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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나는 연인을 죽였다.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29 02: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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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인인 가은이를 죽였다.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가은이를 14번 은하수에 있는 의사선생님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다시금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죽였다...


“있지, 나는 언제쯤 다시 걸을 수 있을까.”


가은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추궁하려는 것도 아니다. 규탄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그냥 자신의 처지에 납득을 못해서 내뱉는 말. 나는 그런 가은이에게 별 말을 해주지 못한다. 사랑하는 연인이면서도, 같은 성별이라는 조건 따위는 상관없다고, 뭔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살자고 맹세한 사이인데도 입술을 떼기가 어렵다.


“의족도 못쓴다고 의사 선생님이...그랬었잖아.”


겨우 입을 떼 말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잔혹한 말을.


“맞아, 그랬었지. 나, 걸어다니지는 못한다고.”


불운한 사고였다. 가은이는 무차별 방화 사건의 희생자였다. 그러면서도 홀로 불타는 집에서 살아남아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자재에 짓이겨진 그 신체는 회복의 여지도 없이 절반이 잘려나갔다. 의족을 사용할 수 있는 여지조차도 남기지 않고.


“...그래도 내가 휠체어 끌어줄 수 있어.”


말을 하고도 비참했다. 나는 겨우 이런 것으로 밖에 위로를 하지 못한다.


“그건 고맙지만,”


텅 빈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가은이가, 지독히 보기 싫었다. 고개를 내리 깔아 병원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다. 환자를 위해 마련된 너무도 깔끔한 무색의 발판. 생동감도,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수용소의 전형.


“싫지?”


“싫어할 리가 없잖아.”


“...고마워.”


분명 가은이는 울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고정된 채, 흐느끼는 목소리만을 듣는다. 분명 본다면 나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하겠지. 나는 가은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 그것은 가은이도, 같은 마음일테지. 병실을 나온 나를 맞이하는 것은 텅 빈 네온 사인의 연속. 가은이를 만난 주황빛 불빛의 아래, 차디찬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다룰 수 없는 감정의 격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나. 내가 돈이 더 있었더라면, 아니면 천재 의사였더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가은이를 걷게 해 줄 수 있었다면…


“그만 돌아가자, 힘들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사실 이렇게 밖에 나와있는 거 좋아하잖아.”


“못 속이겠네.”


그래도 나는 가은이에게 찾아갔다. 걷게 해주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쉬이 나가지 못하는 가은이를 바깥으로 이끌었다. 사고가 난 것은 겨울, 지금은 완연한 봄이 되어 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다. 생명이 넘치는 화원의 가운데 있는 수많은 인파.


“...저기,”


“왜?”


“미안, 그냥 미안해.”


가은이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미소를 머금고 뛰어다니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가은이가 어떤 의중으로 그 모녀를 봤는 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려는 거겠지.


“저기 가은아, 우리는 행복해. 지금으로도 행복 한...”


하지만 지금 가은이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어했다.


“...돌아가자.”


“응?”


“돌아가고싶어.”


차디찬 말, 하지만 나는 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휠체어를 끌어 병실로 향했다. 가은이를 침대에 눕히고, 인사를 하고 나와 의자에 걸터 앉았다. 우리는 행복했다. 아니, 지금도 행복하다. 분명 행복할 것 이다…


‘아버지는 어떤 여자한테 정신이 팔려 나와 어머니의 곁을 떠났어...어머니도 웬 남자한테 끌려 집을 나갔지. 나는 혼자, 쭉 혼자였던 거야.’


‘그래도 지금은 내가 있잖아.’


옥상에서 서로 웃던 추억이 있다.


‘저기, 이런 거 다들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뭐 어때, 우리 사이인데. 서로 사랑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 없다고.’


고작 손 잡는 것에도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둘 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공백을 메워주는 상생의 연속. 우리에겐 분명 서로가 필요하다. 서로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믿었을텐데.


“가은아, 나 솔직히...힘들어…”


잠을 이루기 무척 어려운 밤이었다. 눈을 감으면 비통한 표정의 가은이가 자꾸 아른 거려, 당장에라도 붙잡으러 가고 싶었기에.


“어제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만났어.”


