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허억... 저기... 얼마나 더 가야돼?"
"... 의장님, 역시 이 사람 그냥 놓고가죠?"
"그런 말 마라, 이부키. 미안하게 됐군, 거의 도착했다."
난민보호소까지 걸어가는 길, 난 거의 지쳐 있었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사이즈가 딱 맞지 않는 정장을 입고 걷는 것도 어마어마한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진짜지? 아까부터 거의 다 왔다는 말만 반복하던데... 어?"
아무래도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었나보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곳곳에 천막이 보였다.
"충성! 오셨습니까, 의장님! 그런데 그 사람은..."
"전시 상황이니 격식 차릴 필요 없다. 이쪽은... 새로운 난민이라고 해 두지."
보초들에게 경례를 받은 마코토는 곧바로 천막 중 하나로 향했다. 음식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조리실인가?
"잠깐 실례하겠..."
"짬밥이 더럽게 맛없어."
"먹지 말던가, 그러면!"
천막을 들추고 들어가보니, 거기선 누군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비엔나 좀 더 달라니까! 왜 3개만 주냐고?"
"그거 부족하면 큰일난다니까! 다른 사람들 배 곯는건 안 보여?"
"... 후우카 땅?"
거기 서있는 학생이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삼각모에 앞치마, 뿔에 넘긴 머리카락까지.
그건 틀림없는 급양부의 부장 후우카였지만, 역시나 그 성격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남은 건 너네가 다 먹잖아! 일부러 늦게 왔으니까 좀 더 달ㄹ..."
"거기 잠깐 실례하지."
"아앙? 뭔데 남의 어깨를 함부로... 허, 허억! 마코토 의장님!"
후우카와 다투고 있던 스케반은 마코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어, 뭐야? 아, 오셨군요 의장님! 죄송해요, 이런 꼴을 보여드려서..."
"괜찮다. 오히려 난민들의 식사를 멋대로 맡겨서 늘 미안한 마음 뿐이지."
이부키가 굳어버린 스케반을 적당히 끌고나간 후, 두 사람은 안부를 나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 안 그래도 이 사람 때문에 부탁할 게 있거든. 새로운 난민인데, 식사는 해야될 것 같아서 말이야."
"어? 난 괜찮..."
꼬르르륵. 입과는 달리 배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부탁할게?"
"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부엌에 들어간 후우카는, 곧 3인분의 식사를 내놓았다.
"의장님이랑 이부키도 식사는 아직이죠? 맛있게 드세요!"
"고맙군. 그럼, 들지."
"네, 뭐..."
"이야, 후우카 땅의 손요리인가? 잘 먹겠습니다!"
왠지 떨떠름한 두 사람과 달리, 난 신나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쌀밥에 나물 반찬, 소시지 볶음에 된장국까지.
구성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후우카의 요리라니 매우 기대됐...
"... 저기, 후우카 땅."
"아까부터 자꾸 그렇게 부르는데 그만둬주시겠어요? 절 애 취급하는 건 '언니'면 충분하다구요!"
후우카한테 언니가 있었나?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 혹시, 이 캠프엔 소금이 없어?"
"네?"
그 말대로였다. 이 식사에선 일체의 나트륨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이 밍밍한 수준이 아니라, 간이 없었다.
"저기... 뭘 기대하셨는진 모르겠지만, 그런 말은 실례라구요?"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이부키의 태클에 난 급히 말을 정정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흐, 흐윽... 역시 그렇죠?"
"아, 울렸다."
"저, 저기 후우카 땅!"
후우카는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분명 레시피대로 했는데, 딴 건 괜찮은데 왜 간이 안 맞는지, 저로선 도저히 알 수가...!"
"아니, 그... 미안..."
"... 고개를 들어라, 아이키요 후우카."
상황을 수습한 것은 마코토였다.
"항상 모두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걸 잘 안다. 비록 간이 좀 안 맞더라도, 그 마음만은 모두에게 전해질 테지. 우린 언제나 널 응원하고 있다."
"의장님...! 네! 저, 조금 더 힘내볼게요!"
어떻게든 기운을 차린 후우카는, 마코토의 손을 잡고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우와."
[타겟은 찾았나?]
"응, 부장. 수석행정관이 얘기한대로, 무슨 물건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이었어. 그것도 성인 남성인데..."
한편, 숲 한 쪽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미행자는 선도부와 교신하는 중이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이 사람, 헤일로가 없어. 어쩌면..."
[그만하면 됐다. 돌아와.]
"뭐? 하지만 부장, 어쩌면 지금이 녀석을 처리할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적들의 본진에서 너 혼자 싸우겠다고? 무모한 소리 마라. 오늘의 네 임무는 정찰이지 저격이 아냐.]
"치잇, 알겠어. 금방 복귀할게."
