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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별표 고무신

운영자 2016.03.31 17:49:38
조회 528 추천 0 댓글 0
김경중은 큰아들 김성수에게는 동아일보와 그가 인수한 중앙학교의 운영을 맡겼다. 작은아들 김연수에게는 농장과 그가 인수한 회사들의 경영을 맡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김연수는 먼저 ‘경성직뉴’란 작은 회사를 맡아 사업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김연수는 경성직뉴 쌍림동 공장 숙직실에서 아내와 함께 묵으면서 일했다. 아들 상협은 줄포에 있는 할머니에게 맡겼다. 유순한 성격을 타고 태어난 상협은 울어대거나 보채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할머니는 김상협을 안아주면서 “우리 순둥이”라면서 예뻐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젊은 김연수사장은 고무신제조로 승부를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짚신이나 나막신이 고작이던 그 시절 고무신은 질기며 발도 편안한 경이로운 신문물이었다. 착용감이 좋고 오래 신을 수 있는데다 겉모양도 지체 높은 사대부들이 신던 비단신과 다를 바 없어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백성들의 신발은 아직도 상당수가 짚신이었다. 짚신은 볏짚으로 만들어진 탓에 기껏해야 사나흘 신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새끼를 비벼꼬아 만든 바닥은 울퉁불퉁해서 불편했고 비만 오면 물기가 스며들어 축축해졌다. 진흙마저 엉겨 붙는 바람에 돌덩이처럼 무겁기도 했다. 그에 반해 개화 상품인 고무신은 비가 내려도 나막신으로 갈아 신을 필요가 없고 일 년이나 신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무신 업계는 이미 일본인 업체들이 석권하고 있었고 조선에서는 이하영 대감의 대륙고무공업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조선 영세업자들까지 뛰어들어 200여 공장이 난립하는 최대의 경쟁업종이었다. 한국에서 고무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일본 고무공업계도 자극을 받았다. 조선에 고무신수출을 하기위해 일본의 고오베 항에 110개의 고무신공장이 설립됐다. 인천과 부산 원산항의 부두에는 고오베에서 온 고무신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김연수는 요코하마 고무공업주식회사를 찾아갔다. 그는 공장에 묵으면서 고무신 생산 공정을 공책에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생산량이나 공원들의 대우, 경영의 애로점들을 하나하나 묻고 메모했다. 얼마 후 그가 일본에서 들여온 고무신 제작 기계가 돌기 시작했고 ‘별’이라는 상표가 찍힌 고무신이 만들어졌다. 업체 간 치열한 광고전도 벌어지고 있었다. 구한말 외무대신이었던 이하영대감은 일본 작위를 받은 귀족들을 주주로 참여시켜 귀족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대륙고무의 동아일보 광고는 이랬다. 

‘본인 이하영이 경영하는 대륙고무가 제조한 고무화를 출시하니 전하께서 어용하심을 얻어 황감함을 금치 못하며, 왕자 공주님들께서도 널리 애용하시고, 또 나인들, 일반고객들이 각별히 애용하셔서 날로 달로 발전해 이번에 주식회사 조직으로 출범하게 됐습니다. 조선 고무업계의 원조로서 더욱더 매진하여 조선은 물론 일본과 만주까지 진출하겠사오니, 더욱 애용해주시기 바라옵니다. 다른 회사가 조악한 제품을 저의 회사제품이라고 사칭하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사오니 본사의 상표 ‘대륙’에 주의하시옵소서. 대륙고무주식회사 사장 이하영’ 


수십개의 브랜드가 난립한 고무신업계에서 대륙고무신은 최고의 명품브랜드로 시장을 석권했다. 대륙고무의 국왕을 동원한 선제공격에 또 다른 회사인 만월표 고무신이 광고전쟁에 가세하며 뛰어들었다. 만월표 고무신은 광고문에서 ‘이강전하가 손수 고르셔서 신고 계시는 만월표 고무신’이라고 했다. 이강전하라고 하면 고종의 둘째 왕자인 의친왕을 말했다. 의친왕은 일제에 대한 반발의식이 강했다. 만월표 고무신은 의친왕의 그런 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했다. 김연수사장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내구성을 호소하기로 했다. 광고문구는 이랬다.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고무는 찢어지지 않는다. 고무신이 질기다 함은 별표고무를 말함이요 고무신의 모양 좋은 것도 별표고무가 표준이다.’ 


