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이런 플랫폼이 있는 줄. 기독교 웹툰 플랫폼 에끌툰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는 어느새 '웹툰 플랫폼'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네이버와 카카오를 떠올린다. 거대한 자본, 빠른 업데이트, 익숙한 소비 방식에 길들여진 탓에, 그 바깥에서 다른 결의 이야기들을 지키며 오래 버텨온 작은 플랫폼들의 존재를 쉽게 놓치고 있지 않았나?
에끌툰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플랫폼이 단순히 작품을 올려두는 서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플랫폼이란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남길 것인가에 대한 태도이고, 작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며, 독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2017년 12월의 에끌툰은,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뉴얼 오픈 이후 처음 열린 작가 모임, 추운 날 먼 길을 와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 따뜻한 점심과 커피, 그리고 빵 멤버십과 밥 멤버십 가입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고마움. 그 장면은 단순한 운영 후기가 아니라, 플랫폼을 함께 지탱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한 컷처럼 읽힌다. 당시 에끌툰은 멤버십 가입자 500명을 첫 목표로 세웠고, 6주 만에 그 절반인 250명에 도달했다. 숫자만 보면 아직 한참 부족해 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었던 것 같다. 작품 수를 무턱대고 늘리기보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수준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다짐, 느리더라도 한 작품씩 소중하게 발견해가겠다는 태도. 플랫폼의 정체성은 결국 이런 문장들에서 만들어진다.

출처=에끌툰
에끌툰은 2015년 여름 문을 연 뒤, 기독교 콘텐츠 웹툰이 주간 연재되고, 멤버십을 통해 작가 고료가 지급되며, 양질의 작품이 이어지는 보기 드문 선순환의 사례가 되어왔다고 한다. 그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재정난도 있었고, 인수와 독립을 거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들에게 고료가 한 번도 미지급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 플랫폼이 얼마나 성실하고 꼼꼼하게 버텨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전혀 다른 온도로 2026년 3월의 공지가 올라온다. 대표의 급여와 작가 고료가 몇 달째 지급되지 못하고, 새로 선보인 작품들은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으며, 멤버십은 2년 넘게 꾸준히 줄어들어 왔다고 한다. 결국 연재작 전체가 무기한 중단될 수도 있다는 절박한 문장이 공지에 올라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독자들의 후원과 따뜻한 조언이 이어졌고, 내부 논의를 거친 개선 계획과 신작 안내가 다시 공지되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오간 낙차는, 플랫폼의 생존이 얼마나 위태로운 줄타기 위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그 줄을 끝내 끊어지지 않게 붙들고 있는 것이 결국 독자의 손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해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에끌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우리는 정말로 다양한 플랫폼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해야만 다양한 이야기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모두가 같은 구조, 같은 기준으로 움직이는 시장에서는 결국 비슷한 작품만이 눈에 띄게 된다. 작고 느리고 성격이 뚜렷한 플랫폼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 있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품는 곳, 특정 가치와 세계관을 차분히 다루는 곳, 잔잔하고 예쁜 일상 서사를 놓치지 않는 곳, 상업적 주류와 한 발짝 비켜선 작품들을 끝까지 데리고 가는 곳. 이런 자리들이 있어야 창작 문화도 비로소 건강해질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런 플랫폼들은 있었고 존재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아이나무툰, "이걸 만화로 배워?"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이만배,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만화경. 특히 만화경은 무료로 볼 수 있었고, 작품 하나하나가 참 조용하고 단정하고 예뻤다. '거를 타선이 없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었다. 더구나 작가들에게 원고료를 지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서비스가 종료됐다.
그때부터 묵직하게 남는 질문이 생겼다. 우리는 무료로 운영되던 그 플랫폼에 무엇을 돌려주었을까. 작품을 즐겨 읽고도 조용히 지나가지는 않았을까. 좋아요 하나, 짧은 응원 한 줄, "이 작품 덕분에 오늘이 좋았습니다" 같은 작은 반응조차 아끼며, 너무 소비자답게만 머문 것은 아니었을까. 운영의 구체적인 사정은 외부에서 다 알 수 없다.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열심히 자리를 만들고 좋은 작품을 담아도 돌아오는 목소리가 너무 적다면, 이 길이 맞는지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응원과 칭찬에 참 인색한 사회를 살고 있다. 특히 무료인 것에는 더욱 그렇다. 좋으면 조용히 보고, 아쉬우면 금방 떠난다. 그러나 플랫폼은 조용한 호감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어떤 자리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거기 머문 사람들이 자신이 머물렀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댓글 하나, 멤버십 하나, 후원 한 번, 공유 한 번이 단순한 행동처럼 보여도, 그것은 사실 그 플랫폼의 다음 달을 만드는 일이다. 작은 플랫폼에게 독자의 반응은 통계가 아니라 생존의 근거이고, 격려가 아니라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 실질적인 이유가 된다.
요즘 우리는 다양성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양성은 구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모두가 대형 플랫폼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작은 생태계가 사라지는 것을 그저 아쉬워하는 데서 멈춘다면, 결국 남는 것은 가장 안전하고 가장 큰 곳뿐이다. 건강한 창작 문화를 원한다면, 건강하게 버티고 있는 작은 자리들을 더 면밀히 살피고,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독자의 문화도 바뀌어야 하고, 지원 정책의 시선도 한층 더 섬세해져야 한다. 좋은 플랫폼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으며, 생겨났다고 해서 저절로 유지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에끌툰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기독교 웹툰 플랫폼의 사정만으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플랫폼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플랫폼을 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차분히 되묻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다. 플랫폼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서비스 하나가 종료되는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만 가능했던 이야기의 결이 지워지고, 그곳에서 자랄 수 있었던 작가의 시간이 멈추며, 그곳을 통해 위로와 질문을 얻던 독자의 자리까지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좋은 플랫폼은 많아야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 바깥에도 더 많은 세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누군가의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조금 더 적극적인 응원, 조금 더 분명한 칭찬, 그리고 가능하다면 기꺼이 지불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창작 생태계는 결국 작품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작품을 둘러싼 관계와 태도, 그리고 함께 버텨주려는 마음으로 유지된다. 에끌툰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배웠다. 우리가 정말로 다양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제는 그 이야기가 머물 자리를 함께 지키는 일도 우리의 몫임을 기억해야 한다.
김한재 교수는...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한재 교수는 세종대학교 멀티미디어애니메이션전공으로 석사, 상명대학교 감성공학 박사를 받았다. 교과서만화(1995)> 학습만화가로 데뷔했으며, 애니메이션산업백서, 만화산업백서, 캐릭터산업백서 집필진으로도 활동했다.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산업과 콘텐츠 이야기를 풀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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