미행자는 그렇게 떠났다.
"응?"
"어, 왜 그래, 마코토?"
"당신, 또 의장님을 이름으로...!"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말을 얼버무린 마코토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급한 연락이야?"
"어, 뭐 그런 셈이다. 마저 먹지."
다시 숟가락을 든 마코토였지만,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뭔진 몰라도, 꽤 큰일이 생길 모양이다.
"으으... 으으으...!"
한편 미행자는 갈등하고 있었다.
"그 녀석, 분명히 헤일로가 없었어! 딱 한 발이면 그 머리에 바람구멍을 낼 수 있는데!"
물론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저곳에는 만마전의 병사는 물론 난민까지 포함해 상당히 많은 전투인력이 있었기에, 교전은 피해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격수로서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고에너지 반응과 함께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필시 선도부를 방해할 변수임에 틀림없다.
"역시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녀석을...!"
그렇게 미행자가 자신의 애총을 장전하며 달려나가려 할 때,
탕.
우아하게 꿰뚫는 황금빛 탄환이, 그녀의 양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을 스쳐지나갔다.
"어? 잠깐, 이건!"
"후훗, 그 의장이 급하게 연락해서 뭔가 했더니... 쥐새끼가 숨어 있었군요?"
"아, 이오리 쨩이다! 안녕~!"
탄환이 발사된 곳을 보니, 그곳에는 전차 위에서 자신을 저격한 은발의 소녀가 있었다.
"태워줘서 고마워요, 이로하 씨?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네요?"
"응! 이로하 잘 했지?"
미식연구회의 부장, 쿠로다테 하루나가 만마전 전차장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이오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고, 설마하니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거야?"
"물론이죠. 그 전에, 남의 주방을 더럽히는 쥐새끼부터 잡고 말이죠?"
숲속으로 숨어들어간 선도부의 저격수 이오리는,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후~, 그래도 배부르니까 좀 낫네... 어?"
식사 후 천막에서 쉬고 있던 나는,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는 것을 느꼈다.
"저기, 마코토! 이거 무슨 소리... 마코토?"
"아, 선생인가? 거기서 쉬고 있도록. 잠시 다녀오겠다."
이상함을 느껴 밖을 보니, 거기선 마코토가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설마 지금 들리는 소리... 전투야?"
"... 흔히 있는 일이다, 신경 쓰지 마."
"그게 무슨 소리야! 갈거면 나도 같이 가!"
"잠깐, 억지 부리기는...!"
마코토가 가로막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급히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학생들이 힘들 때 도울 수 있어야 진짜 선생이라고! 안 다칠 자신 있으니까, 나도 데려가줘."
"하아... 그래 뭐, 알겠다. 대신, 절대 무리하지 마라. 알겠나?"
난 대답 대신 마코토에게 경례를 했다. 그것에 마코토는 못 말리겠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야 원,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으아앙! 전차가 계속 총에 맞고 있어! 무서워~!"
그 말대로, 하루나는 열세에 몰려 있었다.
상대는 선도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저격수, 시로미 이오리.
뛰어난 매복술과 정확한 사격 실력을 갖춘 그녀는, 같은 저격수인 하루나에게도 버거운 상대였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그녀는 기껏해야 전차를 엄폐물로 삼아 급소를 보호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떡하면 좋죠? 상대는 계속해서 저격 포인트를 바꾸고 있어요. 숲속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이렇게까지 활용할 줄은...!"
"하지만 이렇게 있을 순 없어! 차라리 이로하가 전차로...!"
"잠깐, 이로하 씨!"
"거기군."
철컥. 저격소총의 방아쇠가 당겨지고,
"흐앗!"
"위험해요! 큭!"
전차 밖으로 몸을 내놓았던 이로하가 저격당하는 순간, 하루나가 몸을 날려 겨우 치명상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대신 팔에 탄환을 맞은 하루나는, 제대로 총을 들기도 버거워졌다.
"적의 위치가 분명해지기 전까진 움직이지 말랬잖아요! 엄폐물이 줄어들면 우리도 불리하니까... 으윽!"
"우으, 이로하가 미안해..."
"떠들 틈이 있다니, 부럽군? 그럼, 안녕이다."
또다시 빈틈이 생기자, 이오리는 이번엔 하루나를 노렸다.
"잠깐, 위험해! 하루나 선배애애!"
"헛!"
그렇게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뻔한 순간.
"크윽!... 어?"
"뭐야? 아니, 넌!"
"... 어리석군. 등이 아니라 머리를 노렸어야지."
늦지 않게 도착한 마코토는, 자기 몸으로 탄을 막아냈다.
"의장! 괜찮은 건가요? 그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상관없다... 그것보다 이제 어쩔거지, 저격수? 이미 우리 인력이 숲으로 들어갔다만."
