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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없애는 것이 업(業)을 이기는 길

운영자 2008.11.05 19:05:35
조회 790 추천 0 댓글 3

  불교의 원리대로라면 석가모니는 지금 이 우주 어느 곳에도 없다. 3차원 세계뿐만 아니라 4차원, 5차원 세계에도 없다. 그는 인류 최초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각자(覺者 )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윤회의 악순환 속에 다시금 빠져든 것이 아니라 진짜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죽어라 기도한들 무슨 응답이 있겠는가. 예전에 어느 고승이 신도들이 영험 있는 부처님이라고 애지중지하는 목불(木佛)을 겨울밤에 춥다고 장작으로 뽀개 썼다는 일화는 이러한 진리를 아주 멋지게 은유해주고 있다.


  고행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적당한 절제는 덕이 된다. 그러나 ‘회신멸지(灰身滅智, 몸을 태워 지혜를 멸함)’에까지 이른다면 그것은 정신분열적 자기학대가 될 뿐이다. 서양 중세기 암흑시대에 덜 떨어진 수도사들은 자기의 성기를 거세해가면서까지 욕망을 끊어버리려고 애썼는데, 불교의 승려들 가운데도 그런 이들이 더러 있었다. 이는 ‘신심불이(身心不二)’를 근간으로 하는 중도(中道)의 원리를 미처 체득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서글픈 해프닝이었다.


  불교가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석가가 실제로든 전설로든 ‘부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가는 평범한 인가으로 죽었고, 오로지 살아 있는 동안 마음과 몸이 고통에서 벗어나 고르게 행복해질 수 있는 상태를 꿈꾸었다. 그는 죽음 저편의 세계나 영생(永生)의 문제, 또는 영혼의 존재문제를 절대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통속적인 견해를 따른다면, 불교처럼 숙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종교도 달리 없을 것이다. 불교는 윤회를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업(業)이니 업보(業報)니 하는 말들이 불교인들의 입에서 다반사로 읊조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과 윤회를 진짜로 인정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살맛이 하나도 없어지게 된다. 물론 전생에 지은 악업(堊業)이 아무리 크다하더라도 현생에서 선업(先業)을 많이 쌓으면 내생에 가서는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식의 설법이 우리를 위안해주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 정도만 가지고서는 아무래도 개운하지가 않다. 무심결에 개미 한 마리만 밟아 죽여도 그것이 곧 업으로 작용하여 내생에 가서 벌을 받을 것만 같은 공포감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회설과 업설(業說)은 원래 ‘베다’시대까지만 해도 인도에 없었던 사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원전 7,8세기 경에 성립된 ‘브라아흐마나’ 문헌에서부터 사후세계에 대한 논의가 생기면서 윤회사상이 점점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석가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전통종교의 굴레를 아예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업과 윤회를 얘기하고 있을 뿐, 업과 윤회를 전적으로 긍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업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도에 정진했던 것이고, 그 결과 그 당시 유행했던 업에 의한 절대적 결정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석가가 업과 윤회를 얘기하기 이전에 ‘연기(緣起)’를 더욱 강조하여 얘기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연기란 원인이 있으므로 해서 결과가 생긴다는 설로서, 언뜻 보면 아주 싱겁기 짝이 없는 이론이다.


  그러나 연기설의 요체는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있다”는 순관(順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가 없어진다”는 역관(逆觀)에 있다. 이는 현대의 유전과학이 몰두하고 있는 테마와도 유사한 것이다. 유전자의 보완 또는 조작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면 전생의 업(業)은 맥을 못쓰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현재적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연기설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역으로 현재적 운명의 극복가능성을 역설하기 위해서 연기설을 강조했다는 말이다.


  석가 후대의 경전들은 연기를 열두 가지 현상의 인과관계로 설명하곤 한다. 이것을 십이연기(十二緣起)라고 하는데 역관(逆觀)으로 그것을 거슬러올라가보면, “슬픔과 고통과 노사(老死)는 무엇이 멸(滅)하면 멸하는가, 생(生)이 멸하면 멸한다”로 시작하여 “행(行)은 무엇이 멸하면 멸하는가, 무명(無明)이 멸하면 멸한다”로 끝난다. 결국 ‘무명(無明)’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고, 무명의 극복이 구원상락(久遠常樂)의 비책(策)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무명이란 더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어두운 암흑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요, 암흑상태란 앞서 설명했듯이 밝은 빛 앞에서도 우리가 바보같이 눈을 감고 있을 때 자초하게 되는 어둠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둠은 결국 기존의 온갖 선입관과 편견, 그리고 쓸데없는 관념의 유희 등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교 전승에 의하면 석가는 죽을 때 제자들에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여라,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라!”하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삿되고 비실용적인 형이상학적 도그마들을 경계하라는 말로 들린다. 요즘 말로 하면 어떠한 거대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 확실한 유토피아를 보장해주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적 유토피아니즘보다는 평상심(平常心), 즉 남이 규정해준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느끼는 감성과 감각으로 돌아와야만 진정한 깨달음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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