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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07 "출정"

김유식 2010.08.17 14:10:30
조회 8113 추천 3 댓글 28


  1월 6일. 수요일.


  영하 13도의 날씨다. 하지만 지난달에 이미 같은 수위의 추위를 겪어봐서 그런지 그렇게 추운 줄은 모르겠다. 아욱국과 김장김치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약 5분간 정전이 일어났다. 곧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는 했지만 서너 번 계속 정전이 있었다. 강추위 때문에 그런가 보다. 정전이 되니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진다. 잠시 후에는 관구계장이 오더니 오전 중에는 싱크대를 쓰지 말라고 한다. 아래층에서 물이 내려가다가 파이프가 얼어서 터졌다고 했다.


  식사 후 씻고 나서 ‘맥심’ 잡지를 들고 누웠다. 맥심 잡지 만드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디시인사이드 이용자일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잡지의 글들이 이렇게나 디시의 게시물 같을 리가 없다. 목포 김 회장은 출정을 갔고 다른 죄수들은 방에 누워서 뜨끈한 온돌에 등을 지졌다. 나도 잠깐 잠들었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깼다. 이미 머리맡에 아내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고, 잠시 후에는 등기우편이 왔는데 아내가 보낸 명함뭉치와 우표만 도착하고 나머지 편지지와 편지봉투는 교도관이 예고한 대로 반송됐다. 편지와 신문을 읽다 보니 어느덧 운동시간이 됐다.


  오전 11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운동장의 눈은 땡땡 얼어있지만 길이 넓어져서 어제보다는 뛰기가 조금 편하다. 20바퀴를 뛰고 7방의 진모 씨와 이야기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점심 배식준비를 하면서 운동시간에 들어온 구매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접견이란다. 아내다. 오후에 변호사가 올지 모르니 미리 온 듯 하다. 그런데 운동시간 때문에 20분을 더 기다렸나 보다. 나를 보자마자 배고픈데 늦게 왔다고 얼굴을 찡그린다.


  접견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비지찌개에 김치 넣은 것하고 훈제 닭다리를 남겨 놓았기에 점심으로 먹고 구매품 중에 콘푸라이트가 있어서 목 캔디 통으로 옮겨 담았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목욕시간이다. 장오더러 등 좀 밀어달라고 했더니 “대박!”이라면서 놀린다. 진짜 때가 많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목욕을 마치고 보니 오후 1시 40분이다. 변호사 접견이 올 것 같아 미리 옷을 입고 있으니 바로 교도관이 내 이름을 부른다. 강 변호사를 만나 증인 신문 내용을 확인했다. 강 변호사는 어쩌면 내일의 공판이 결심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로서도 재판이 빨리 끝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강 변호사가 돌아가고 대기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공범인 윤모 사장도 변호사 접견을 왔는데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방으로 돌아오니 오후 3시 10분. 아내에게 편지를 하나도 못썼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부지런히 쓰고 아내한테 받은 명함으로 주소를 정리했다. 콘푸라이트를 먹으며 편지를 쓰고 있는데 창헌이가 인터넷서신 3통을 가져다 줬다. 편지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4시가 훌쩍 지났다. 하루하루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


  목포 김 회장도 출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김 회장의 변호사가 보석이나 집행유예에 대한 성공보수 계약을 했으니 그 돈을 달라고 말했는데 김 회장은 “나가 시방 돈이 어딨느냐?”면서 모른 척했다고 했다. 두어 번 정도 그렇게 대답한 뒤로는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없단다. 또 가족이 접견을 오지 않으니 변호사 일을 봐줄 밖의 사람도 없는 셈이다. 선배도, 후배도, 친구도 없다. 나와 이재헌 사장이 궁금해서 계속 따져 물어봤는데 좀 이상하다. 구속은 2009년 8월에 되었지만 가을경에 이미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달라고 했었다는 것은 돈을 먼저 받겠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일이 다 풀렸다는 일종의 암시를 준 것이 아니었을까?


