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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erhood 번역 34-1

ㅇㅇ(121.141) 2020.01.20 18:18:30
조회 66 추천 0 댓글 1
														

01


"릴리?"


노크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나는 머뭇대며 방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예상밖인데. 릴리는 저녁 먹을 때 말고는 며칠내내 거의 방에만 있었다. 지금은 어디 있는 거지?


문을 다시 닫으려는데 타일 바닥이 달그락댔다. 히사오가 우리 방 샤워실을 쓰는 게 아닌 이상 화장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욕실 문을 살며시 밀어보니 잠기지 않았다. 안을 보는데, 릴리의 샌들이 선반에 놓여있었다. 안쪽 벽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릴리였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릴리의 신발 옆 선반에 놓는다. 욕실로 걸어가는데, 릴리는 거울 아래 작은 선반에 무릎 꿇고 있었다. 통과 병들이 몇 개 쏟아져 있었고, 릴리는 그것들을 찾으려고 손으로 땅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내가 다가가니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도 타일에 맨발이 닿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릴리?"


내 목소리를 알아채곤 릴리가 작게 미소지었다.


"어서와, 하나코."

"음.... 뭐 떨어뜨렸어?"


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선반에 목욕용품을 놓아두려고 했는데 누가 벌써 놔 두고 있었거든. 결국 이렇게 난장판이 됐지 뭐야."

"어....아.."


범인이 누군지 알겠군.


"미, 미안. 아무래도 내가 그랬나봐."


릴리 아버지의 사고 전날, 나는 히사오와 목욕을 함께했다. 뒷정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었지.


"네 잘못이 아니야."

"도와줄게."


다가가서 물건을 잡고 가지런히 정리한다.


"릴리? 선반에 정리해뒀는데....어.... 보통 쓰는 순서로."


릴리가 고마운 듯 웃어보인다.


"고마워. 정말 도움이 됐어."

"릴리, 혹시 목욕 할 생각이었어?"

"응. 이번 여행 내내 목욕을 한 번 밖에 안했는데, 그때도 제대로는 못했거든. 기분 좋게 목욕하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몰라. 저녁까지는 시간도 충분히 있고 말이야."

"시기가 좀 안 좋나 보네. 혹시....저녁 식사 후에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

"그럴게. 계획이라도 있어?"

"아, 아니. 그냥...내일부터는 당분간 못 볼 테니까 아마도....떠나기 전까지는 같이 좀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러네. 미안해 하나코. 요 며칠 내가 너희한테 너무 소홀했지?"

"괜찮아. 사과 안 해도 돼. 전부 이해해."

"저녁 먹은 뒤엔 너희랑 같이 있을게. 남은 시간을 제대로 쓰자고."

"음...릴리?"

"응?"

"두....둘이서만 보지 않을래? 괜찮다면 조금....얘기도 하고. 히사오는....이해해 줄거야."

"정말이야?"

"내, 내가....네 버팀목이 돼 준 적은 없던 거 같지만.... 어쩌면 여기 있는 동안 조금은 해 줄 수 있을 지 몰라."


릴리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곧,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얼마든지."

"자, 잘됐다.


릴리가 일어난다. 욕탕으로 안내하기 위해 소매를 내 준다. 릴리는 선반의 바구니로 가더니 스웨터를 벗기 시작한다. 슬슬 떠나야겠군.


"릴리, 이제 혼자서 괜찮지? 그, 그럼 나는 이만..."

"음, 하나코?"

"응?"

"나랑 둘이서만 있겠다고 그랬지?"

"으, 응."

"내 생각엔 지금이 적기같아.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

"같이 있지 않을래?"


릴리가 윗도리에 이어 치마까지 벗자 드디어 이해되기 시작한다. 같이 있자고?


"어어어어어어.....그래도 돼?"


속옷차림의 릴리가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문제가 있을까?"

"내, 내 앞에서 알몸으로...."


릴리가 키득댔다.


"둘 다 여자잖아? 별 문제 없는거 아닐까?"

"어...네, 네가 괜찮다면 나, 나도."

"고마워, 하나코."


얼른 문을 잠근다. 돌아보니 릴리는 옷을 전부 벗고 수건을 찾아 선반을 더듬는 중이었다.


"무, 문 잡궜어."

"하나코, 좀 도와줄래?"

"당연하지."


눈을 피하며 릴리의 손을 팔에 얹고 릴리를 탈의실 밖으로 이끈다. 그러나 거울과 스툴을 지나기 전에 릴리는 걸음을 멈췄다.


"하나코, 너는 어쩌게?"

