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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이 미웠어요 [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소년심판

파이낸셜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4.06 09: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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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한 번만 잘못 디뎠을 뿐인데 그 한 걸음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나이. 소년재판정에 서 있는 소년들의 어깨는 어른 피고인들보다 훨씬 더 작고 가볍습니다.

숫자로만 보이는 1호부터 10호까지

소년재판에서 심리개시된 보호소년에게는 유죄·무죄 판결 대신 불처분 또는 1호부터 10호까지의 ‘보호처분’이 내려집니다. 숫자는 마치 학년처럼 올라가지만 여기서의 숫자는 높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생활의 자유가 점점 더 줄어든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1호·2호·3호는 교육과 사회봉사를 수반하지만 보호소년에게 많은 자유가 보장되는 편입니다. 4호·5호는 보호관찰관이 보호소년을 정기적으로 만나 그들의 생활을 세밀하게 점검하는 단계입니다. 6호부터는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서 소년의 신체적 자유가 눈에 띄게 제한됩니다. 7호는 치료와 요양이 필요한 소년을 위한 의료시설 위탁, 8·9·10호는 기간만 다른 소년원 송치입니다.

소년부 판사의 주문은 “보호소년을 ○호 처분에 처한다”라는 딱딱한 문장 몇 줄에 불과하지만, 이는 한 소년이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의 계절을 어디서 보내게 될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선언입니다.

6호 처분, 소년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처분

소년들이 제일 싫어하는 숫자는 의외로 10이 아니라 6입니다. 1~5호까지는 집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6호부터는 ‘시설에 들어간다’는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판사님 전 소년원 갈 만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시설에 가나요?” 6호 처분을 받은 뒤 거의 모든 소년이 비슷한 말을 합니다. 6호 감호위탁처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에 보호소년을 위탁하는 처분입니다.

학교 대신 아동복지시설, 친구 대신 또래 보호소년들, 부모 대신 시설 선생님들. 소년부 판사가 볼 때는 ‘가정은 불안하지만 소년원까지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선택하는 중간 단계’에 가깝지만, 소년에게는 ‘갑자기 집에서 쫓겨나 낯선 기숙사에 던져진 느낌’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6호 처분을 받은 직후 소년의 표정은 대개 이렇게 바뀝니다. ‘판사님,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라는 눈빛으로요.

판사와 재판 당사자가 함께 밥을 먹는 이상한 풍경

필자가 소년부 판사로 근무하던 수원가정법원은 6호 시설에서 퇴소하기 약 한 달 전의 보호소년들과 함께 밥을 먹는 ‘퇴소 전 법관 면담’을 시행했습니다. 민사·형사 재판 과정에서 판사와 재판 당사자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뉴스에 나올 일입니다. 하지만 소년 재판부에서는 그 장면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음식을 담으며 서로 어색하게 “잘 지냈어?” “네…”를 주고받는 동안 법정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밥숟가락 사이로 흘러나옵니다. “여기 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휴대폰 못 쓰는 거예요.” “그래도 요즘엔 아침에 눈 떠도 욕부터 안 해요.” 소년부 판사는 이 자리에서 두 가지를 봅니다. 그 소년의 눈빛이 처음 법정에서 만났을 때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졌는지, 그리고 “다시는 안 올게요”라는 말이 습관적인 말이 아니라 스스로 믿고 있는 약속인지.

“판사님이 미웠어요”

필자로부터 6호 처분을 받았던 소년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소년이 한 명 있습니다. 처분 직후 6호 시설을 방문했을 때 그 소년은 내 눈을 피해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습니다. 면담실에 앉혀 놓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질문을 해도 “네…”, “아니요…” 정도의 대답만 겨우 했습니다. 그런데 시설 선생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소년은 생활 태도도 모범적이고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만 보면 저 표정이구나.’ 판사인 나만 그 소년에게 여전히 ‘나를 여기 보낸 사람’으로 남아있는 셈이었습니다.

시설 퇴소를 며칠 앞두고 마지막으로 판사실에서 그 소년을 다시 만나 면담했습니다. 말수는 여전히 적었고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벽시계 초침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오늘도 그냥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어 “몸은 괜찮지? 나가서도 잘 지내라”라고 말을 건네며 면담을 마치려던 순간 문을 나서던 소년이 갑자기 뒤돌아보더니 수줍게 말했습니다. “판사님. 처음에 6호 처분하셨을 때 진짜 화났고 많이 미웠어요. 근데 여기서 6개월 지내보니까…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볼 수 있었고, 나쁜 습관도 많이 고쳤어요. 그래서… 지금은 감사합니다.” 그 몇 마디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훅 들어와 당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 잘 지내라”라는 말밖에 못 건넸지만 그 소년이 문을 닫고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납니다.

소년부 판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신중하게 선택한 처분이 보호소년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여 그 소년을 다시 법정에서 마주할 때입니다. “어떤 처분을 해야 이 소년이 바뀔 수 있을까?” “내가 내린 이 결정이 이 소년 인생에서 작게라도 좋은 방향으로 흔적을 남기면 좋을텐데…” 소년의 ‘수줍은 고백’은 그 오랜 고민과 회의를 잠깐이나마 조용히 덮어 주는 따뜻한 담요 같은 말이었습니다.

형벌이 아니라 함께 찾는 ‘다른 한 걸음’

소년보호처분은 형벌이 아닙니다. 처벌이 목적이라면 굳이 판사가 시설을 찾아가 생활을 살펴보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소년의 눈빛을 확인할 이유도 없습니다. 소년법의 보호처분은 비행의 늪에 발이 빠진 소년이 거기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라고 보는 편에 더 가깝습니다. 1호부터 10호까지의 숫자는, ‘얼마나 세게 혼낼 것인가’의 단계라기보다 ‘어떤 환경이 이 소년에게 가장 도움이 될까’를 고민한 끝에 고른 서로 다른 종류의 처방전입니다.

물론 판사의 선택이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년부 판사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마음으로 처분을 결정합니다. ‘이 처분이 보호소년에게는 다시는 법정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처분이 되기를.’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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