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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장편연재] 즐거운 토모 12. 흔들다리 효과 4화

플스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8 0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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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정리글 : https://gall.dcinside.com/m/lastorigin/1596905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츠시타는 엘리베이터 창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취업준비하던 시절 이후로 처음으로 입는 정장이었다. 검붉은색 정장을 입은 자신의 모습은 아무리봐도 어색해 보였다.

 산지 몇 년이나 된 정장은 잘은 모르지만 유행이 몇 년이나 지났을 것이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없는 그녀가 자신을 꾸미기 위해 입을 만한 옷은 이정도가 한계였다. 명품은커녕 양복중에서도 싼 축에 속하는 옷일 것이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하고 화장한 그녀의 모습에서는 평소의 마츠시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간단히 바르고 묶기만 하던 그녀는 화장하고 머리를 정돈하는데 오랜 시간을 썼어야 했다. 그런 그녀 옆에 있던 꾸미지 않아도 미인인 토모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발에 신은 하이힐은 발에 익을 정도로 신지도 않나 슬슬 발목이 아파오고 있었다. 균형도 못잡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걷는데는 큰 무리는 없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바깥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자. 오랜 불황속에서도 과거의 명맥을 이어가는 거리였다.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세가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도쿄 제일의 땅값이라는 타이틀은 아직 고수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꾸미고 나온 것은 츠즈라누키 이치카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츠시타에게 긴자의 어느 바에서 만나자고 했고 마츠시타가 알아본 결과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 바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에 옷을 대충 입고 가서 놀림거리가 되거나 츠즈라누키 의원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보통의 여자라며 이런 곳에 가기 위한 고급 명품이 하나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마츠시타는 그런 쪽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츠시타는 긴자의 야경을 보며 긴장을 했다. 이 모습으로 괜찮은 것인가. 괜히 갔다가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것은 아닐까. 어찌보면 자의식 과잉일지도 몰랐지만 사람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갈수록 보이는 야경은 점점 넓어져갔다. 마츠시타는 창밖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옷 매무새와 숨을 가다듬었다. 들어가기전 담배라도 한대 피우고 싶었지만 담배냄새를 풍길 수 없었고 그녀는 애써 참아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마츠시타는 문 앞에서 목에 맨 넥타이를 마지막으로 고쳐맸다. 천천히 문이 열리자 바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는 별도의 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연결되어 한층 전체를 쓰는 모양이었다. 한쪽에는 말 그대로 바가 있었고 반대편 창가에는 테이블들이 늘어서 야경을 볼 수 있게 되어있는 형태였다.

 모던 클래식. 마츠시타는 예전에 이 말을 들은 이후로 한번도 그 단어에 대해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고전적과 현대적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에 들어선 순간 마츠시타는 그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바였지만 그런 와중에 현대적인 심플함을 가미하고 있었다. 검은 벽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은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붉은색 의자는 그 장소에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재즈 음악이 들려왔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음악이겠지 하던 마츠시타는 바 한쪽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발견했다. 피아노와 베이스, 색소폰, 드럼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밴드였다. 마츠시타가 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아마도 즉흥 재즈를 연주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혼자 오셨습니까?”

 젊은 웨이터가 점잖은 몸짓으로 마츠시타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뇨. 일행이 있을 겁니다. 츠즈라누키 이치카입니다.”

 마츠시타의 말을 들은 웨이터는 잘 안다는 눈빛을 하며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츠즈라누키 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바에 예약이 되어있으니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츠시타는 웨이터가 안내한 자리에 가 앉았다. 바텐더가 바로 보이는 자리였다. 뭔가 부담스러워진 마츠시타는 메뉴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뉴판에는 영어이긴 한 건가 의심스러운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문자열이 보였다.

 그녀가 메뉴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메뉴판 오른쪽에 쓰여진 엔표시와 뒤의 숫자였다. 가격을 읽은 마츠시타는 담담한 척을 하며 속으로만 놀랬다. 대부분의 메뉴가 기본으로 만엔 단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명 술이 적힌 것 같았지만 만엔 단위라니, 마츠시타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이었다.

 “마츠시타씨!”

 자신을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에 마츠시타는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츠즈라누키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딱 봐도 명품처럼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의상이었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츠즈라누키는 종종걸음으로 마츠시타에게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차가 막혀서 말이죠. 확실히 연말이 다가오긴 한 모양이에요.”

 코트를 벗어 자연스럽게 웨이터에게 건네준 츠즈라누키는 마츠시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아뇨. 저도 온지 얼마되지 않았어요.”

 마츠시타는 손목시계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녀가 온지 10분도 되지 않긴 했다. 약속시간으로 따지면 오차범위 내라 해도 될 정도였고.

