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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99 "구형 6년"

김유식 2010.08.03 10:32:31
조회 9589 추천 5 댓글 30


  창헌이는 장오의 대학교 이야기가 아무래도 계속 걸리나 보다. 장오에게 딱밤 때릴 것을 줄여주는 대신 대학교에 대해서 이실직고를 하라고 하니 장오는 처음에는 말할 것이 없으니 그냥 맞겠다고 하다가 창헌이가 손가락을 장오의 이마에 갖다대자 실토를 한다.


  “말 할게요. 말 할게요!”


  “아요! 씨발놈! 이 형은 이번에는 진짜 구라가 아니길 바란다.”


  “네.”


  “말 해 봐라.”


  “저 실은 고등학교만 다녔어요.”


  “어디?”


  “대전의 실업고등학교예요.”


  “실업? 무슨 과인데?”


  “기계요.”


  아무래도 수상쩍다. 공업고등학교도 아니고 실업고등학교라고 하는 게 뭔가 냄새가 풍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장오의 농간에 놀아나는 꼴밖에 안 된다. 장오는 몇 주 전 신문에 자신의 출신 대학 광고가 나오지 않았다고 화를 내지 않았던가? 그걸 추궁해야 하는데 창헌이는 오히려 장오의 이실직고를 칭찬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의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학교 이름이 뭐냐?”


  “예지 중, 고등학교요.”


  “야이 씨발놈아. 실업고등학교라면서?”


  “네.”


  “근데 학교 이름이 왜 그래?”


  “진짜에요.”


  “그 학교 어디에 있는데?”


  “말씀 드렸잖아요. 대전에요. 롯데백화점 뒤쪽으로 가면 있어요. 제가 그려 드릴게요.”


  “아이고! 요 씨발놈! 또 구라까네!”


  “진짜라니까요!”


  창헌이가 대전에 무슨 학교 있는지 다 알 길이 없다. 나도 뭔가 의심이 많이 갔다. 실업고등학교의 이름이 중, 고등학교로 묶여 있다는 것도 그렇고 장오의 말이 가슴에 썩 와 닿지는 않았다. 게다가 장오는 학교의 위치까지 그리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으면 쉽게 찾겠지만 여기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물었다.


  “장오야. 선반이 뭔지 아니?”


  실업고등학교의 기계학과 출신이라면 선반을 모를 리가 없다.

  

  “알죠.”


  “뭔데?”


  “기계 깎는 거요.”


  허걱~ 분명히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오의 말이 맞나 보다. 선반을 아는 이상 밀링머신 같은 것을 더 물어볼 필요도 없겠다. 내가 더 말이 없자 창헌이도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장오의 이마에 대고 딱밤을 때리는 시늉을 취했다.


  “아요! 이 새끼 그냥 딱밤을 때렸어야 하는데~”


  위기가 넘어갔다는 안도감에 우리의 뚱뚱 가물치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가나파이를 꺼내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요즘은 장오를 볼 때마다 ‘카이저 소제’가 생각난다.


  TV 드라마 ‘보석비빔밥’을 보면서 편지를 쓰다가 쿨쿨 잠이 들었다. 요즘은 장오가 내 옆에서 자는데 숨을 내 쉬는 바람이 너무나 세서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니까 장오와 철문 사이에서 자는 창헌이도 괴롭다고 말했다. 창헌이는 철문 사이에서의 황소 외풍이 들어오는데 장오는 장오 대로의 대형 입 바람을 내니 양쪽으로 괴롭단다. 장오에게 내가 잠들 때까지 제발 마스크를 쓰고 자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했다. 장오는 알겠다고 했다.



  12월 31일. 목요일.


  괴로웠던 2009년의 마지막 날이다.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니 오늘의 아침기온은 영하 12도. 한낮에도 영하 8도란다. 어묵국으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 다음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썼다. 결국 연하장은 반입시켜 주지 않아서 보낼 연하장이 부족하다. 대신 장오에게 잡지책의 두꺼운 광고지를 뜯어서 편지 봉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장오는 신이 나서 만든다. 아무리 구치소 안이라지만 공짜로 남의 노동력을 착취할 수는 없는 법. 장오가 만들어 주는 편지 봉투를 장당 300원씩 쳐서 사기로 했다. 장오에게 직접 돈을 줄 수는 없으니 장오가 필요한 것을 내 이름으로 사서 주면 된다. 장오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 때문인지 콧노래를 부르며 잡지를 뜯어내면서 봉투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가뜩이나 좁은 방 안을 마구간으로 만들어 대는 재주가 있다. 딱풀도 쓰면 제자리에 두는 게 아니라 멀리 던져 놓거나 굴러가도록 한 다음에 또 풀 붙일 일이 생기면 다른 딱풀을 찾아서 쓴다. 아주 특이한 놈이다.


