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ng-bong!
"하나코! 하나코, 있어?"
졸업 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코하루는 오랜 친구의 집에 놀러왔다.
"어머, 코하루 쨩! 벌써 왔어요?"
D.U 중심가에 있는 어느 아파트, 하나코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네, 선생님은?"
"아, 그이라면 오늘 출장이라서요. 너무나 쓸쓸한 거 있죠?♡"
"이상한 농담하지 말고!"
"후후훗,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재밌네요, 코하루 쨩?"
말과는 달리, 하나코는 왼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약지에서는 은빛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애는 어디 있어? 선물도 사왔는데..."
"아, 잠시만요. 일단 들어올래요?"
하나코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온 코하루는, 곧 오늘의 주인공과 만나게 되었다.
"어? 코하루 이모오~!"
"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짧은 다리로 총총총 뛰어오며 코하루 품에 안긴 소녀는, 반가운듯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단발로 자른 분홍빛 머리와 위로 삐친 머리카락은 하나코를 쏙 빼닮았지만, 올곧은 눈빛은 선생을 닮은 쾌활한 소녀.
하얀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그 아이는, 틀림없는 선생과 하나코의 딸이었다.
"미안해요, 코하루 쨩. 대접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없네요?"
"아냐, 이거면 됐어. 오래 있을 생각도 아니고..."
간단히 홍차를 대접받은 코하루는, 잔을 들어올려 차 한 모금을 음미하였다.
"좋은 잎이네, 히후미가 보내준거야?"
"네, 졸업한지 꽤 됐는데도 필리우스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준다는 모양이에요. 뭐, 히후미 쨩이니까요."
코하루에게 대답하면서 롤케익을 썰어온 하나코는, 정성스레 접시에 담아 각자에게 나눠주었다.
"우와, 초코 롤케익이다! 이거 먹어도 돼?"
"그럼요, 우리 딸. 나기사 씨가 우리 딸이랑 같이 먹으라고 보낸걸요? 하지만 먹기 전에... 아시죠?"
"응!"
고개를 끄덕인 소녀는,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모아 잠시 기도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병아리 같다, 라고 코하루는 생각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우, 움냠냠..."
"... 푸흡!"
포크로 롤케익을 꾹꾹 누르며 썰어먹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니, 코하루는 왠지 웃음이 났다.
허겁지겁 롤케익을 먹는 모습이, 야참으로 컵라면을 꺼내먹던 선생의 모습과 겹쳐보여서일까.
"정말~,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니까요? 그리고 입에 다 묻잖아요."
"어? 진짜?"
"그래요. 봐요, 여기 이렇게 잔~뜩 묻었잖아요?"
냅킨을 꺼내든 하나코는, 정성스레 소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예전에는 본 적 없던 하나코의 자애로운 미소가, 코하루에겐 꽤 낯설었다.
"아, 맞다! 코하루 이모, 선물 사왔다는 건 어떤 거야?"
"어라, 아직 얘기 안 해줬던가? 잠깐만..."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다 닦아낸 후, 소녀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코하루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여기 온 이유가 기억난 코하루는, 들고온 종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거, 좋아한다고 했지? 왠지 보기 흉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지나가는 길에 사봤는데... 어때?"
"우, 우와아...!"
코하루가 꺼낸 것은, 소녀의 키보다 큰 하니와 마스코트 인형이었다.
"굉장하다, 하니와 씨가 엄청 커!"
"오, 오해할만한 소리하지 마! 야한 건 안돼!"
"야한 거? 그게 뭐야?"
"그, 그건... 그러니까..."
코하루는 소녀의 순수함 앞에 한없이 위축되었다.
"아무튼 고마워, 이모! 진짜 가지고 싶었는데!"
"이 정도로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다행... 인가?"
"후훗, 역시 피는 못 속이네요~.♡"
"너도 제발 조용히 해!"
분홍빛 모녀에게 휘둘리다보니, 코하루는 진이 다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슈웅~, 초거대 하니와 씨 상륙~!"
"혼자서도 재밌게 노네... 그렇게 좋은가?"
