방의 매상은 오르지 않고 사채이자만 산더미 같이 불어났다. 며칠만 이자를 주지 못해도 당장 건달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게다가 고용한 아가씨들은 돈만 받고서는 사라지기도 했다. 부자에게 삶은 장난같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었다. 딸의 결혼식날 그녀는 먼발치서 딸 내외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절대로 엄마의 불행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고.

  어느 날 아직 신혼인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시어머니하고 남편에게 행패를 부려. 그이에게 장모가 꾼 돈을 내놓으라는 거야. 엄마가 돈을 꿔가고 갚지 않는 나쁜여자래.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 펄펄 뛰시는데 나 쫓겨날 것 같아.”

  딸이 흐느꼈다. 그녀는 목구멍에서 주먹같은 것이 치솟아 올랐다. 냉혈한 사채업자는 다시 그녀의 다방으로 찾아왔다. 밤새 잠을 못 잔 채 얼굴이 하얗게 바랜 그녀가 주방에 있던 날카로운 칼을 들었다.


  ‘그래 이제 너하고 한 많은 세상 같이 떠나는 거야.’

  이성을 잃은 그녀의 칼부림이 시작됐다.


  매섭게도 추운 일월의 어느 날 나는 영등포구치소로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국선변호인자격이었다. 공소장을 보면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칼로 사람을 찌른 것으로 되어 있었다. 공소사실을 그대로 자백한 그녀는 이미 일심에서 징역1년6월을 선고받았다. 


  영양실조로 부스스한 얼굴의 그녀는 얇은 재소자 복을 입은채 떨고 있었다. 재소자들은 겨울이 되면 가족이 두툼한 옷과 담요로 바꾸어 주는 게 보통이었다. 돈만 영치시키면 그 안에서도 최소한의 영양공급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면회 오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이런 일을 제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딸 시집에  알려지면 안되요-----”

  서럽고 힘든 징역살이보다 엄마는 딸의 행복이 걱정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엄마가 있다는 걸 딸아이의 시집에서 알아보세요.  당장 쫓겨나지. 어쨌든 아무도 모르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한겨울의 썰렁한 법정에서 재판은 진행됐다. 법정으로 불려나온 그녀는 두려운 눈으로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딱딱한 나무의자 사이로 겨울바람만 휘돌아 나갈 뿐 딸은 오지 않았다.  변론을 마치고 나오기 전 나는 공허한 방청석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딸이 알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절규를 했을 것인가를. 그래도 엄마의 얼어붙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은 딸의 따뜻한 눈물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가족간의 사랑이다. 히로뽕과 청부폭력으로 구속된 조직폭력의 두목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수많은 조직원들이 구십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외제승용차를 타는 만화같은 삶이 그렇게 신이 나고 좋았느냐고 물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했다. 가난하게 살아도 된장찌개를 보골보골 끓여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게 행복이라는걸 녹슨 철창 밖으로 지는 해를 보면서 느꼈다고 했다. 건달세계는 결코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이 멋있는 게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두 시간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는 것이었다.


  가족이 모두 떠나가 버린 채 혼자서 개 한 마리와 함께 넓은 집에 살고 있는 칠십대 부자노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가진 돈을 지키느라고 그 영감은 너무 방어적이었다. 자식들마저 경계의 대상으로 여겼다. 결국 그 노인의 금고에 통장과 문서는 가득 찼을지 몰라도 사랑이 없는 그 집안은 사막같이 메말라 있었다.


  “왜 이렇게 사십니까?”

  내가 당돌하게 물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뭐가 어떻소? 난 괜찮아.”

  영감은 완강한 거부의 반응을 보였다. 돈과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나 보다. 영감에게 남은 것은 아집 밖에는 없어 보였다.


  미녀배우의 가사재판을 대리해 준 적이 있었다. 톱스타 시절 그녀는 어떤 남자를 사랑했었다.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인정받기 힘들었다. 처녀스타의 출산은 톱기사였다. 이미 아내가 있던 그 남자에게 여배우는 잠시 스쳐 가는 바람이기도 했다. 인기가 떨어진 스타모녀의 삶은 비참했다.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엄마는 딸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소송을 의뢰했다. 딸은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어느 날 그 꼬마가 로션 한 병을 내게 선물했다. 포장지 한 구석에  꽂혀 있는 작은 메모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변호사 아저씨! 우리 엄마와 나를 버린 아버지는 나쁜 놈이예요. 혼내 주세요. 그리고 난 어디가도 상관없지만 우리엄마가 불쌍해요. 아저씨가 우리엄마 친구 해 주면 안될까요.’

  혼자 남을 엄마를 걱정하는 딸의 사랑이었다. 이런 촉촉한 사랑이 있는 한 절대로 불행하지 않다. 진정 불행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이다. 조용한 가을저녁 등불아래 가족이 둘러 앉아 기도를 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기다리는 아내를 생각하며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의 손에 들린 사과봉지는 삶의 윤활유다. 삶은 특별한 게 아닌 것 같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깃털을 부비대며 체온을 나누고 이웃과 나누는 작은 사랑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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