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고자의 사상은 양주(楊朱)의 위아적(爲我的) 쾌락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양주는 ‘전생보진(全生保眞, 삶을 온전히 하여 진리를 보전한다)’을 주장하여 ‘도덕적 수양을 통한 쾌락의 절제’는 평상심(平常心)을 부정하는 정신적 귀족주의 또는 엘리트 독재주의적 가치관이라고 공박했는데, 공맹류(孔孟類)의 수신주의(修身主義)의 본질인 ‘하늘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여 쾌락추구에 있어 항상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말한 “내 몸의 털 한오라기를 뽑아 천하를 구할 수 있다 할지라도 나는 털을 뽑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의 호방한 역천사상(逆天思想)을 잘 드러내준다. 역천사상은 반(半)명분주의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때 지금껏 통용되어온 운명론의 본질은 쾌락주의에 반하는 금욕주의적 인생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꼭 철저한 금욕까지는 안간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인내와 절제, 그리고 ‘하늘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것은 곧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낳는다)으로 점철되는 것이 바로 외천사상(畏天思想)에 바탕한 운명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의 밑바닥에는 일반민중을 ‘수분안족(守分安足, 분수를 지켜 만족함)’케 하는 쪽으로 유도하여 스스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특권계급의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성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고대의 황제들은 스스로 하늘을 대신한다는 구호를 내걸고서 후사(後嗣)를 얻는다는 이유와 보신(補腎)(젊은 여인의 기를 흡수하면 장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을 핑계로 수백명의 후궁들을 데리고서 즐겼다. 그리고 일반민중들에게는 도덕을 핑계삼아 성적 쾌락에의 탐닉을 금지시켰는데, 이는 민중들이 성에 눈뜰 경우 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생겨 민중수탈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죽을 권리조차 없을 만큼 일반민중들은 운명론적 천명사상에 시달렸다. 서양 중세기의 경우, 자살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교리 때문에 자살미수자들은 다시금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 기막힌 아이러니는 인류역사가 운명론, 또는 천명론을 빙자한 압제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인간은 잠재의식 가운데 죽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안락사에 의한 죽음 같은 것 역시 쾌락의 일종이라고 간주한다면, 자살을 죄악으로 여겨 금지시켰다는 것은 또다른 금욕주의의 일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살을 죄악시했다는 것은 태어난 것을 당연시하거나 고마워하라는 얘긴데, 오히려 이러한 생각 가운데 운명극복의 핵심적 열쇠가 은연중 담겨 있다. 앞서 나는 석가가 말한 생,노,병,사 가운데서 생(生)의 문제를 초월할 방법은 당분간 없고 오직 출생 그 자체에 대한 은원(恩怨)의 감정을 초월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생각해본다면, 생 자체를 초월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생을 부정할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가 가능해진다.
생을 부정하라는 말은 꼭 자살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선 생에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부터 홀가분해지라는 얘기다. 그리고 인생에서 특별히 형이상학적 ‘보람’을 찾기보다 순간순간의 육체적 쾌락을 통해 실질적 ‘보람’을 찾으라는 얘기다.
우리가 생의 ‘가치’를 부정하고 그것을 ‘일회적 놀이’로서 신나고 당당하게 즐길 때, 운명의 신은 더 이상 심술을 부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생의 정신적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악착같이 덤벼드는 자를 골탕먹이면서 쾌감을 느끼는 자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신’을 정신우월주의나 독재적 부권(父權), 비배엘리트, 위선적인 도덕률과 사회규범 등의 개념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좋다. 행복한 운명은 육체적 쾌락에 솔직한 자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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