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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김씨가의 교육

운영자 2016.04.06 17:53:09
조회 1007 추천 1 댓글 0
김연수는 봉익동에 있는 내관이 소유하던 조선기와집을 사서 줄포에 있는 가족을 올라오게 했다. 그는 다섯 살이 된 아들 상협을 집 근처에 있는 삼광유치원에 보냈다. 순하고 말이 없는 아들이었다. 너무 말이 없어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착하기만 한 아이가 한편으로는 미련스럽게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곰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그러나 유치원선생의 평가는 달랐다. 아들 상협은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다가 그 뜻을 알려고 노력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집안에서의 교육은 할아버지가 맡았다. 할아버지 김경중은 손자 앞에서 떨어진 밥풀 한 알이라도 손수 주워 보이며 근검절약을 몸으로 가르쳤다. 김경중은 ‘오도입문’이라는 수신서를 만들어 손자들이 항상 옆에 놓고 보게 했다. 할아버지는 김씨가의 유래에 대해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듯 자상하게 가르쳤다.

“우리 울산 김씨가는 다른 집안과는 달리 시조로 민씨 할머니를 모시고 있단다. 민씨 할머니의 남편인 김자 은자를 쓰는 할아버지는 조선초 왕자의 난에 말려드셨지. 이방원의 편에 서서 공을 세운 걸로 집안에서는 알려져 있단다. 그 근거는 여천군에 봉해진 걸로 짐작하는 거지. 그런데 궁중의 권력다툼은 항상 부침이 있어 사정이 변하지. 민씨 할머니가 태종비이던 원경왕후와 이종사촌 관계였는데 자식들을 데리고 빨리 피난을 가라는 은밀한 귀띔을 받았다는구나. 그 시절은 자칫하면 죽는 거니까 말이야. 민씨 할머니는 밤중에 아들 셋을 데리고 무조건 남쪽으로 도망을 쳤지. 남편이 되시는 분은 태종 때 죽임을 당하셨지. 우리 집안의 원래 고향은 울산인데 거기가면 바로 잡힐 것 같으니까 전라도로 방향을 잡으셨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전라도 장성땅 어느 산마루였어. 거기서 지친다리를 쉬면서 그 아래 펼쳐진 벌판을 보셨대. 거기에 자리 잡으신 거야. 전해오는 얘기로는 민씨 할머니가 산마루에 앉아 나무로 깍은 매를 공중으로 띄워 날리고 그 매가 떨어진 장소에 집터를 잡았대. 전설로는 그 매가 푸른 하늘을 한참을 날다가 맥동이라는 곳에 내려앉았다는 거야. 그곳이 김씨가가 만대를 누릴 땅이라고 하면서 할머니는 세 아들을 데리고 거기 정착하셨지. 당시는 벌이 질펀하게 펼쳐져 있고 아늑한 곳이었대. 민씨할머니가 자리 잡은 맥동에서 우리가문의 영광인 하서 김인후 할아버지가 탄생하신거지.”

얘기가 하서 김인후로 바뀌어 계속됐다. 

“하서 할아버지는 한양에서 벼슬살이 4년 만에 낙향해서 대나무 숲에 앉아 천지만물의 이치를 탐구하셨단다. 이황이나 화담선생과도 절친한 사이였지. 사단칠정론으로 유명한 기대승은 하서할아버지를 자기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글에서 극찬했단다.”