  김 회장은 신용불량자라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보석 또는 집행유예로 출소하더라도 돈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변호사가 미리 돈을 달라고 한 것은, “돈만 주면 빼내 주겠다.”의 다른 표현이었을 텐데 그것을 무시해서 5개월째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 됐다. 변호사와 이야기를 더 해보라는 말에 김 회장은, “몇 번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전화를 했는데 더 오지 않는다.”면서 혀를 찼다. 내가 볼 때 혀를 차야 하는 것은 김 회장이 아니라 그의 변호사인 것 같다. 김 회장은, “나가 여그서 나가야 돈을 만들어 줄 것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변호사는 분명히 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점검 직전에는 창헌이가 ‘옛날 단팥빵’을 오뚜기통의 스팀으로 데워왔다. 목포 김 회장이 바로 달려들어 뜯어 먹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기에 나도 한 점 먹어보았다. 꼭 시장에서 파는 고로케 맛이다. 이렇게 단팥빵이 맛있을 줄이야! 오후 점검을 받은 후에 콩나물국과 오징어 양배추볶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양치하고 나서 다시 지인들에게 보낼 편지를 정리하고 우표도 붙였다. 불량 장오는 이번엔 ‘홈런볼’을 가져와서 내 앞에다가 두고 뜯었다. 나의 입과 손은 장오에게 화를 내며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으나 이상하게 손은 홈런볼을 집었고 입은 욕 대신 그것을 아껴 씹어댔다. 나도 모르는 나의 멀티태스킹 능력이다. 특히 요즘처럼 굶어대는 무식한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그 능력이 배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자기 직전에는 ‘보석 비빔밥’을 보면서 편지를 쓰다가 뜨거운 물에 ‘구운 계란’을 데워서 먹었다. 내일은 드디어 출정이 있는 날이다. 덜덜덜



  1월 7일. 목요일.


  오늘 아침의 날씨는 꽤 춥다. 뉴스에서는 영하 14도라고 했는데 방 안에서만 있으면 추운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창헌이가 밖으로 나가보니 사동 복도가 얼어있다고 했다. 어묵국에 김치를 말아서 아침을 먹고 누워서 ‘맥심’ 잡지 2004년 10월호를 읽다가 배가 고픈듯하여 책상에 놓고 읽으면서 콘푸라이트를 먹었다.


  한 달 전쯤 13방의 건달에게 1,750원짜리 우표 세 장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게 이제야 돌아왔다. 그런데 그 건달은 계산을 잘못했는지 창헌이를 통해 250원짜리 우표 30장을 보냈다. 더 받은 9장은 창헌이에게 줬다.


  오전 10시쯤 편지를 쓰려고 준비하는데 교도관이 내 이름을 부르고 가버린다. 뭔가 했더니 접견이란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오다니~ 친구가 왔는데 접견장 가는 길이 무지무지 추웠다. 10분간 떠들고는 돌아오니 아내와 직원의 인터넷서신이 와 있다. 편지를 읽은 다음에는 답장을 썼다.


  장오는 옆에서 신입 김 사장의 베갯잇을 꿰매고 있다. 전방 올 때도 바지를 타이트하게 줄여 입고 오고, 내 바지 주머니도 만들어 준 것으로 봐서는 장오는 바느질 하나는 자신 있어 하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재주가 하나씩 있는 것 같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지 않는가?


  오늘 점심메뉴는 식단표에 적힌 것을 쓰자면, “쇠고기 무국”, “콩나물 무침”, “오이양파 무침”, “김장김치”다. 오늘은 국이 좀 이상했다. 평소에는 소고기 조각이라도 조금씩 들어있었는데 오늘은 온통 소기름 천지다. 기름만 두껍게 떠 있고 몇 조각 있는 고기도 모두 기름 부위만 남아 있다. 아마 제대로 젓지 않았나 보다. 기름은 건져내고 김치를 말아 먹은 후에 출정 준비를 했다.


  씻고 나서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셨고, 어제 득템한 레어아이템인 스카치 캔디를 두 개 챙겼다. 오후 12시 50분이 넘었는데도 출정자를 부르러 오지 않더니 1시가 되어서야 교도관이 부르러 왔다. 수갑을 차고, 포승과 연승을 하는 중에 이파리 두 개의 젊고 뚱뚱한 교도관이 또 말을 건다.


  “어휴~ 대장님 오셨네! 우리 대장님 빨리 나가셔야 할 텐데요.”


  나는 “글쎄요.” 정도로만 간단히 대답하고 차에 올랐다. 법원에 도착해서는 공범인 윤모 사장과 화장실에 같이 가면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고 바로 303호 법정으로 올라가는데 이번엔 경비교도대원 한 명이 “대장님! 언제 나가세요?”라고 묻는다. 이번에도 “글쎄요.”로 대답했다. 나갈 수 있을지도 사실 확신이 서질 않고, 재판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잘 모르니까 대답하기가 궁색하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정전이 있었다.
2. 목포 김 회장은 분명히 나갈 수 있었는데 대응을 잘못 한 거 같다.
3. 출정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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