그러자 거북선표 고무신회사는 한술 더 자극적인 광고를 냈다.

‘경고!! 일년간 사용, 확실 보증품. 가짜 거북선표가 많사오니 속지 마시고 거북선표를 사실 때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거북선 상표에 물결바닥을 사십시오’

거북선표 고무신은 이순신장군을 떠올리게 하여 민족혼에 호소함과 동시에 오돌토돌한 물결바닥으로 미끄럼까지 방지했다는 특징을 부각시켜 차별성을 강조했다. 김연수가 처음 뛰어든 사업의 위기가 닥쳐왔다. 판매를 위탁했던 고무신들이 반품되어 왔고 판매대금으로 받은 약속어음과 개인수표의 부도로 회사는 결손이 누적되어 갔다.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음이 반환되어 들어오면서 김연수는 눈만 뜨면 돈을 구하러 다니기 바빴다. 주문은 없고 간신히 팔려나간 상품조차도 반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김연수는 직접 동대문근처의 고무신가게들을 돌아다녔다. 공장에서 나간 고무신이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그가 고무신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별표 고무신은 없습니까?”

“별표는 빛깔이 형편없어요. 일본제들 보세요, 얼마나 색깔들이 깔끔하고 예뻐요? 제품은 사람들이 와서 스스로 찾게 만들어야 하는데 별표는 영 아니예요.”

그는 남대문의 다른 고무신 상점으로 가서 같은 걸 물었다.

“이하영대감의 대륙고무에서 나오는 제품은 모양이 날렵한데 별표고무신은 아무래도 너무 투박해요. 그렇다고 신발이 질기지도 못하고 역시 고무신은 이대감 회사제품이 명품이요. 임금님도 그걸 신는다잖소.”

그런 말을 들으면서 김연수는 일선의 상점주인들이나 소비자들의 의식을 발견했다. 선발기업인 대륙고무에서 나오는 고무신은 명품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아무리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도 그 인식을 꺽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판매방법을 바꿨다. 직원들에게 별표 고무신을 신고 전국 각지의 장을 돌아다니게 했다. 전국의 거래처는 물론이고 만주까지 돌아다니면서 듣고 보고 느낀 점들을 꼼꼼하게 적어오게 했다. 그런 정보를 모아 색깔, 모양등 품질개선을 시도했다. 소비자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하는 판매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얼마 후 그는 직원들로 하여금 단점이 보완된 별표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고무신가게 주인들을 만나면 고무신을 벗어서 번쩍 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외치게 했다. 

“이거 보시오, 이게 신제품인데 여섯 달 신었소. 전혀 닳지 않고 아직도 새 것 아니요?”

“정말 그러네?”

가게 주인들은 신기한 듯 별표고무신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봤다. 2백여명의 별표 고무신 공장 직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선전원이고 판매원이었다. 그런 장돌뱅이 판매방식이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났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고무신 품질 6개월 보증제’였다. 새로 산 고무신이 6개월 안에 닳으면 새 신으로 교환해 준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신으면 밑바닥이 금세 닳고 여기저기 돌에 부딪치면 부드러운 고무가 찢어지는 게 고무신이었다. 고무신을 거저 준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런 파격적인 판매 조건이 발표되자 전국의 주문이 몰렸다. 신던 고무신을 돌에다 마구 비벼 일부러 구멍을 내어 새 신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회사 내에서 그런 보증판매제를 철폐하자는 의견이 팽배했다. 김연수사장이 판매담당에게 물었다. 

“새 신으로 교환해주는 비율이 몇 퍼센트나 됩니까?”

“1퍼센트 정도 됩니다.”

“그렇다면 광고비라고 치고 계속 밀고 나갑시다.”

보증판매제 실시 1년 만에 판매실적이 3배 이상 올랐다. 드디어 판매실적 1위를 고수하던 이하영대감의 대륙표 고무신을 신진 청년사업가 김연수의 별표가 눌렀다. 그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제품을 더 다양화 했다. 중국을 겨냥하고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는 고무신도 생산했다. 첫 사업의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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