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비슷한 장면이 또 한군데 나온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또다른 마리아(당시 유태나라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흔했다)와 그의 언니 마르타 사이에서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다.
예수와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하다가 어느 마을에 들르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들였다. 그녀에겐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다. 마리아는 손님을 맞아 음식준비에 경황이 없는 언니를 돕지 않고 예수한테 찰싹 들러붙어 예수가 하는 말을 경청한다. 그래서 마르타는 참다못해 예수에게 와서 신경질적으로 하소연을 한다. 언니 일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수에게 아양만 부리고 있는 동생을 왜 야단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에도 예수는 밥을 얻어먹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동생 편을 들며 이렇게 대꾸한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다 일일이 마음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방해하면 안된다.”
예수가 말한 ‘세상에서 필요한 단 한가지’란 사랑을 가리킨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예수가 3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그가 운명의 극복방법으로 제시한 ‘사랑’이 꼭 영적이고 초월적인 사랑만 의미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예수의 운명관을 내 나름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태어날 때 갖고 나오는 선천적 조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역동적 콘트롤을 통해 어느정도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의 콘트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신감 있는 믿음과 가식 없는 사랑, 그리고 죄의식의 극복이다.”
하지만 예수의 이러한 메시지는 수구사상에 젖은 당시의 기득권 지식인들에게 전혀 먹혀 들지 못했고,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과 인품은 많은 민중들을 감복시켜 그의 죽음을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속죄양의 상징과 결부시키게 했고, 그 결과 대속(代贖)의 교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그가 다시금 부활한 뒤 하늘나라로 승천했을 것이라는 제자들의 순박한 믿음은, ‘하늘나라’의 의미를 예수가 그토록 애타게 바랐던 지상 위에 펼쳐지는 하늘나라가 아닌, 저 세상 어딘가에 영적으로 존재하는 ‘선택받은 자들만의 이상향’으로 뒤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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