 “일단 마실 거 시킬까요? 마츠시타씨는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마츠시타는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메뉴판을 떠올렸다. 여기서 어떻게 반응해야 자연스러운 걸까.

 “가격이 부담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오자고 한 거니 제가 사드려야죠.”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여기서 제대로 마신다면 24개월 할부로 긁어도 가계에 부담이 될 정도일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츠시타는 결정할 수 없었다. 그야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마츠시타는 처음으로 카페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최소한 그 때가 메뉴를 말하기 더 수월했을 것이었다.

 “제가 이런 곳 온 것은 처음이라서요.”

 마츠시타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그걸 생각 못했네요. 마스터!”

 츠즈라누키는 익숙한 듯 손을 살짝 들어 바텐더를 불렀다. 깔끔한 모습의 여성 바텐더가 다가왔다.

 “저는 항상 마시던 그거 주시고 제 동행인에게는 입문자에게 좋은 위스키 한잔 추천해주세요. 비싸고 별로인 거 말고 비싸도 그만큼 좋은 걸로요.”

 항상 마시던 것. TV에서 기자나 형사나 모두 바에 가면 하던 그 대사였다. 그 대사를 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미소를 지으며 갠트리에서 병을 꺼내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제가 자주 오던 곳이에요. 중의원이나 되는 몸이라 아무래도 기자같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말이죠. 그런데 이곳은 연예인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보니 아무래도 저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이 향해지는 곳이에요.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하잖아요? 제게는 여기가 숲인 셈이죠.”

 “일단은 저도 기자긴 한데 말이죠.”

 마츠시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마츠시타 씨는 제게 기자가 아니라 친한 친구니까요. 마츠시타 씨도 그래서 저와 만나자고 한 것 아닌가요? 인터뷰라면 사절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바텐더가 두 사람의 앞에 코스터를 놓고 그 위에 잔을 올려놓았다.

 “츠즈라누키 씨는 항상 드시던 그것입니다. 그리고 동행인분에게는 이 위스키를 추천해드리죠. 스코틀랜드산 블렌디드 위스키입니다. 정통 싱글 몰트에 비해 급이 낮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고급 블렌디드의 경우에는 왠만한 싱글 몰트 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투명한 잔에는 위스키가 1/3 정도 담겨있었다. 같이 들어있는 얼음이 더 높이 올라와 있을 정도였다.

 “추운 겨울입니다만 이 위스키는 온 더 락으로 들겨야 좋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난방이 잘되는 편이니 추울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마츠시타는 잔을 들어 천천히 돌렸다. 거품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마츠시타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TV에서 주인공들이 그러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었다.

 “한번 향 맡아보세요.”

 츠즈라누키가 잔을 들어 향을 맡자 마츠시타도 그 모습을 따라했다. 위스키의 짙은 향이 코를 자극했다.

 “어때요? 좋죠?”

 츠즈라누키는 기대한다는 눈빛으로 물었지만 마츠시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겠네요. 위스키는 처음이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마츠시타는 한모금 위스키를 마셨다.

 “오 좋네요.”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의 술이 입안에 퍼지며 향으로 가득 메웠다. 강한 도수의 알코올이 혀와 식도를 자극했지만 그것마저 기분이 좋아졌다.

 “그쵸? 그쵸? 마츠시타 씨, 한번 이거 향 맡아봐요.”

 츠즈라누키가 자신의 잔을 내밀자 마츠시타는 조심히 자신의 코를 가져갔다. 같은 위스키였지만 자신이 마신 것과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향이 느껴졌다.

 “어때요, 한번 이런 것도 마셔볼래요? 제가 얼마든지 사드릴게요.”

 “츠즈라누키 씨, 초보자에게 너무 그런 거 권유하다가는 금방 나가떨어져요. 진도는 천천히 빼는 게 좋아요. 다 저도 경험해봐서 하는 말이에요.”

 옆에서 잔을 닦던 바텐더의 말이었다.

 “에에? 하지만 난 이 맛을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줬으면 하는 걸.”

 “수라에 빠지는 건 츠즈라누키씨 만으로 족해요.”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츠즈라누키는 삐진 표정으로도 우아하게 위스키를 마셨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네요. 아는 사람이랑 함께니 더더욱이요. 최근 법안 준비 때문에 이래저래 쉴틈이 없었거든요.”

 마츠시타는 토오노가 힘든 소리를 하던 것을 떠올렸다. 츠즈라누키도, 토오노도, 다른 비서들도 눈코뜰새 없이 바빴을 것이었다. 자신이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츠즈라누키가 환영하며 반겨하던 것도 잠시 일상을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토오노 역시 마찬가지였고.

 “저도요. 뭔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네요.”

 마츠시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많은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힘들던 그녀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의지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게 당연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결과 토오노에게 의지하고 싶어진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둘이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를 즐기는 동안 바에는 조용한 재즈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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