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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TT] 경주에서 발굴된 한글 일기 전문...txt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4.13 16:20:35
조회 4740 추천 61 댓글 19
														

일기를 쓴다는 건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같냐고 할지 몰라도, 이건 사실이다. 일기는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일기에 쓰인 내용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론해낼 수 있다. 그건 매우 단순한 논증이다. 일기가 거짓을 말한들, 일기가 '일기'인 이상 그것은 필연적으로 진실을 가리키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판타지나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별로 접해본 적도 없다. 인터스텔라가 한참 유행하고, 내 친구들이 마블 영화에 심취했을 때도 나는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우주가 어떻고, 첨단 슈트가 어떻고, 휘황찬란한 CG 행렬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좀체 없었다.


오히려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역사였다. 그것도 아득한 역사. 엄마나 할머니에게서 듣는 수준의 '나 때는' 역사가 아닌, 교과서에서 접할 법한 그 역사만이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쩌면 사학과를 전공하라는 조상님의 계시였을지도. 농담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을 특히나 움직인 역사는 한국사, 그중에서도 신라였다.


신라, 경주. 내가 사는 곳. 몇 번이고 다녀온 곳이었지만, 어느 순간 경주는 내게 현실이 되었다. 문학적인 표현이다. 현실이 되다니. 어쨌든 경주는 내게 그런 장소였다. 그러나 조금 색다른 현실이기도 했다.


아까 했던 장르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나는 역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실감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요즘 나온 것들은 당연히 그렇지만, 옛날 고증을 더 신경 썼다는 것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게 고증이라고 누가 말하던가? 역사책? 출품된 유물들? 그저 그럴 듯한 상상력을 덧댄 건 아닌가?


내가 이런 말을 전문가 앞에서 하면 뺨맞을 소리란 건 잘 안다. 하지만 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날 이해해주길 바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 조상이 경상도에 꾸준히 살았다는 사실도 좀 의문스럽다. 어쩌면 난 신라의 후예가 아니라 고구려가 신라까지 내려왔을 때 고구려 사람이 내려오면서 정착한 후예일지 모른다. 아니, 그정도 후예면 이미 신라의 후예나 다름없겠지. 그래, 고려 즈음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조선, 어쩌면 북한에서 살다가 6.25 때 내려와 경상도에 안착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경상도 토박이지만, 토박이란 말이 곧 내 핏줄이 경상도에 속했다는 뜻은 아니다. 난 언젠가 경상도를 탈출할 것이다. 서울, 그래, 일단 서울이 좋겠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괜히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 선조들의 지혜가 응축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오히려 B급 영화 내지는 난해한 예술 영화였다. 왜, 감독이 LSD라도 빨고 만든 것 같은 해괴한 영화들 있잖은가. 아니면 그로테스크함을 추구하는 B급 고어 영화라든지. 혹은 이토 준지 같은 일본의 음침하고도 께름칙한 잔혹함을 전면에 내세운 미스터리 장르들......


그것들을 왜 좋아하냐고? 그것들은 이미 마주했고, 안 무서우니까. 그 어떤 공포 영화도 무섭지 않다. 차라리 그나마 무서운 것들은 실체가 묘사되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도 이내 무섭지 않게 된다. 마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진정으로 무섭게 만드는 것들은 오히려 어색한 연기와 배우들이었다.


어떤 영화는 NG 모음집을 엔딩 크레딧에 넣는데, 발음을 절고, 표정을 제대로 짓지 못하고, 기괴한 애드리브를 행하며, 뜬금없이 웃고, 난데없이 개입하면서 난장판을 벌이는 모습들만큼 내게 두려운 일이 없었다. 남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니, 언젠가 이해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난 적어도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고 있다.


지면이 벌써 다했다. 내 이름은 전민지다. 내 이름은 전민지다. 내 이름은 전민지다.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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