"그냥 욕탕 가장자리에 앉아있을래."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나코, 혹시 너무 이르다고 느낀다면 사과하겠지만.... 너도 같이 들어오지 않을래?"

"뭐, 뭐, 뭐라고?"


릴리는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즐거워했다. 


"응. 괜찮다면 말이야. 히사오랑도 며칠 전에 같이 목욕했지? 어땠어?"

"어......맞아."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왔을 때부터 너랑 목욕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금방 온천이나 그런 데 가진 않을 거 같았거든.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지, 진심이야?"


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 건너서가 아니라 내 옆에서 이야기 하는 게 편하잖아. 그리고, 아마 알겠지만, 여긴 혼자서 목욕하기엔 조금 크고. 단체용이거나, 가족용이라고 생각해."

"가, 가족용?"

"응. 옛날에, 목욕은 굉장히 가정적인 활도이이었어. 어렸을 때는 엄마나 언니랑 같이 목욕했어. 이렇게 큰 탕에 혼자 들어가자니 조금.... 그래서."

"리, 릴리한테 가정적인 활동이라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릴리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너랑 함께 들어가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가족 같은 거잖아?"

"릴리."


상냥한 마음씨에 미소가 나온다. 그러나 릴리의 표정은 금새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02


"어쩌면....지금은 다른 누구보다도 네가 진자 가족인지도 몰라."


충격적인 발언에 잠시 움츠린다. 이런 걸 기대하진 않았는데.


상황이 정말 그렇게까지 안좋은가?


지금은 부끄러워 할 때는 아닌 거 같다.  


릴리가 정말 저렇게 느낀다면, 내일 돌아와도 될까? 내가 릴리 옆에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천천히 한 발자국 내딛는다."


03


"가..같이 들어가자. 너, 너랑 같이라면 괘, 괜찮아. "


릴리가 안도한다.


"기뻐, 하나코."


여전히 불안해서, 탈의실에서 조금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는다. 바쁜 와중에 릴리는 조용히 있었다. 옷이 바스락대는 소리만 울렸다. 나는 결국 속옷까지벗고, 수건을 들고, 조금 떨면서 릴리를 마주했다. 


릴리랑 얼굴이 마주치니 얼굴이 붉어진다. 릴리는 몸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와 같이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릴리의 몸을 보는 동안 부러움에 침이 넘어갈 정도였다. 릴리는 우아했다. 생동감 넘치는 금발이 어깨 위로 드리워져 있었고, 몸매는 날씬하지만 풍만했다. 그리고 피부는 매끈하고 티 하나 없었다.  반쯤 벗겨진 내 피부가 더욱 거슬렸다.


우울해지기 전에 얼른 해치우자.


"릴리, 오른 손을 내밀어 줘."


릴리가 왼팔로 침착하게 손을 뻗는다. 조금 거리를 둬서 우연히라도 릴리가 상처를 만지지 않게 한다. 약간 떨어져서 앉는다.


사워기를 잡으니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릴리와 나의 대야를 채운다. 우리는 조용히 몸을 적시고, 비누칠하고, 씻어냈다. 릴리의 등을 씻어주지 않는 건 좀 미안하지만 릴리는 자기도 해 주겠다고 할 거고, 거절하면 또 곤란해질거라서 좀 무서웠다.


머리를 감고 정리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샴푸를 헹구고 릴리를 보면 릴리는 앞머리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걸까?


"릴리?"

"하나코. 너도 끝났어?"

"으, 응. 오래걸렸지? 미안해. 머리카락에 시간이 좀 걸려서."

"아는 사람들은 전부 네 머리카락을 칭찬하더라고. 관리의 중요성은 말 할 필요도 없지."

"어....정말이야?"


릴리는 그냥 싱글댔다.


"정말이야. 준비됐지? 좀 추워지긴 했네."

"알겠어. 오른손 다시 내밀어 봐."


릴리의 손을 잡고 욕탕으로 이끈다. 들어가는 걸 도와준 다음 나도 들어가서 어디 앉을지 생각해 본다. 릴리는 귀퉁이를 차지하곤 돌아서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망설인다. 릴리가 저기 앉으면 나는 왼쪽에 앉아야 할 거고, 흉터 방향이 릴리에게 향하게 된다. 조금 떨어져 앉으면 괜찮겠지. 충분히 떨어져 앉는다. 우발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릴리 옆에서 천천히 몸을 담근다.


"아아..."

"으음...."


몸이 녹는다. 우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좋은 따뜻함이 몸을 가득 데운다. 우리는 낄낄거렸다.


