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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장편연재] 즐거운 토모 5. 토모 3화

플스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02 03: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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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스피커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흰 방에는 토모와 남자만이 있었다. 남자는 일어선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바닥에 누운 토모는 숨 고를 새도 없이 일어나야 했다. 자세를 가다듬었다.

 먼저 달려온 것은 상대였다. 토모는 양손으로 남자의 팔을 잡아 남자를 막아냈다. 남자는 발로 토모의 다리를 걸려 했다. 그 수는 이미 당한 수였다. 토모는 자세를 가다듬어 남자의 기술을 막았다.

 그러나 남자의 발기술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토모의 손힘이 줄어든 틈을 타 토모의 목깃을 붙잡아 땅에 매쳤다.

 -다시!

 스피커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토모는 다시 일어났다. 다시 남자는 토모에게 달려왔다. 남자는 똑같은 발기술과 똑같은 손기술을 썼다. 이미 토모는 남자의 기술을 간파하고 있었다. 토모는 남자의 기술을 막아냈다. 아무리 남자가 무술의 고수라 한들 토모는 바이오로이드였다. 그정도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세번째 기술을 막아내지 못했고 토모는 다시 땅바닥에 매쳐졌다.

 -다시!

 스피커에서 또다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토모는 다시 일어났다. 몇시간째였을까. 몇명째였을까. 토모는 기억하고 있었다. 10시간 39분째, 20명째의 남자. 그리고 그중 셋은 두번이나 상대한 남자였다. 스피커의 목소리는 이걸로 세명째였다.

 ‘오늘의 훈련은 다양한 공격에 대한 대응이다.’

 그녀의 교관의 말이었다. 다양한. 그 말의 의미를 토모는 4시간 27분째야 알았다. 가능한 모든공격에 대한 대응. 그 강행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6시간이 넘은 지금도 그 훈련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보다 우월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기계처럼 무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도 결국은 지치는 생물이었다. 그 시간이 인간보다 길 뿐이었다.

 시야에 왜곡이 일어나고 있었다. 땅을 구별할 수 없었다. 눈앞에 흰 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나 방 밖의 교관은 그녀의 훈련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가 얼마나 하는 것인가. 그것을 알 방법이 없었다.

 토모는 그저 기계적으로 눈앞의 남자를 상대할 뿐이었다.

 -다시!

 토모가 땅에 매쳐지자 다시 그 음성이 들려왔다.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토모는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일어날 수 없었다.

 -다시!

 스피커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니, 조금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 말을 들은 뒤에야 토모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토모는 두 주먹을 들어올렸다. 남자가 달려왔다. 토모는 생각했다. 남자는 자신이 할 행동을 알고 있었고 그 뒤에 할 행동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것은 그 예상을 깨는 것이었다.

 토모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토모는 잠깐이지만 남자의 당황한 눈빛을 보았다. 남자가 토모의 팔을 잡았다. 이제 형세는 반대로 되었다. 토모는 남자의 다리를 걸었다. 남자는 무술의 고수였다. 토모가 남자의 다리를 걸기 위해 한쪽 다리를 든 순간, 재빨리 자신의 체중을 토모에게 실었다. 중심을 잃은 토모는 뒤로 넘어졌다.

 땅바닥에 넘어진 토모의 위에 남자가 올라타 다리로 그녀의 양팔을 제압했다. 토모는 무릎으로 남자의 등을 가격했고 그 반동으로 남자를 위쪽으로 밀어냈다. 남자는 토모의 위쪽으로 날아갔고 토모는 재빨리 일어났다. 땅을 한바퀴 구른 남자는 그 반동으로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토모에게 맞은 등이 아픈 것인지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스피커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토모에게 달려들었다. 토모는 남자를 잡지 않았다. 남자의 체중을 이용했다. 남자의 관성을 이용했다. 토모는 남자의 팔을 붙잡지 않았다. 남자의 옷깃을 잡은 토모는 남자의 관성을 이용해 그를 그대로 바닥으로 매쳤다. 바닥에 튕긴 남자는 토모의 가슴 높이까지 올라왔다.

 그 뒤 바닥에 엎어진 남자는 고통에 일어나지 못했다. 토모는 벽을 바라보았다. 교관은 어디선가 그녀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자,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것인가. 이거면 되는가.

 -다시!

 스피커에서는 매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토모의 배는 될법한 덩치의 검은 피부를 한 남자였다. 딱 봐도 권투 선수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자는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손에는 철제 너클이 끼워져 있었다.

 남자는 황동색 너클이 끼워진 양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 속도는 토모가 눈으로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남자는 스텝을 밞으며 토모에게 가까워졌다. 토모는 두 주먹을 높이 들어 남자의 주먹을 막을 준비를 했다.

 남자의 잽이 날아왔다. 토모는 뒤로 물러나 잽을 피했다. 남자의 잽은 연속으로 날아왔다. 잽 잽 잽 잽 훅. 남자의 훅을 보지 못한 토모는 그대로 남자의 훅에 얼굴을 맞았다.

