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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84 "체중계"

김유식 2010.07.13 08:43:30
조회 8833 추천 3 댓글 57


  장오의 얼굴이 벌게지도록 목을 조른 다음에 창헌이가 말했다.


  “이 새끼. 입만 열면 다 구라예요. 야이~ 씨발놈아. 김천 소년교도소는 7공장밖에 없어. 그리고 거기에 3층 건물이 어딨냐? 개새끼야. 다 2층 건물이지.”


  장오가 아무런 말이 없다. 표정의 변화도 별로 없다. 그냥 ‘그러냐?’ 하는 모습이다. 창헌이는 나와 이재헌 사장에게 계속 말했다.


  “저 새끼. 여기 서울구치소가 3층까지 있으니까 다른 곳도 그런 줄 알고 3층이라고 말한 거예요. 지방 교도소는 3층 건물 있는 데가 거의 없어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영등포 구치소도 상, 하로만 나뉘어져 있었다. 장오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창헌이의 크로스카운터로 어젯밤 그물을 찢고 도망갔던 뚱뚱 가물치는 이제는 뜰채에 담겨지고 있었다. 명탐정 콜롬보가 된 창헌이는 기세등등하게 장오에 대한 심문을 계속 했다.


  “야. 너 무슨 공장에 있었어?”


  “저요?”


  “그래! 씨발놈아. 지금 나 누구랑 이야기 하니?”


  “그냥 공장에 있었죠.”


  “이게 확! 죽을라고! 그러니까 무슨 공장이었냐고? 양재도 있고, 목공도 있고, 인쇄도 있고.”


  “그냥 공장인데요....”


  장오의 말꼬리에는 힘이 없다. 목소리의 크기도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원기왕성하던 가물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꼬리 말린 개죽이처럼 힘이 점점 빠졌다.


  “씨발놈아. 너 구라지? 김천에 없었지?”


  “있었어요.”


  대답에 힘이 없다.


  “너 공장에 반장이 있었어? 없었어?”


  “반장요?”


  “그래 반장.”


  “반장 있었죠.”


  “반장이 몇 살 먹었어?”


  장오가 움찔했다. 지금까지 또박또박 대답하던 것과 달리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몇 살이더라?”


  “씨발놈아. 정확한 나이 몰라도 되니까 대충 몇 살이었느냐고! 대충!”


  “한 스무 살인가? 열아홉 살인가? 하여튼 십대 후반이요.”


  팔보등공, 제운종, 능공허도, 수상비, 초상비, 등평도수, 능파미보 등등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종류의 경신술을 다 더해도 창헌이가 이렇게나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마치 장오 앞의 창헌이는 연기가 사라지는 듯한 상태로 그 자리에서 꺼졌고 장오의 등 뒤에서 다시 나타났다. ‘파츠츠츠~’ 하는 소리만 없었을 뿐 무협지의 내용 그대로였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용조수, 응조수, 호조수 등 여러 금나수법을 써서 장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창헌이는 저러다 구음백골조를 써서 장오의 해골에 구멍을 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이 사장님, 김 대표님! 이 새끼 계속 구라만 살살 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냥 줘 패고 방 깰까요?”


  이재헌 사장도 나도 더 이상 장오를 두둔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왜 창헌이가 저렇게 장오의 목을 조르는 걸까? 어디에서 구라가 또 나온 걸까? 창헌이는 얼마간 조르다가 손을 놓았고, 얼굴이 벌게진 가물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 씨발놈아. 반장 중에 이십대 초반이 어딨냐? 구라를 치려거든 똑바로 쳐야지. 이 형이 김천에서 4년 동안 살았다.”


  장오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창헌이는 주먹으로 살짝 장오의 머리를 쳤다.


  “야. 씨발놈아. 너 소년교도소라니까 반장도 소년인 줄 알았지? 그래서 구라친 거지? 엉? 형 말 틀렸냐?”