주말이 되어 다시 온 병원에서, 가은이는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처음 봤을 때 부터 이상하리만치 밝은 가은이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기묘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자다가 눈을 뜨니까, 짙은 신록이 덮인 언덕에 있었어.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광경. 그래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다워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 온거야. ‘나는 14번 은하수의 의사다.’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 환자의 출입이 그렇게 자연스러울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가은이는 불과 3일 전 까지만 해도 전혀 짓지 못하던 완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행복에 압도되어 나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라고 답했어. 모습이야 보이지 않지만 말을 무시하면 실례인 거 같아서.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의 대답이 들려왔어. ‘나는 너를 걷게 해줄 수 있다.’ 라고.”


어때 좋은 거 아니야?, 라며 묻는 가은이. 두려웠다.


“…”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가은이는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내 대답은 상관없다는 듯이.


“저 우주에 있잖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수에서 원격으로 말을 걸었다는 거야. 내가 만약 그곳에 가면, 치료해주시겠다고.”


“그거...그거 그냥 꿈 아닐까?”


“아니, 절대로 꿈은 아니야. 나는 진짜로 그 언덕에 갔어. 자 봐, 거기서 가져온 꽃이야.”


가은이가 손에 꼭 쥐고 있다가 내게 보여준 것은 말라비틀어진 약 봉투.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꽃이네. 다행이다, 가은아.”


“역시 그렇지? 걸을 수 있다면,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나 저 꽃 밭으로 다시 갈 생각이야. 봄날에 안에만 있으면 너무 아깝잖아.”


미쳤다. 가은이는 지금 단단히 미쳐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가은이가 웃는다면.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다행인 것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다를 바 없겠지. 그런 나도...미쳐버린 것이겠지...


“어제 드디어 우주로 향하는 방법을 배웠어.”


그런 말을 하며 가은이는 내게 칼 한 자루를 건넸다. 분명 전에 과일 깎으려고 가져왔던 그 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문을 걸어주면, 나의 몸은 저 우주로 넘어간다는거야.”


“그게...어떤 주문인데?”


“내 가슴에 도장을 찍어주고,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고 속삭여주면 돼.”


애초에 칼은 도장도 아닐뿐더러 그런 맹세로 광속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인류의 모든 지식이 모여 도달한 그 속도를 얼토당토않은 장난으로 넘을 수 있을까? 납득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 절대 말이 될 리가 없는 이야기. 그렇지만...그렇지만...나나 가은이나…


“그정도야 쉽네, 사랑한다는 말은 늘 하잖아.”


“그렇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말았다. 그 날 나는 새하얀 드레스 두 벌을 빌렸다. 그런 분위기가 맞을 것 같아. 옷을 입은 채, 경건히 가은이의 단추를 잠가주었다. 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이거 부끄럽네…”


“뭘 우리사이에.”


창문에 비친 것은 두 명의 신부. 한 명의 신부는 칼을 두 손을 꼭 쥔 채 있었고, 다른 한 명의 신부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건하게.


“저기 있잖아.”


“응.”


“얼마간 보지 못할거야.”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말해주고 싶어. 고맙고, 사랑한다고.”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직감했다. 힘을 실어, 가은이의 가슴을 꿰뚫었다. 살을 뚫고 들어가는 감각, 약한 가은의 몸을 무자비하게 관통했다.


“사랑해, 영원히.”


분명 이게 약속이었다. 가은이가 14번 은하수로 갈 수 있는 주문, 그런 마법. 조금씩 요동치는 가은의 몸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칼을 뽑았다. 새하얀 드레스에, 피가 번져갔다.


“내가 너를 죽였어…”


나는 지금 가은이를 죽였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연인의 자살 충동을 그대로 들어주었다.


“미친 년...미친 년…”


주저앉아 울어 봐야 가은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게 생을 빼앗긴 가은이가 돌아올 일은 없다.


‘그렇다면 당신도 떠나는 게 어떠신가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한 환상, 내 마음 속 자기합리화의 결정체.


‘홀로 먼 길을 떠나는 가은 씨도 분명, 외로울 거에요.’


하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아직 쓸 수는 있으니까.”


나도 지금 너의 곁으로 가. 너를 외롭게 남겨두지는 않을거야. 우리 서로 행복하기로 약속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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