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로 붉어가는 트레센 학원 근처, 우마무스메들도 자주 이용하는 카페, 꽤나 오랜 기간 그곳을 지켜온 탓에 이제 사회인이 된 우마무스메들도 이용하고는 했다. 평소 음료 두 개에 빨대 하나를 꽂아먹는 우마무스메도 때때로 트레이너를 대동하고 오면 음료 하나에 빨대 둘을 꼽고 내숭을 떨기도 하는 스위츠가 맛있는 카페. 그 한구석 자리에 트레이너가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트레이닝 관련 서적이나 잡지, 소설이나 시집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읽는 것은 논어 주해였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날까 그것만 근심하신다.” (논어 위정편)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젊은 신참 트레이너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빛바랜 종이 위에 적힌 글귀를 손으로 짚어가며, 한 글자씩 음미하듯이 읽어간다. 낭독, 까지는 아니어도 경건한 목소리로 소리내어 한 자 한 자 읽어갔다.
"트레이너 씨! 죄송해요~! 제가 또 늦었죠?"
놀라운 볼륨감을 자랑하는 하늘색 블라우스 아래 하얀 타이트 스커트를 입은 우마무스메가 트레이너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뛰어와 헤헤 웃었다. 어지간히도 서둘렀는지 얼굴이 붉다.
"...아닙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트레이너는 책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었다. 흐트러짐 없는 그를 보고 라이트 헬로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셨어요?"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박식하시네요. 학교다닐 때 저는 졸기만 했는데."
"허허. 저도 그랬습니다."
"호호. 재밌으셔라."
진짜 재밌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이 사람에게 끌리고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다. 이 여자, 라이트 헬로는 트레이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조금도 진전이 없다. 그랜드라이브를 성공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관계에서 더 나아가보려고 라이브 티켓까지 구해 용기내 권유한 것을 받아들여 주었을 때는 날아갈 것 같았다. 그도 그녀도 엄청나게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 기세를 타고 뭔가 이루어질 법도 한데 거기서 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자신에게 매력이 없는 건가? 역시 더 어리고 더 빠른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끌리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쑥맥이라 그런 걸까? 몇 번을 만나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자신이랑 만나는 게 즐겁냐는 물음에 그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논어 태백편에 이르기를, 시(詩)로 시작하고, 예(禮)로 서고, 악(楽)으로 이룬다 하였습니다."
'어쩌라고, 맘대로 이루지 말라고. 이뤄야할 게 더 있잖아?'하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면서 라이트 헬로는 그와 몇 번을 더 만났다. 마루젠스키도 틀니 쉰내 풍기지 말라고 할 소리를 내뱉는 그였지만, 그걸 빼면 키도 크고 성격도 좋고 배려심 깊고 (아마) 몸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다. 나쁜 남자보다 몇 배는 악질인 착한 남자를 놓지 못하면서 라이트 헬로는 몸이 달아갔다.
몇 마디인가 말을 나누면서 카페를 나온 그들은 즉시 맥주를 마시러 간다. 드디어 몇 번인가의 권유 끝에 술을 마시러 간다. 술집은 라이트 헬로의 홈 그라운드다. 평균적인 사회인, 평균적인 우마무스메를 상회하는 그녀의 주량으로 압도해줄 작정이었다. 대충 그 후의 일을 생각하며 웃는 라이트 헬로의 옆에서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으면서,
트레이너는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가면서. 어쩜 옆얼굴도 이렇게 잘 생겼을까, 멍하니 볼 때가 아니다. 우마무스메 특유의 독점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었다.
"트레이너 씨이? 누구랑 그렇게 메시지를 하세요오?"
"아, 예. 어머님께 저녁문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아. 헤, 어머님이요."
그야 어머님이 계시겠지. 그치만 보통 이렇게까지 하나? 라이트 헬로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온 줄도 모르고 트레이너는 말을 계속한다.
"자왈, 부모재 불원유 유필유방이라.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이라. (논어 이인편) 부모께서 생존해 계시면 멀리 나가서는 안 되며, 나가면 반드시 행방을 알려야 한다 하였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마마보이에 라이트 헬로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맥주가 아니라 더 독한 걸 마셔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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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릭 씨. 슈퍼 크릭 씨. 일어나 봐."
"으으...타이신쨩..."
"핸드폰 엄청 울린다고. 시끄러워."