"치잇!"
그 만마전의 의장이 나타났다면, 역시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어차피 정찰 임무도 끝났으니, 그대로 돌아가 정보를 전달할 수 한다면 승리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오리는 그러지 않았다.
"찾았습니다, 의장님! 여기 저격수가... 커헉!"
"뭣! 설마..."
"나에 대해 뭘 모르나본데, 이 정도로 매복 포인트가 많은 곳은 내게 있어 최고의 전장이거든. 당신 병사들이야 하나씩 처리하면 그만이야!"
이윽고 이오리는 다른 병사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하나씩 각개격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녀석들은 나를 찾지 못한다. 의장까지 처리한 후, 난 이곳에서 유유히 도망친다!
그런 생각으로 스코프를 이리저리 돌리던 중,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은...!"
"헉, 허억... 그니까 같이 좀 가자니까... 왜 자꾸 나만 두고..."
[... 아무래도 당신도, 심각한 운동 부족이었던 모양이군요.]
"그래, 너 잘났다..."
까만 아로나에게 일일이 대꾸할 힘도 없었기에, 난 그냥 수긍했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가 어디야? 숲속이라 길이 엄청 헷갈리..."
[응...? 잠깐 선생님! 숙이십쇼!]
"어? 왜?"
일단 시키는대로 자세를 낮춘 나는,
쉬이잉.
머리카락 바로 위를 무언가가 스쳐지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어... 어어어!?"
[적습입니다! 상자의 방호 기능을 최대로 설정하겠습니다!]
"어, 어! 고마워, 아로나!"
까만 아로나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진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뭐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거야...! 아무튼 서두르자, 아로나!"
[네, 마코토 의장의 좌표는 이쪽입니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서둘러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칫! 빗나갔나! 감도 좋군..."
이오리는 혀를 찼다. 타겟만 제거할 수 있으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빈틈을 보인 것은 명백한 그녀의 실수였다. 그녀의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황금빛 궤적을 그리는 탄환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뭐야! 하루나 자식, 아직 힘이 남아있었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진 몰라도, 저격수가 그렇게 빈틈이 많아서야 쓰겠어요?"
한방 먹은 이오리는 다시 상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방금은 너무 흥분했다. 어차피 타겟은 헤일로조차 없는 연약한 상대인데.
저 학생들을 처리하고 난 다음 타겟을 저격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머리를 식힌 이오리였지만...
"어이~! 마코토!"
"어이, 잠깐! 샬레의 선생, 여긴 전장이다! 멋대로 뛰어오지 마!"
타겟이 제발로 스코프 안으로 들어오는 걸, 그녀는 목격하였다.
"뭐야 저거? 제정신인가?"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지만, 아무튼 이건 기회였다.
매복지를 옮긴 다음, 다시 타겟을 저격한다면...!
"응? 전차 뒤로 숨은 건가? 뭐 상관없어.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야."
그렇게 이오리는 다른 저격 포인트를 찾아 이동했다.
"... 정말로 그걸로 괜찮겠나?"
"어, 이거 말고 더 나은 방법도 생각이 안 나고."
한편, 나는 마코토와 아주 짧은 작전 회의를 나누었다.
"후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다치지 마라. 알겠나?"
"그래 뭐. 그럼 부탁할게, 아로나?"
[네, 맡겨 주십시오. 두 번 다시 당신이 다치는 일은 원치 않으니까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까만 아로나의 대답과 함께, 나는 엄폐물 밖으로 나섰다.
"이봐, 저격수! 우린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날 원하는 거지! 이대로 데려가라고!"
상대가 어디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설령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그 계획은 먹혀들었다.
난 눈앞의 탄환이 궤도가 휘어지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 빙고. 어쩐지 만마전과 교전 중인데도 나부터 노리길래 혹시나 했는데 말야. 내가 최우선 타겟이었구나?"
그리고 몇 발 더, 저격소총의 탄환이 날아왔지만, 그것들은 번번히 비정상적인 궤도로 휘어지며 빗나갔다.
"지금이야! 마코토, 하루나!"
상대는 당황한 나머지 매복 포인트를 옮길 생각도 못한 채 나를 저격했다.
위치가 드러난 이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지금 놓치면 녀석이 어디로 도망갈지 모른다.
"알겠다, 선생! 이로하, 저쪽을 향해 쏴라!"
"응, 마코토 선배! 주포, 발사~!"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꿰뚫는 우아함으로!"
그렇게 승부를 결정지을 한 방이 숲을 향해 날아갔고...
"이, 이런! 크아아악!!!"
저격수는 곧, 나무들이 증발한 곳에서 기절한 채 발견되었다.
*****
저번화 분량이 적어서 쪼끔 많이 썼습니다.
여러분의 지지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참고로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이오리 다리 시식회는 다음 화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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