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는 제도화된 기독교 교리가 아닌 예수의 진짜 생각을 통해 어떠한 운명개척법을 추출해낼 수 있을까? 나는 어쨌든 ‘기도’의 효용을 중시한다. 예수는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항상 기도할 것을 강조했고, 특히 기도를 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말했다. 이는 당시 유태교 지도자들이 공개석상에서 남더러 들으라고 크게 소리쳐 기도하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남 보라고 하는 기도는 아무래도 허위적 시혜의식(施惠意識)이나 위선적 양심의 과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기도는 자기암시로든 자기최면으로든, 아니면 일종의 염력(念力)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자의식에 작용한다. 정말로 신이 있어 기도를 들어준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예수는 신의 존재를 믿었던 것 같고, 예수가 말하는 신은 솔직한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신이다. 그래서 예수는 항상 “너희가 어린아이처럼 솔직해지지 않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는 위선을 모르고 처세법도 모르며, 오로지 동물적 본성에만 솔직한 ‘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개석상에서 기도한다면 아무래도 본심을 속일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서는 “하느님, 1억원만 주세요!”라고 기도하고픈 생각이 굴뚝 같지만 차마 그 말이 입밖으로 굴러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공개석상의 기도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인류평화, 이웃사랑, 어쩌구 저쩌구..”하는 투의 입에 발린 말들만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사실 솔직하지 못한 기도다. 그래서 진짜 솔직한 기도는 골방 속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골방 속에서 혼자 기도한다 해도 자기의 본심을 속이는 기도가 나올 수 있다. 위선적인 ‘양심’이 역시 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영 구제불능이다. 기도는 자신의 정당한 개인적 욕구를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하느님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나 “저는 솔직히 말해서 야하고 섹시한 여자가 좋습니다. 그런 여자와 연애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솔직한 기도다. 그러나 “저의 더러운 욕망을 아예 없애버려 주세요” 같은 기도는 솔직하지 못한 기도다.
우리의 욕망이 황당무계하거나(이를테면 왕이 되게 해달라는 식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 한 솔직한 기도는 늦더라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게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는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통일’이야말로 우리를 신의 존재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보는 것이다.
왜 기도가 솔직해야 하는가. 신이 솔직하길 원해서가 아니라 기도가 갖는 자기최면 효과 때문이다. 즉 자기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정곡을 꿰는 속담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정직한 욕망의 씨를 심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운명을 창조해낼 수 있다.
예수는 하늘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였다. 겨자씨는 아주 작지만 그것이 싹터 자라나면 엄청나게 큰 나무가 된다. 우리의 믿음이 성취된다는 것도 이와 같다. 참된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아부’로서가 아니라 ‘솔직하게 떼쓰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둡고 괴롭지만 끈질긴 희망을 갖고 기도하는 한 이땅 위엔 언젠가 반드시 정의와 평등, 그리고 구체적 사랑의 즐거움과 행복이 물결치는 ‘하늘나라’가 이룩되리라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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