손자 김상협은 미동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서 할아버지 문하에서 송강 정철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됐단다. 정조대왕께서는 하서 할아버지를 ‘조선조 이후 성리학을 밝히고 그 학문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김인후 한 사람’이라는 제문을 내리고 덕망을 칭송셨지. 하서 할아버지를 기리는 필암서원이 장성에 세워지고 임금은 편액을 하사 하셨단다. 하서 할아버지는 젊어서부터 20년 동안 빠짐없이 일지를 써서 남기셨지. 그 후 조선말에 후손인 김자 요자 협자를 쓰는 할아버지와 정씨할머니는 인촌리에 사셨단다. 정씨할머니는 참 검소하셨지. 추운겨울이 되면 윗목에 둔 요강이 얼어붙었단다. 장작 한 개피라도 아끼기 위해 군불을 때지 않으셨기 때문이지. 물레질을 해서 실을 만들고 밤마다 베틀위에 올라 길쌈을 하셨지. 일년내내 정씨할머니가 베틀에서 내려와 쉬는 날이 거의 없으셨단다. 정씨할머니는 말이 없는 대신 속은 놀라운 분이셨지. 한 푼 두 푼 생기는 엽전을 차곡차곡 줄에 꿰어서 한 묶음이 되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고 그렇게 모은 돈은 여간한 일이 아니면 절대 허무는 법이 없었지. 할머니는 그렇게 모은 종자돈으로 논과 밭을 사들이셨단다.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누비바지를 기우고 또 기우면서 평생 그 바지를 입으셨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고부군은 태인과 고부, 정읍 세 곳으로부터 흘러든 물줄기가 합류해서 큰 내를 이루고 있었단다. 그 상류에다 보를 막으면 어떤 심한 가뭄에도 물 걱정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었지. 풍작이 들었을 때 정씨 할머니는 수확물을 팔아 많은 돈을 수중에 넣으셨어. 집안에 독을 묻어두고 거기에 엽전꾸러미들을 소중하게 보관해 두곤 했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른 선비집안과 달랐어. 다른 선비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 지도록 오직 과거에만 연연하는 시절이었지. 선비의 목표는 오직 벼슬이었어. 음직이라고 해서 한양 대감들의 추천을 받아 벼슬을 받는 전통도 있었지. 대감들의 추천을 받거나 벼슬자리를 사기위해 땅을 ​헐값에 파는 양반들이 많았단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돈이 있어도 벼슬에 관심이 없으셨어. 기름진 전답을 기억해 두고 있다가 돈이 되면 그것들을 사들였지. 그렇다고 결코 주변에 인심을 잃은 적이 없으셨어. 다른 지주들은 춘궁기에 몇 말의 곡식을 빌려줬다가 아예 땅을 뺏는 경우가 흔할 때였지.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원망을 받는 짓을 하지 않으셨단다. 시세에 맞는 적절한 땅값을 쳐 주곤 했지. 그런 소문이 나자 땅을 팔려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할머니를 찾아갔지. 소작료도 다른 지주들보다 대폭 낮춰 잡았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른 양반집들이 젖어있는 허례허식에서 과감히 벗어났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그렇게 해서 말년에 천석의 지주가 되셨지.” 

집안에 흘러내려오는 가치관과 철학이 손자들에게 입력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 김연수 역시 자식들에게 엄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였다. 김연수는 부자집이라고 자식들을 특별히 보호하지 않았다. 아들을 동네에 나가서 이웃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게 했다. 아이들이 공터에서 연날리기, 자치기를 하면서 놀던 시절이었다. 상협은 독특한 성격이었다. 구경만 하며 따라 다닐 뿐 아이들과의 놀이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시비를 걸어도 상협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대들지 않았다. 아버지 김연수는 과묵한 아버지였다. 웬만해서는 말은 고사하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쉽사리 누구를 칭찬하는 일도 없었다. 희로애락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아들에게 수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명령하고 끌고 가지 않았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김연수는 평소 아들의 행동을 보면서 수첩에 그 장단점을 메모를 해 두었다. 아들을 불러 훈계할 때면 조용히 그 메모장을 꺼내서 하나하나 지적해주었다. 이희승 박사는 중앙학교 학생시절 김연수가 조직한 야구단에서 함께 운동을 한 친한 사이였다. 그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김연수 사장은 아이들을 부잣집 아이처럼 곱게 키우면 장래를 망친다고 생각 했어요 . 옷도 가난한 집들처럼 남루하게 입혔고 먹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집안 생활비도 아내에게 월급제로 얼마를 주곤 그만이었어요. 그 습관은 늙어서까지 변함이 없었을 겁니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 김연수는 가정경제의 모범을 보여 주었어요. 회사 직원들이나 남에게는 마음씀씀이가 자상하고 후했어요. 그러나 가족과 자신은 엄격하고 평생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했죠.’

김연수회장은 지나치게 엄한 자신의 성격을 솔직하게 시인하며 이렇게 심정을 털어놓은 글도 있다. 

‘내가 자식들을 그렇게 길렀어, 내 잘못일 거야. 하지만 자식에게도 허튼 말을 하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곤란해. 예의가 인간생활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근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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