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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때 글쓰기 -2-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65.132) 2023.04.30 21:56:32
조회 49 추천 2 댓글 0
														
마을 뒷편엔 작은 언덕이 있다. 언덕 꼭대기엔 몇그루의 꽃나무가 있어 봄이 되면 하얀 꽃이 펴 마치 흰머리가 난것처럼 보였기에 마을 사람들은 이 언덕을 할아버지 언덕이라 불렀다. 할아버지 언덕은 아마 마을이 처음 만들어졌을때부터 이들을 지켜봐왔을것이다. 또한 할아버지 언덕은 마을 아이들에겐 좋은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언덕에서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곤충과 동물을 잡기도하며, 여러곳에 숨어 놀기도 했다. 지금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도, 또한 그들의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품에서 뛰어 놀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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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는 어른들 몰래 집밖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생애 첫 일탈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집을 빠져나와 언덕 입구앞 표지판에 모여, 작은 소리로 서로를 불렀다. 어둠속에서 서로를 확인하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위험하니까 손좀 잡고 가줄수 있니?"소녀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소년은 내민 손을 보고 잠시 망설이더니 궁시렁거리며 볼멘 소리를 내곤 그녀의 손을 낚아채듯 움켜 쥐었다. 소녀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작게 웃었다. 처음 마주한 밤의 어두운 언덕이 수없이 오르내리던 낮의 언덕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는지 소년의 심장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뛰었다. 그럼에도 달빛에 의지해 익숙한 나무를 짚으며 조심스레 나아갔다. 오늘따라 바닥에 널브러진 돌부리가 그리고 튀어나온 나무 뿌리가 더욱 위험하게 느껴져 부드러운 흙이 있는 길쪽으로 소녀를 끌고갔다. 한참을 걷다가 쌍둥이 소나무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자 마침내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선선한 밤바람이 그들을 반겼다. 소녀도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은듯했다.
"도착했니?" 소녀가 물었다.
"응." 소년은 대답과 동시에 까맣게 잊어버렸던 맞잡은 손이 기억이 났는지 소녀의 손을 뿌리치고 손을 일부러 탁탁 소리가 나게 털었다. 그들은 공터에 놓인 쓰러진 통나무로 향했다. 소년은 소녀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 다급하게 커다랗고 평평한 돌덩이를 들고와 소녀가 앉을 곳에 두었다. 그들은 통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들 앞에 펼쳐진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 밤공기를 만끽했다. 소년은 소녀를 힐끔거렸다. 그녀 또한 선선한 밤공기에 기분이 좋아보였다.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건 소녀였다.
"얼마만에 밤공기를 맞는지 모르겠어. 몸이 안좋아진 이후론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밤에는 아예 못 나가게 하셨거든. 오랜만에 나오니까 너무 기분 좋다."
"그래? 다행이다." 소년은 뿌듯함에 쾌재를 불렀지만, 차마 티를 내지 못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 마을로 이사와서 다행이야. 이전 동네에선 이렇게 된 이후로 아무랑도 못놀았는데 여기는 복슬복슬한 강아지도 있고, 같이 얘기해주는 친구도 있어서 좋아."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그들은 잠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번에도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수의사가 되고싶었어. 그래서 아픈 강아지들을 잔뜩 고쳐주고 우리집 마당에서 다같이 키우는거야. 그러면 매일매일 귀여운 강아지들이랑 잔뜩 놀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너랑 잘 어울리네. 근데 그렇게 강아지가 좋냐?"소년이 말했다.
"응, 귀엽잖아." 소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퍽이나 귀엽다. 개털이나 날리고." 소년은 대답하며 내심 동네 복실이에게 질투심이 들었다.

소년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한참이나 침묵이 계속되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소년이 부모님이 깨시진 않았을까 걱정할때쯤 소녀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나 보고싶은게 있어." 소녀가 소년을 향해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뭐가 보고싶은데?" 소년은 땅바닥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어릴때 여행을 갔었는데 거기서 본 밤하늘이 너무 예뻤거든. 가끔 그게 보고싶을때가 있어." 소녀가 말했다.
"그러냐? 나도 봤음 좋겠네." 소년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그의 발 앞에 놓인 죄없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는 흙을 튀기며 날아가 이내 언덕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근데 점점 흐릿해져서 이젠 잘 기억이 안나려해. 그냥 그 날 내가 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던거랑, 되게 기분이 좋았다는 것만 기억나." 소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억들이 하나둘씩 흐려져더니, 요즘은 엄마아빠 얼굴도 점점 기억이 안나. 이렇게 내가 봤던 모든걸 잊어버리는게 아닐까?" 소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적당한 대답을 떠올려 보았으나, 마땅히 위로가 될만한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다시 앞을 볼 수있을까?" 소녀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녀의 고장난 은색 눈에,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에 달빛이 비춰 밝게 빛났다. 소년은 대답 대신 한없이 울고있는 소녀의 손을 조용히 붙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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