 순간 시야가 사라졌다 돌아왔다. 바이오로이드의 골격은 바이오로이드의 근력을 이길 수 있는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인간이었다면 한방에 죽을 지도 모르는 권투 선수의 일격을 토모는 맞고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녀에게 전해진 충격은 그럼에도 적은 것이 아니었다. 뒤이어 들어온 남자의 잽조차도 피하지 못한 그녀는 다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다음은 잽이 아니었다. 남자는 바로 훅을 토모의 얼굴에 날렸다.

 훅을 맞은 쪽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일시적인 시각마비였다. 토모는 이렇게 당할 수 없었다. 주먹을 내질렀지만 남자는 여유롭게 토모의 주먹을 피하고 다시 잽을 먹였다. 토모는 양 팔을 들어 남자의 주먹을 막았다. 막는 것으로 벅찼다.

 팔로 주먹을 막는 것은 버틸만했다. 점차 토모의 시야가 제대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공세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남자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남자는 공격을 멈추고 발로 토모의 고간을 걷어찼다. 무방비했던 하반신의 충격에 토모는 반사적으로 양 팔을 내렸다.

 남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남자의 온몸이 실린 펀치는 토모의 머리에 맞았다.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토모는 자신이 뒤로 넘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오히려 땅이 올라와 자신의 뒷통수를 친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스피커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니면 그런 소리가 들렸다고 토모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토모는 다시 일어나야 했다는 것이었다. 일어난 것인가, 누워있는데 일어난 것으로 착각한 것인가.

 그런 것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토모는 다시 양주먹을 들었다. 양 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근육이 외치는 단말마였다. 남자는 그런 토모를 신경쓰지 않았다. 토모가 제대로 준비하기도 전에 남자의 잽이 날아왔다. 간신히 그 잽을 막자 남자는 비어있는 토모의 배에 블로를 날렸다. 몸이 움츨어들었고 그녀의 가드가 내려갔다. 그 순간 남자는 다시 토모의 얼굴에 훅을 날렸다.

 버텨야 한다. 토모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다시 두번 훅을 날렸고 토모는 두 공격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두 팔을 내린 토모의 얼굴에 남자는 다시 주먹을 날렸고 다시 토모는 바닥에 넘어졌다.

 -다시!

 또 그 소리였다. 이제 지긋지긋했다. 토모가 일어나지 않자 남자는 토모의 위에 올라타 그녀의 얼굴에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16번이었다. 정신이 나가있을 때 맞은 것을 세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마 그녀의 얼굴은 원래의 형태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단단한 합금 골격조차 어딘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만하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이 반복될지도 몰랐다. 어쩌면 토모의 기억은 가짜고 그녀는 여기서 싸우고 죽고를 반복하는 실험대상일 지도 몰랐다. 웃음이 나왔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어쩌면. 토모는 어느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토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행동했다. 양팔로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남자의 얼굴에 박치기를 했다.

 “으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자는 물러났다. 토모는 뒤구르기를 하며 남자에게 거리를 둔 채 일어났다. 주먹쥔 손을 몇번 폈다 접으며 손을 풀었다.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토모는 지체하지 않고 역시 주먹을 날렸다.

 크로스 카운터. 서로의 주먹은 서로의 얼굴에 들어갔다. 토모는 이정도면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바이오로이드의 제대로 된 주먹에 맞고 버틸 남자인 것일까. 그것을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토모는 재빨리 뻗은 주먹을 뒤로 빼며 반대쪽 주먹을 내질렀다. 잽 잽 잽. 그리고 훅. 바이오로이드의 주먹은 너클을 낀 권투선수의 주먹보다 강하고 빨랐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그것은 인간세계의 말이었다. 토모는 그저 벌처럼 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자는 토모의 주먹을 피했지만 피하지 못한 주먹은 치명적이었다. 남자는 서서히 무너져갔고 결국은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피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모는 남자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천히 주먹을 내질렀다. 남자의 피가 땅바닥에 퍼져나갔다. 더 이상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아니면 이미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토모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주먹으로 남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게 남자의 얼굴이었나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스피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토모는 두 손을 모아쥐고 있는 힘껏 내리쳤다. 토모는 두개골이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로 흥건한 바닥에 남자의 뇌수가 퍼져나갔다.

 온몸이 피로 뒤덮힌 토모는 일어나 벽을 바라보았다. 이게 너희들이 바라는 것인가. 이것으로 충분하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그러나 스피커는 다시 무감정한 목소리를 울려퍼트렸다. 그 직후 문이 열리고 여러 남자들이 들어왔다. 토모는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쇠파이프, 접이식 칼, 야구방망이, 체인. 토모는 그들을 원망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니, 얼굴은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남자들이 달려왔다.

 
 ‘다시!’

 머릿속에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토모의 눈앞에는 네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토모의 위에는 한 남자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뒤에는 쇠파이프를 든 남자가 있었다. 여섯명의 남자. 하지만 그보다 두세명이 더 있을 것이었다. 아홉명의 남자. 그들이 토모가 싸울 상대였다.

 토모는 빈 라무네 병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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