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불교의 일파에서는 극단적인 고행, 이를테면 분신자살(불교용어로는 소신공양(燒身供養)) 등을 통해서 자신을 해탈로 이끌려고 한다. 그러나 죽어 없어져버린다는 것은 다만 육체적 고통을 ‘도피’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마음과 몸의 고통을 함께 극복하여 신심불이(身心不二), 즉 중도적(中道的) 입장에서 영원한 쾌락에 이르는 길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等身佛)’이 고교 국어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돼 있었던 것이 진심으로 불만이었다. 소신공양의 공덕을 예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자살을 터무니없이 미화시키고 있어 청소년들을 자살충동에 빠뜨릴 위험마저 있다.
육체적 고행은 자아로 하여금 육체의 세계 즉, 색계(色界)를 초월시키는 작용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고행이 유일한 구제책은 아니다. 고행이란 깨달음을 향한 최초의 동기를 부여하는 작용만을 한다. 그러므로 고행주의적인 소승불교는 불교의 진수가 되지 못한다.
석가 역시 출가 후 처음에는 그때 유행하던 고행주의를 좇아 미칠 듯이 몸을 학대하며 깨달음의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몸을 학대해봤자(이를테면 단식 같은 것으로) 찾아오는 것은 생명력의 소진(消盡)뿐이었다. 석가가 기아에 못 이겨 인사불성 상태가 되자 지나가던 여인이 우유죽을 입에 흘려넣어 석가를 소생시킨다. 그때 석가가 깨달은 것이 바로 ‘중도(中道)의 진리’다. 즉, 몸(身) 역시 정신(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석가는 기존의 힌두교적 고행주의를 버리고 스스로 독창적인 수행을 쌓아나가게 된다.
정신적 쾌락(즉 깨달음)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온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공연히 육체를 괴롭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남’이 괴로워야만 한다는 상대적 고정관념이 우리들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학적 고통을 스스로 유도해내고 있다. 하지만 나도 즐겁고 남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육체도 즐겁고 정신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석가의 이러한 가르침은 영화관의 스크린과 영사기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다. 영사기의 광원(光源)에서는 센 빛이 투사되는데 그 앞에 걸려 있는 필름이 컴컴하면 스크린엔 어둡고 음침한 정경이 비춰지듯이, 우리의 본성은 원래 빛 그 자체인데도 우리 마음의 필름에 입혀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들 때문에 현상의 세계에는 고통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육체는 더럽다’는 인식을 버릴 때 마음의 필름은 맑고 투명하게 되어, 현상세계(즉 스크린)는 심신 모두 기쁨과 쾌락으로 충만하게 된다. 불가에서 ‘광명편조(光明遍照, 빛은 두루 비친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석가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이 다 부처요, 고행 역시 구도를 위한 궁극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 이미 원시 불교의 중도(中道)사상에 의해 분명히 규명되었건만, 아직도 석가모니를 저 하늘나라 극락세계에서 신통력을 부리며 중생을 굽어보고 있는 절대신(絶對神) 정도로 생각하는 기복신앙적인 불교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또한 육체를 학대하면 할수록 도력(道力) 높은 고승이라는 믿음이 일반적으로 유포돼 있다는 것 역시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1993년에 성철(性徹)스님이 타계했을 때, 7년 동안이나 눕지 않고 앉아서 버텼다느니, 이쑤시개 하나로 몇 년을 썼다느니 하는 등 육체적 본성을 억누른 실적만 들입다 강조되었다. 이쑤시개를 그토록 아껴야 한다면 이쑤시개를 만들어 팔아 연명하는 중생들은 그럼 굶어죽으라는 얘기인가. 성청스님의 인생관이나 우주관에 대한 이해나 설명은 거의 없이 그분이 벌인 ‘육체와의 전쟁’만이 선정적으로 보도됐다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계의 허약함과 한국 매스컴의 경박스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화장 후 사리가 몇 개 나왔느니 하며 법석을 떤 것 또한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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