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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록 #n. 브런치

하니모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19 18: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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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브런치

 

사람은 아무리 배고파도 똥을 먹는 존재는 아니라고 했던가.

 

그렇다. 필자는 보기 좋게 브런치 작가 지원에 떨어졌다.

사실 이것은 그리 대단한 공모는 아닐 것이다.

한날한시에만 모집하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필력을 가진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공모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매력 있는 글과 지나치게 반사회적이지만 않은 지원 동기 정도면 붙을 수 있을, 브런치라는 그리 크지는 않은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위한 의례적인 절차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필자는 고작 그 정도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였다.

 

필자는 최근 들어 멘탈이 약해졌음을 느낀다.

과거-그중에서도 특히 고등학생 시절-그러니까 필자의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당시에도 오히려 멘탈은 지금보다 단단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공모에 탈락하는 건 일상이었지만 탈락한 사실 자체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능히 숨길 수 있었다. 밖으로 꺼내놓지 않고-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할 만큼은 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최근에는 그러지 못했다.

조금만 좋지 못한 일이 있어도 그것을 밖으로 꺼내놓지 않고는 참기가 어려웠다.

필자의 기분이 좋지 못함을 주변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 필자는 어른이 되면 자신의 기분을 더욱 능히 감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것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이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필자는 이 글을 씀에 있어 솔직해지기로 한다.

 

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아니, 솔직해지자. 기대를 안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내심 이미 브런치 작가가 된 마냥, 글거리를 생각해내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글을 연재할지 등을 계속해서 생각했고, 필자가 쓴 글에 달릴 무수한 좋은 반응들에 대한 망상을 계속했다.

 

그러나 어째서인가. 우울함에 익숙해진 탓인가.

그렇게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했지만, 기분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

 

더 솔직해지자.

탈락 메일을 받자, 팔뚝에 칼끝을 가져다 대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부러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옥상에라도 오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무치게 아픈 기분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3시간 빌린 연습실을 1시간밖에 채우지 못하고 나와버린 것을 제외하면, 일상에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귀갓길에 천 오백 원의 소비도 한 시간을 고민하는 필자가 최근 알약보다 효능을 좋다고 느끼는 에너지 드링크 5캔을 하루 만에 전부 마실 생각으로 사 온 것을 제외하면, 정말 별 일없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모시지 못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필자의 작가 신청이 반려된 사유였다. 이러한 거부 멘트를 적는 것도 상당히 고된 일일 것이다. “너 같은 X밥은 안 받습니다.”라는 말 하나를 본인들의 체면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의미 전달은 되게끔 최대한 돌려 말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리라.

어쩌면 미리 멘트를 몇몇 적어 두었다가 그때그때 돌려가면서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실로 악인이 아닐 수 없다. 탈락 메일을 받고 처음 든 감정이 시기심이기에.

기존 활동하던 작가들의 지원 글은 필자의 글에 비해 그렇게 대단한 글들이었나?

다른 이들의 지원 동기는 필자의 그것에 비해 거창한 이유였기에 붙여주었나?

하는 몇몇 삐뚤어진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필자로서는 실로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두 번째로 든 감정은 부정이었다.

만약 필자가 이상의 오감도에 준하는 글을 적어 지원했더라도 탈락했을 것은 매한가지이리라.

어쩌면 탈락 메일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가야 할 탈락 알림 메일이 직원이 실수 등 모종의 사유로 필자에게 전송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시진쯤 지나면, 정정 메일과 함께 필자는 브런치 작가라는 감투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세 번째로 든 감정은 필자에 대한 측은심이었다.

브런치는 작가 신청에 떨어지면 공개적인 글을 작성하지 못한다.

출판할 자격도 아닌 글 쓸 자격에 대한 탈락이라니. 글을 쓰는 이에게 이보다 더한 치욕이 있을까.

실로 인간으로서 실격당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몇 번째 탈락인지를 세지도 못하는 필자에게, 필자는 측은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네 번째로 든 감정은 필자에 대한 의문심이었다.

과연 필자는 진심을 담아 지원하였는가?

과연 필자는 진심을 담아 글을 작성하였는가?

과연 필자는 향후 어떠한 공모에라도 붙을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감정은 확신이었다.

필자는 항상 모든 것을 진심으로 대한다.

필자는 매 글을 쓸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을 담아 적는다.

필자는 향후 어떠한 공모에라도 붙지 못할 것이다.

 

문득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떠올랐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했던가.

비록 협상의 단계가 생략되었고 그 순서가 같지는 않으나, 이 다섯 단계는 분명 필자에게 신뢰도 높게 다가왔다.

입대를 앞둔 필자의 친구가, 비록 실패했으나 과거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던 필자가 이러한 일련의 순서를 겪었기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우울의 단계가 지나고 이제는 수용의 단계였다.

필자가 공모에 탈락한 것은 다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저 필자의 필력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모자람. 그것만이 모든 좋지 못한 일의 이유일 것이다. 이 별것도 아닌 사실 하나를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재신청의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했다. 어쩌면 공모에 떨어졌다는 내용의 글을 공모에 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성인이 된 이후 한번 탈락한 공모 등에는 다시 지원하는 일이 없었다. 한번 인연이 아닌 것은 앞으로도 인연이 아니라는, 필자의 지극히 알량한 주관 때문이었다.

필자의 호적상으로 형제인 사람은 필자에게 주관이 없는 놈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주관만이라도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어느 정도 담담해졌다.

덕분에 필자가 평생 쓴 글 중 가장 긴 글이 나오지 않았는가.

필자가 또다시 공모에 떨어졌으면 어쩔 것인가.

필자의 필력이 좋지 못하면 어쩔 것인가.

죽기라도 하는가?

물론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만, 아직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기에, 아직 살아있을 이유가 남아는 있기에. 필자는 적어도 어린 시절 적어둔 과업의 절반이라도 이루기 전까지는 살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필자가 앞으로도 공모에 떨어지면 어쩔 것인가. 라는 의문에는. 차마 담담해지지 못하겠다.

생각의 흐름은 여기까지였다. 이젠 필자가 즐겨 듣는 노래 유서나의 무덤을 틀고,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키며, 금일 필자가 느낀 일련의 감정들을 글로 옮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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