  오전에 부사장과 옛 직원들의 인터넷서신을 받았고 창헌이는 검사의 구형이 서면으로 왔는데 망했다고 울부짖는다. 창헌이의 결심 공판 때는 검사가 구형을 말로 하지 않고 서면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공범들이 모두 징역 3년의 구형을 받았고, 각각 1년과 1년 6월씩의 선고를 받았는데, 자신은 자그마치 6년의 구형이 나왔다고 난리다. 공범이 뻔히 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각방마다 돌아다니며 양형기준에 대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좀 이상하기는 하다. 6년의 구형이라면 잘 받아도 3년 선고다. 이렇게 큰 구형은 삥발이 절도 사건에서는 보기 힘든 구형이다.


  편지와 일기를 쓰면서 콘푸라이트를 집어 먹다가 점심으로 소고기 무국과 닭다리를 먹었다. 우리가 재료를 내기로 하고 6방에서 김치찌개를 만들어 줬는데 맛이 영 별로다. 역시 찌개는 3방 것이 맛있지만 더 이상 그런 맛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 강간범 소지가 만기 출소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30분간 자고 일어나니 오후 1시 30분이다. 운동 준비를 하면서 귤을 하나 까먹고 나갔다. 오늘은 특히 중무장을 했다. 내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겨울용 관복에 목도리까지 하고 나가서 23바퀴를 뛰고 남는 시간에는 7방의 진모 씨와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진모 씨는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남아 곳곳의 카지노들을 자주 접해서 재미있는 승부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4방의 봉사원인 추사장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대전의 “예지 중, 고등학교”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롯데백화점 뒤에 있다고 하니 추사장은 마침 자신이 그곳에서 10년간 살았는데 그런 학교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추사장은 목포 건달 출신이지만 생활은 대전에서 했었다. 그래서인지 대전의 영웅파 두목이었던 2방의 사형수와도 친하게 지냈다. 뭐 우리 사동의 2방 사형수는 성격이 쾌활하다고 해야 할까? 남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창헌이도 ‘아주 좋은 형님’이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또 추사장은 목포 출신이라 우리 방의 김 회장과도 인사를 잘했다. 나이차는 많이 나지만 아무래도 동향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방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7방의 김두형 사장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해주며 지나갔다. 바로 접견이 있을 것 같아서 옷을 입고 기다렸더니 5분도 안 되어 이름을 부른다. 아내와 직원들이 왔다. 접견장 가는 길에 11중의 안훈도 사장을 만났다. 안훈도 사장도 살을 뺀다고 저녁을 굶고 있다고 하더니 살이 정말 많이 빠졌다. 아내는 직원들과 영화를 보고 왔는데 점심을 먹지 못해 구치소에서 우동을 먹었다고 했다. 구치소 민원실에서 파는 우동은 싸고 맛있다. 학창시절 구립 도서관에서 팔던 토속적인 멸치국물 맛이다. 아내에게 이제부터 뭐 할 거냐고 물으니 직원들과 영화 한 편을 더 보겠다고 했다.


  접견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훈도 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안훈도 사장은 이미 결심공판을 마쳤는데 선고일까지 6주나 걸린다고 했다. 나는 아직 결심도 못했는데 그렇게나 오래 걸리다니!


  방에 오니 바로 인터넷서신이 6통 들어왔다. 다 읽고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20분. 20분 정도는 일기를 쓸 수 있겠기에 책상 앞에서 쓰고 있는데 갑자기 4시 25분에 점검을 했다. 내일이 휴일이라고 일찍 한 듯. 오후 4시 30분에는 창헌이가 갓 삶은 계란을 23개나 가져다줬다.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 개만 먹을까 하고 앉았는데 이재헌 사장이 자기는 두 개 먹었다고 하나 더 먹으란다.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목포 김 회장이 정량이 세 개라면서 하나를 더 꺼내어 놓는다.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따끈따끈한 것이 맛있어서 세 개를 게 눈 감추듯 낼름 먹고 났더니 배가 부르다. 


  목요일 저녁엔 청국장향 찌개. 두부조림, 잡채로 제일 반찬이 맛있는 날인데 이러다가 손도 댈 수 없을 것만 같다. 잠시 후 저녁 배식. 청국장 안에 들은 두부 한 개만 먹으려고 했는데 3방의 뚱뚱 소지가 김치찌개 두 그릇을 가져다줬다. 김치를 건저 먹어보니 캬! 진짜 맛있다. 확실히 뜨끈뜨끈한 것이 맛이 유별나다. 강간범 소지는 출소했더라도 뚱뚱 소지가 옆에서 보고 제대로 배웠나보다. 이것저것 먹다 보니 배가 너무 부르다. 계란도 세 개나 먹었는데! 


  - 계속 -

  세 줄 요약.

1. 장오는 딱밤을 맞는 대신 이실직고 했다.
2. 창헌이는 6년의 구형을 받았다.
3. 과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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