"물이 좋네."

"응. 온도가 적당해."


히사오랑 목욕할때 고른 온도가 아직도 그대로인 모양이다. 릴리도 이 온도를 좋아하는구나. 보통, 목욕할 때 물은 너무 차갑거나 뜨거웠다.


오랫동안 우리는 조용히 그냥 느긋하게 있었다. 하지만 결국 릴리가 입을 연다.


"음... 하나코. 병원은 어땠어?"

"도착했을 때, 칼라 씨랑 일본에서 보낸 사람을 봤어. 일본 지부 지배인인가 하던데.... 그 다음엔 사토 씨를 보러 갔고."


망설인다. 아키라와 아빠의 말싸움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말 하는 게 힘들어 보이셨어. 아프지만 그래도 우리한테 말을 걸었어.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고, 은혜를 갚을 방법이 있는지 알려달라고도 했어. 그 다음엔 돌아가는 길 조심하라거나 그런 얘기."

"그렇구나.... 혹시.... 언니가 특별히 뭐라 한 건 없었어? 히사오가 그러는데, 너랑 둘이서 산책 갔다던대."

"내가 떠나기 전에 잠깐 같이 있으려고 했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니까."


릴리 걱정도 했지만 지금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아. 비밀스럽게 굴긴 싫지만, 아키라가 시켜서 여기 있는 거라고 여겨지긴 싫었다.


"말이 되네."

"릴리?"

"응, 왜 그래 하나코?"


솔직하게 물어봐야 할 거 같아.


"아, 아까 내가 다른 누구보다 가, 가족처럼 느껴진다는 거. 무, 무슨 의미였어?


릴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웃고 조용히 넘어갈까? 그러나, 릴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04


"부모님이 떠난 뒤에, 나는 오랬동안 일시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 생각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7월에 언니랑 여기 왔을 때, 모두 거리를 느꼈어. 어머니한테 여기 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우리가 서로 좀 더 시간을 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최근에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 아니. 아마 이번 일로 우리 가족은 꽤 멀어졌을거야. 노력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야. 너무.....실망스러워."

"멀어졌다고?"


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언니랑은 꽤 오래 지냈으니까, 어느정도 눈치 챘겠지."


아키라가 나한테 얘기하기 전부터.


"아키라....부모님이랑 사이 안 좋지?"

"언니랑 나는 무척 친밀했지만, 부모님이 떠난 뒤론 더 가까워졌어. 전엔 모든 걸 서로 공유했어. 부모님 얘기만 빼고. 언니는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항상 화내거나 비꼬아서, 그냥 화 좀 풀 때 까지 놔둔 다음 주제를 바꾸게 내버려뒀어. 최근까지는 사실 별 문제 없었어."

"불려...왔을 때 까지는?

"그 조금 전에도. 7월에 스코틀랜드에 왔을 때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어. 그냥 어색하지만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려고 했어. 그런데 언니는 부모님 앞에선 더 멀어지고, 적대적으로 굴었어. 이번에는 상황이 훨씬 나빠졌고."

"어, 어째서야?"

"옛날엔 혼자서 헤쳐나가기 힘들 때마다....음.... 거짓말을 했을 때나 학생회에서 싸웠을 때 항상 언니한테 물어볼 수 있었어. 언니는 항상 얘기를 들어줬고, 어른스런 충고를 해 줬지. 그런데 스코틀랜드에서 가족 문제가 나올 때 언니의 태도는 낯설었어. 언니는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으니까 항상 신뢰했었는데, 이번에는 불신이 느껴진다는 걸 부정하진 못하겠네. 그래서 나는 이주 문제는 혼자 처리하려고 했어. 나는.... 그동안 무척 외로웠어."

"릴리..."


릴리의 미소에 죄책감을 느낀다.


"물론, 내 잘못이야. 너한테도 얘기할 수 있다는 걸 진작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집안 문제여서 밖에 내기 싫었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야.""

"이해해."

"아버지가 쓰러진 걸 계기로 잠시 상황이 늦춰지거나, 새출발을 할 수 있길 바랐지만 이번 사건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거 같아. 이제는... 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어."


릴리에게 좌절감이 느껴진다.


"언니를...정말로 잘 알고싶어. 혼자서 전부 해 왔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생명이 위중한 사람과 싸울 필요는 없잖아?"


릴리가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건....좀 심했지."

"물론 아버지 잘못이긴 해. 불필요한 위험을 무릅썼어. 그리고... 아버지가 언니랑 날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했다고 했을 때, 나는 책임감을 느꼈어. 아버지보다 은행 예금이 더 중요하다는 것처럼..."