"그러게요... 생각해보면 저도 어렸을 때 집에서 혼자 놀았던 것 같으니까, 유전 아닐까요?"
하니와 씨 인형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지켜보며, 두 사람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고보면 왠지 그이도 혼자 있는 걸 선호하는 느낌이었죠... 후훗, 역시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네요?"
"어? 선생님이?"
"어머, 코하루 쨩. 몰랐나요? 그이는 쉬는 날엔 거의 집에만 있거든요. 덕분에 아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답니다?"
"헤에... 전혀 몰랐는걸..."
빈말이 아니었다. 코하루의 기억 속에, 선생은 늘 샬레에서 과로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여유롭게 쉬는 선생의 모습은,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옛날이랑은 많이 바뀌었구나, 선생님."
"어머? 뭔가 마음에 걸리나요?"
"전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저 아이는 부모의 사랑이 가장 필요할 때잖아? 다만..."
학생들을 향한 선생의 박애를, 저 아이가 독차지한다... 라.
"왠지 좀, 질투날지도? 농담이지만 말야."
웃으면서 말한 코하루였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하나코의 눈빛은 미묘했다.
키보토스의 학생들은 선생에게 크고 작은 연심을 품고 있었음을, 누구보다 하나코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모! 이모!"
"응? 왜 그래?"
그런 답답한 분위기를 전환한 것은, 하니와 씨 인형을 들고온 소녀였다.
"혹시 차 다 마셨으면 나랑 놀자! 하니와 씨도 이모랑 놀고싶어해!"
"정말? 그럴까?"
아이의 기대란 저버리기 어렵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코하루는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기에 기꺼이 제안에 응했다.
"그래서, 뭐하고 놀거야?"
"응, 그건... 앗, 빈틈이다!"
코하루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소녀는 인형을 코하루의 가슴 쪽으로 밀었다.
"아얏, 욘석! 각오는 됐겠...!"
"어라? 이상하다?"
"어? 뭐가?"
소녀는 계속 인형과 코하루의 가슴을 번갈아보았다. 그 눈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왜 코하루 이모는 인형을 못 튕겨내?"
"... 그게 무슨 말이야?"
코하루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아직 어린애인데 설마 그런 소릴 하겠어.
"엄마는 찌찌로 인형을 튕겨내던데? 하나도 안 아프댔어!"
"야! 너 말 다 했어!?"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대체로 들어맞는 법이다.
"어? 이모, 화났어?"
"아니, 그러니까...! 에휴, 아니다. 화 안 났어."
"후훗~♡ 꽤나 유해졌네요, 코하루 쨩? 옛날 같았으면 사형이라고 했을텐데..."
"너도 제발 조용히 해!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진짜!"
코하루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소리를 질러도, 하나코는 그저 쿡쿡 웃을 뿐이었다.
옛날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녀에겐 그리운 추억이기 때문이리라.
"그럼 슬슬 들어가볼게. 홍차 고마워, 지나가는 길에 들렸을 뿐인데."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다음에 또 와야해요, 코하루 쨩?"
"이모, 또 봐!"
"그래그래, 너도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
코하루는 현관을 나서기 전,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녀는 그 손길이 기분좋은듯 눈을 감고 배시시 웃었다.
"그럼, 진짜 간다? 안녕!"
"다음에 또 봐요, 코하루 쨩!"
"빠빠이!"
모녀의 배웅을 받은 코하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잠시 깊은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아직도 아즈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한다. 하나코가 아이를 가졌을 때, 혼자 무척 불안해했다는 이야기.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당시 재학생이었던 코하루는 정의실현부 일로 바빴기 때문에 하나코를 찾아갈 수 없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려 미안함을 느끼곤 했는데,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는 하나코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사랑받고 있구나, 하나코. 그 아이도..."
팅-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코하루는 잠시 하나코의 집 문을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그녀의 표정은, 소녀에게 옮은듯 배시시 웃는 얼굴이었다.
*****
전에 쓴 소설이 꽤 마음에 들었어서 후속편 격으로 좀더 써왔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일상물 느낌으로 생각날 때마다 한편씩 더 써보고자 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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