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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밤/문학/4번] 2122년 우주항법 개론앱에서 작성

Schne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21 22:12:23
조회 149 추천 12 댓글 9

우주항법 개론 강의의 마지막은 블랙홀의 위험성과 탐지에 관한 내용이고, 항상 마지막 강의땐 같은 질문이 나오곤 했다. 오늘도 아마 예외는 아니리라.

"그렇다면 어떻게든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블랙홀을 탈출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에 이미 수백번 답을 해본 케이트는 짧게 대답했다.

"아니요. 이미 늦은거에요."

질문을 던진 실습생은 역시 지나치게 짧은 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빛이다.

"여러분이 블랙홀에 '접근'한다 할려면,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생각해야죠."

케이트가 덧붙였다.

"블랙홀과 같은 극단적 천체 근처에서는 1초가 지나더라도 밖에서는 수백년이 지날 수 있죠."

케이트는 뒤의 화면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은 큰 점을 하나 그리곤 그 점을 중심으로 여러 원을 그렸다. 케이트 교수가 그리는 원은 따로 보정도 하지 않는데 항상 완벽했다.

"그 효과는 특이점에 접근할수록 심화되어..."

케이트는 점점더 좁은 원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에 다다를 즈음엔 이미 우주의 수명이 다한 다음이겠지요. 상대론적 효과를 고려할 땐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문제라는걸 항상 기억하세요."

케이트는 이렇게 답변한 후의 학생들의 표정을 보는걸 즐겼다. 사실 질문의 가정을 깔고 보자면 정확한 답변은 아니겠지만, 우주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꺼내어내고 나면 대부분은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더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수식을 넣어서 몇번 연습해보고 나면 저런 질문이 왜 성립하지 않는진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 문제될 건 없으리라.

유달리 새하얀 머릿결을 지닌 한 여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오기 전까진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케이트 교수님, 혹시 마지막 항해는 블랙홀로 가겠다는 사람 보신 적 있나요?"

케이트는 잠시 케톤급 우주선의 항해사로 있던 시절을 회상했다.

"많죠. 아주 많아요. 어떤 면에선 낭만적이지 않나요? 인생의 마지막에 뒤틀린 시간축을 따라 우주의 종말까지 따라간다는 것 말이에요."

"직접 보신적도 있나요?"

"딱 한번이요. 작은 탈출정을 타고 들어가는걸 봤죠. 우리은하 중심의 거대한 블랙홀이라면 탈출정 정도 폭의 우주선을 써서 지평선까지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거든요."

학생은 이 대목에서 유달리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수업때 이야기한 그대로죠. 지평선에 다다른 우주선은 빨갛게 변하고 곧 사라졌어요. 그게 끝이죠."

"저도 가고싶어요"

말을 마치고 책상의 물을 한모금 들이키던 케이트는 당황해서 물을 뱉어내고 말았다.

"아... 미안해요. 앞날이 창창한 학생이 대체 왜?"

"만약에 지평선 다음에 말이에요."

학생은 케이트 책상의 화면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더니 수식을 몇개 적어 내려갔다.

"NGC 1222 정도라면 지평선 이후로도 30광분 정도는 소형정이 버틸수준의 환경일텐데..."

실수없이 여러 단계가 화면에 술술 적히자 케이트는 미소지은 채 의자를 바짝 끌었다.

"진입당시 속도가, 특정값 아래라면, 내부에서 시간항 자체를 소거할수 있는 조건이 나오더라구요. 이 경우 시간값이 무엇이 되어도 모순이 없구요."

유명한 이론이다. 사실 마지막 항해를 블랙홀로 떠나는 이들이 모두 돌아오지 못할 종말로의 시간여행을 바라고 가는건 아니다. 그런 생각이라면 훨씬 더 접근하기 쉬운 블랙홀이 많이 있으니.

다들 NGC 1222를 블랙홀 편도여행의 성지처럼 생각하는덴 방금 말한 조건을 맞추면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는 걸 케이트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요. 하지만 나같으면 시도하지 않겠어요."

"왜죠?"

"시간을 혹 초월해 버린다면 영원히 저 공허속을 헤매야 하진 않을까요? 그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으며 모험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구요."

"하지만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요? 소문대로라면 시간대를 초월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대로 마음껏 돌아갈수도 있다고 하는데"

"맞아요 모르죠. 저도 처음엔 모든걸 잊고 한번 빠져보고 싶었던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교수님은 돌아가고 싶으신 때가 딱히 없으신 건가요?"

"물론 있지요. 아주 행복했던 시간. 이제는 너무 오래 전이지만... 기억은 아직 생생하네요. 그래서 모험이 싫은거에요. 그 기억마저 잃을까 두렵거든요."

학생은 이제야 아까 수업때 다른 학생들이 보이던 숙연한 표정을 짓는다.

"오랜만에 즐거운 이야기였어요."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연구실에 남은 케이트는 주머니속에서 자그마한 홀로그램 하나를 꺼냈다. 홀로그램은 그녀의 기억 파편을 모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재생해주었다. 아직 그녀의 기억이 완전한 탓에 홀로그램은 어제 찍어온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선명했다.

이제 벌써 열 네번째 이름. 케이트. 수백년 전에 한때 엘사라 불리던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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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안탄절 맞아서 마지막 문장만 끼워맞추려 한번 써봤어! ㅋㅋ
이과냄새 풀풀나는거 같지만 이름만 가져오고 고증은 대충했으니 뭔가 이상한게 맞는거야~!
해피 안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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