릿토 기숙사의 한 방, 화면을 가로로 눕혀놓고 게임을 하던 나리타 타이신이 룸메이트의 머리맡에서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를 더 참지 못하고 불러댔다. 룸메이트 슈퍼 크릭은 방에 오자마자 엎어져 죽은 듯이 말이 없었다. 틱틱대는 타이신의 소리에 슈퍼 크릭이 길게 신음하면서 핸드폰을 마지못해 가까이 했다.
"어머님. 저녁식사는 잘 하셨는지요. 조만간에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소자는 트레이닝 이후 ~~카페에서 라이트 헬로 씨를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어머님. 오늘은 논어 위정편의 ~~ 효란 무릇 ~~"
"어머님. 소자는 라이트 헬로 씨와 ○○에 있는 ●○에서 술을 마시고 ~시 쯤 귀가하겠습니다. 자왈 유주무량 불급란子曰 唯酒無量 不及亂이라. 많이 마시겠지만 절조없이 흐트러지지 않겠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아주세요."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
잠시 사이에 몇 통이나 쌓인 장문의 보고를 읽는 슈퍼 크릭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새 푸시 알림이 뜰 때마다 야위어가는 것만 같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제대로 된 모성을 접한 경험이 없는 트레이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리광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럽다. 무엇보다 자신을 어머니라 생각해달라 했던 자신이 증오스럽다. 그가 어머니에게 꼭 하고 싶던 효도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기뻐했던 자신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다.
오구오구놀이를 하면 할수록 그는 급격하게 한 사람 몫의 트레이너가 되어갔다. 아이는 금방 자란다는 것도 정도가 있지, 케어해줄 내용이 점점 줄어들어 가고, 트레이너가 바치는 "효도"가 늘어갔다. 파고들 틈이 줄어들어간다. 그녀가 바랐던 모자관계가 비틀어져 간다.
"어머님이 아니야... 마망이라고..."
공허한 눈으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앞에 또 하나의 푸시 알림이 떠오른다.
"어머님, 주무시는지요? 어딘가 편찮으신지요? 오늘 트레이닝 때도 표정이 그리 좋지 않으셨는데 이 불초자식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 합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제가 지금 바로 ..."
솔직히 그냥 무시하고 싶지만, 한 번 무시했다가 몇 배로 되돌아오는 효도 부메랑을 또 맞고 싶지는 않은 슈퍼 크릭이 무거운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머어머 아니에요 저는 괜찮답니다 호호 잘 다녀오세요"
구두점도 영혼도 없는 답신에 즉시 읽음 표시가 붙었다.
"다행입니다. 소자 이렇게 어머님의 보살핌으로 한 사람 몫의 트레이너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곁에서 모실 수 있게 항상 그 자리에 계셔 주세요."
슈퍼 크릭은 현기증이 나서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은 일찍 자겠다는 말만 남긴 뒤, 그녀가 알람을 무음으로 설정해두고, 머리맡에 핸드폰을 두고 눈을 감았다. 적어도, 꿈에서만큼은 누군가 자신에게 어리광 부려주길, 마망이라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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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우, 트레이너 씨! 언제까지 핸드폰만 쳐다보실 거예요? 네?"
"하하! 시경에 이르기를, 효자의 효는 다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식된 도리를 하는데, 살아있는 한 끝은 없지요."
"진짜, 너무하셔라~."
카카리가 걸려 주량 이상을 빠르게 소모한 라이트 헬로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든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본 트레이너였으나, 이내 계산을 마치고 라이트 헬로를 업어다 호텔방을 잡고 이불을 덮어준 뒤 빠져나왔다. 어찌 불의를 행할 수 있으리오. 홀로 있을 때 올바른 자여야 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갑게 식은 밤 길을 뒷짐을 지고 걸으며, 그는 주자가 인용한 범조우의 설명을 생각한다.
范氏曰, ‘子能以父母之心爲心, 則孝矣.’
범씨왈, ‘자능이부모지심위심, 즉효의.’
자식이 부모의 마음으로써 제 마음을 삼을 수 있다면 곧 효이다.
그는 슈퍼 크릭을 생각했다. 자신이 정말로 그녀에게 효도하고 있는지를 성찰해봤다. 그러나 오히려 어두워져 가는 그녀의 모습에 표정이 편안하지 않다. 그가 허탈한 듯이 하늘을 보고 웃었다.
"자왈, 생무소식子曰, 生無所息이라. 살아있는 한 쉴 곳이 없구나! 참으로 효란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되새기며, 내일은 더욱 지극정성으로 슈퍼 크릭을 모셔야겠다. 트레이너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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