릴리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만 그 말이 생각나. 내가 얼마나 잘 준비됐는지 확인하고 싶어. 아버지가 오만했다고 한다면, 내가 나쁜 사람일까?"

"으응. 아니야."

"이젠 아버지가 나를 그런 식으로 봤는지 자꾸  고민돼. 나한테 바라는 거라곤 남편을 잘 잡는 게 아닌가 하고.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거냐고.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꿈은 비웃을까? 아버지가 등록금을 안 내준다면 졸업 후에 대학에는 아마 못 가겠지."


릴리가 이렇게 우울해 하는 건 처음인데.


"그 걱정을 하기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해."

"하나코... 나는 배은망덕한 딸인 걸까?'

"으응. 나라도 기분 상했을 거야."

"그건...좀 안심되네."


릴리가 잠시 고민한다.


"부모님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언니가 했던 이야기를...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 특히 어머니. 솔직히.... 어머니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

"칼라 씨랑 네가 가끔 좀 어색해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어. 하지만 칼라 씨는 다정했으니까, 사실 잘 이해할 수는 없었어."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프게 미소지었다.


"아마 나만 그럴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뭐가...문제인거야?"


릴리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하나코, 우리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으, 응?"

"그냥 솔직하게 느낀대로 말해줘. 뭔가 기대하면서 여기 왔잖아."

"음.... 칼라 씨는... 생각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꽤 친절했어. 아마....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떤 사람을 상상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나이 먹은 너. 음.... 흠잡을 데 없는 매너를 가진 격식 있고 우아한 상류층 여자. 어쩌면 너랑 달리 좀 거만하거나 잘난 체 할 수도 있겠지. 이상한 소리라는 거 알아. 근데, 칼라 씨는 사실.... 아키라가 떠올라. 그냥 내가 잘못 생각했었나봐."

"음... 전형적인 아가씨를 생각했었구나?"


릴리 아버지가 그런 얘기 하는 걸 몇 번 들었었다.


"응.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갑자기 이게 왜 궁금해썽?"


릴리는 잠시 멈추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네 상상 속의 어머니랑 같거든."

"기억...속?"

"믿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일본에 있을 때 어머니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 우아하고, 온순하고, 친절하지만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고.... 그런 전형적인 사람이었어. 그리고 아버지와 가족에게도 헌신적이었고. 나는 항상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

"그, 그래?"

"여기서 어머니랑 같이 있을 때는 항상 이상한 기분이었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외국에서 살면 사람이 변한다지만..."


여전히 이상하다. 그리고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


"릴리, 7월에 왔을 때는?"

"7월에 엄마는 병상의 언니를 위해서 휴가를 낸 상태였어.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예전처럼 행동했어. 어쨌든, 대부분은. 이번처럼 격없이 굴진 않았다고."


릴리는 불행을 토했다.


"날아 같이 있을 때 그러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아버지를 등한시 했던 건 사실이고, 그 사실이 무척 괴로워. 그건....어머니가 아니었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어. 여긴...내가 바라던 내 가족이 아니야."

"미, 마안해 릴리."

"괜찮아. 불평 들어줘서 고마워."

"그,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네가 내 처지라면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도망쳐서 일본행 첫 비행기를 타고 남은 1년동안 기숙사 방에 숨어있겠지. 하지만 릴리가 바라는 대답은 아니었다.


하나코, 생각해 봐.


"화, 확신은 못하겠지만...."


아까 아키라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릴리를 괴롭게 하는 어느 선에 관한 이야기.


"아키라.... 음... 아키라랑 아까 얘기했는데, 지금 상황이 달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가봐. 아키라는.... 좀 물러서서 기다린다고 했어. 나는 리, 릴리 네가 아키라한테 뭔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아마도... 아키라가 직접...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며칠 전화 안 받았던 거, 언니가 화냈을까?"

"내가 보기엔 아니었어. 전화 해 봐도 될 거야. 아니면 가족 얘기는 꺼내지 말고, 퇴근한 뒤에 만나보던가. 아마 좋아할거야. 너도 좋을 거고. 둘이서 있으면 좋았잖아, 항상."

"뻔히 보이는 걸 무시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너한테 했던 얘기가 진심이라면 해 봐도 되겠다."


아키라와의 관계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사토 자매의 유대는 장애물 몇 번으로는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부모님 문제는 더 어렵다. 릴리의 기분이 짐작이 간다. 직접 겪어 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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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그냥 화수를 늘리라고

컨티뉴를 붙이지 말고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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