  창헌이의 설명은 이렇다. 소년 교도소는 20세 미만의 소년수가 가는 것이 맞지만 그들 중에는 살인 등으로 10년 이상의 형을 받은 죄수들도 있다. 대인수 직전에 구속된 소년수라면 서른 살이 훨씬 넘은 나이에 소년 교도소에 눌러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일반 교도소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으나 눌러앉은 반장들 대부분 나이가 많다고 했다. 창헌이가 있었던 시기에는 살인으로 15년 형을 받은 부산 칠성파의 모 조직원이 총대장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창헌이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가엾은 뚱뚱 가물치는 더 이상 바둥거리지 않았다. 간간이 “아니에요.”라는 말로서 꼬리를 흔들어 볼 뿐이지만 이미 가물치가 원기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대로 지나면 푹 고아서 먹힐 운명이나 다름없다.


  몇 가지의 거짓말에 대해서 자백을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장오에 대해서는 모르는 구석이 많다. 아마 반 정도만 자백하고 나머지는 그냥 맞다고 덮어둔 것 같다. 어찌 보면 창헌이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쳤는데 거의 사실로 드러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장오의 거짓말 수준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몇 가지의 자백만으로도 장오가 구라꾼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우리 방에서 더 활개치지는 못할 것이다. 자기 전에 창헌이는 장오에게 다는 아니지만 용기 있게 자백을 했다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고 말했다.



  12월 16일. 수요일.


  기상해서 부엌 쪽 창살에 묶어둔 페트병의 물을 마시려니 얼어있었다. 조 선생이 출소해서 방이 다시 넓어졌는데도 간밤에는 새벽 1시쯤 깨어 뒤척이다가 ‘인도 100배 즐기기’를 읽으며 오전 5시까지 잠을 못 잤다.


  아침식사로 연두부와 아욱국을 먹고, 씻은 다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데 뚱뚱소지가 체중계를 가져왔다. 몸무게를 재어 보니 73.5kg다. 구속 70일 만에 돼지고기 19근 만큼이나 뺐다. 구속 전이 85kg이었다. 결혼하기 전 2005년 1월에 몸무게를 좀 빼겠다고 홍콩과 마카오에서 2주가량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감량 했던 것이 78kg에서 74kg까지 4kg였다. 2주간 거의 방울토마토와 샐러드만 먹으며 지냈고 아내를 홍콩에서 만났는데도 다이어트 중이라고 아내까지 굶기고 말았다. 그때는 무식하게 굶으면서 감량했다면 지금은 운동까지 병행하면서 고지방, 고열량 음식 먹지 않고, 술도 안 마시고 고단백 음식에 꼬박꼬박 정시에 끼니 먹으며 줄인 것이라 의미가 다르다. 실제로 2005년의 다이어트는 서울로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78kg가 되는 요요현상이 있었다. 이번 구속 시의 감량 목표치는 70kg이니까 조금만 더 분발하면 될 듯하다.


  오전 점검 후에는 ‘H2’ 만화책과 ‘사조영웅전’ 등을 반출처리하고 다시 ‘콜디스트 윈터’를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목욕이 있는 날이라 운동이 오전에 있다. 창헌이가 오전 세 번째라고 알려준다. 간밤에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검방이라는 말에 깼다. 자는 동안 인터넷서신 온 것도 몰랐다. 장오가 챙겨 뒀다.


  교도관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오늘의 검방은 뭔가 빡세다. 대충대충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검방을 시작하면 재소자들을 복도로 나오라고 하고 벽을 보고 있으라고 한다.  특별히 걸릴 것 없는 방이야 걱정이 없지만 각 방마다 칼 대용으로 쓰는 못이 한 개씩은 있다. 간단한 것은 그냥 가져가지만 자칫 잘못하면 징벌을 먹을 때도 있다. 평소에 쓰다가도 잘 숨겨두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 5방은 모범수 방이라 걸릴 게 없다. 복도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욕설과 고함이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검방을 마치고 운동 준비를 하는데 교도관들이 건달 한 명을 끌고 간다. 잠시 후에는 마차에 이삿짐도 담겨 나간다. 건달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검방 할 때 폭력상고방인 13방에서 서른두 살 먹은 건달이 교도관들에게 대들다가 징벌방으로 가게 됐단다. 징벌을 다 받은 후에도 우리 사동으로는 돌아오지 못한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장오는 계속 구라를 쳤다.
2. 체중계로 몸무게를 쟀다.
3. 검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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