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도교사상이 보여주고 있는 운명극복법은 결국 ‘현세적 도덕률로부터의 탈피’와 ‘상상력을 적극 활용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 유교사상이 평민들의 신분상승욕구를 억눌러 계층간의 위계질서를 엄격히 함으로써 사회기강 확립을 도모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도교에서는 스스로가 처한 상황이나 신분에 만족하지 말고 보다 더 높은 것, 미지의 것을 향해 과감히 도전하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노력에 따라 신선도 될 수 있고 시간을 초월할 수도 있다. 또한 저승의 율법에 거역할 수도 있으므로 운명적으로 정해진 수명 따위는 없다(도교적 전기문학에는 저승사자에게 잡혀갔다가 염라대왕을 교묘하게 속이고 도망나오는 얘기가 많이 실려 있다).
나 역시 창조적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문학은 결국 ‘인공적인 꿈’이라고 보는데, 그 꿈이 길몽(吉夢)이 되게 하려면 도교 사상에서처럼 현실적 도덕률들을 과감히 파기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 장르의 문학작품들을 통해 반유교적 윤리를 강조하면서, 꿈과 쾌락의 가치를 고양시키고 유미적(唯美的) 공상의 나래를 펼치려 노력한 것은 그 때문이다. 길몽일수록 탈(脫)도덕적인 것이 많고, 성욕, 배설욕 등 인간의 순수 본능에 의거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분수에 넘친 호사를 즐길 수도 있고 고대 로마의 네로와 같은 폭군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신선이 되어 수많은 미희들과 더불어 신나는 육체의 광연(狂宴)을 즐길 수도 있다. 꿈속에서 한 행위에조차 도덕적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진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고, 초자아(超自我, 즉 도덕률)의 검열에 시달리며 죄의식에 가득 차 항상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위선과 이중성으로 가득 찬 삶은 그가 혹 세속적으로 출세한다 할지라도 지옥 같은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그가 생각하는 상태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운명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명제다. 여기서 ‘생각’을 ‘상상’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이다.
유교는 항상 도덕적 죄의식에 가득 찬 삶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부모가 죽어도 죄인이 되기 때문에 직업을 버리고 삿갓을 쓰고 지내야만 했다) 모든 사람들을 이중적 위선으로 가득 찬 모럴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 자기는 도덕적으로 극기(克己)하는 삶을 억지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관능적으로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경우, 그는 그 사람을 질투하고 증오하여 죄인시(罪人視)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실용적 쾌락주의의 도교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운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와 위선적인 윤리와 금욕적인 극기(克己)를 강요하는 갖가지 현실의 질곡들을 당당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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