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xviii

카오스의 영역

”이것은 어떤가요?’“

기록관이 말한다. 그 목소리에 너무 놀란 신더만이 책을 떨군다.

”괜찮으신지요?“

”그래, 괜찮네.“

호흡을 다듬으려 애쓰며 신더만이 답한다. 그냥 단어일 뿐이다. 무작위로 반복된 단어일 뿐이다. 우연이다. 심리적 속임수다. 그는 동기화의 마법을 찾고 있지 않았던가. 물론 정말 그것이 나타난 순간, 그를 뒤흔들 게 분명하지만.

”당연히, 괜찮네.“

스스로의 안정을 찾으며 신더만이 다시 입을 연다.

”뭐라고 했나?“

”방금 이 책에 제 손이 스쳤습니다.“

기록관은 신더만에게 보이기 위해 작은 책을 가져온 채다. 너무 낡은 제본 상태인지라 거의 책등을 읽을 수 없을 지경이다. 몸을 기울인 신더만이 눈을 가늘게 뜬다.

”에눈시아 독본이라.“

신더만이 소리내어 읽는다.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군.“

”이것 좀 보십쇼!“

크고 묵직한 2절판 책을 들고 마우어가 달려온다. 서둘러 두 사람을 지나친 마우어가 책을 열람대 위에 내려놓고, 신더만과 기록관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다.

마우어가 펼친 거대한 2절판 책에는 지도처럼 보이는 낡은 양피지가 느슨하게 묶여 있다.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우어가 리본으로 묶인 부분을 풀며 말을 잇는다.

”레그노 카오(Regno Kao).“

”카오스의 영역.“

기록관이 되된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것인데, 혹시 번역기가 있는가?“

신더만이 기록관에게 묻는다.

”있습니다.“

기록관이 틈새에서 사이버 스컬을 불러낸다. 

”하지만 저 원제 아래 붙은 표지에 이름이 쓰여 있었어요.“

기록관이 가리킨 것을 보고 신더만은 스스로가 바보같다고 여긴다. 불안이 그를 갉아먹어 평소의 강점이던 근면함과 정확성을 닳게 만드는 중이다.

”계속하시죠, 영감님.“

마우어가 코웃음을 치고서는 2절판 책을 활짝 펼치고선 책 안에 있는 페이지들을 샅샅이 뒤진다.

”이것 좀 보게.“

신더만이 페이지를 넘기는 마우어를 제지하며 말한다.

”저것 지도인가? 도시의?“

”아니오, 미궁 같군요.“

마우어가 대꾸한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소.“

갑작스레 뒤에 나타난 로켄이 어깨 너머로 책을 바라보며 말한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전설?“

”우르브스 인엘렉타빌리스(Urbs Ineleuctabilis).“

마우어가 소리내어 읽는다. 기록관은 사이버 스컬을 작동시킨다. 흡사 개의 해골과 유인원의 해골을 황동과 금으로 얽어맨 모양새다. 사이버 스컬이 테이블 위를 맴돌며 윙윙대는 소리를 낸다. 사이버 스컬이 내쏜 빨간 빛의 선이 차트를 오간다.

<필연의 도시.>

음성 샘플을 뒤섞어 단어처럼 들리게 하는 모노톤의 소음이다.

네 사람은 잠시 차트를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아니군요.“

아무어는 급박하게 결정을 내린다. 다급한 마음 때문에, 무시해야 한다는 결정을 만든 모양이다.

”그냥 낡은 신화입니다. 다시 일하러 가죠.“

”황궁처럼 보이네만.“

신더만이 지적한다.

”아닙니다. 그냥 낡은 환상이라고요. 말도 안 되죠.“

”뭔가에 이끌린 거군, 마우어?“

신더만이 묻고, 마우어는 얼굴을 찌푸린다.

”글쎄요, 뭐 솔직히 저는 당신의 검색 방법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우연에 맡겨라’? 솔직히, 비위를 맞춰 드리고는 싶지만, 농담 같기까지 합니다. 의심스럽고, 말도 안 되는 접근 방법이에요. 좀 더 엄격하게 데이터 목록을 참조해야-“

”황궁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군.“

로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측면도,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소. 일부는 완전히 틀렸-“

”제발요.“

마우어가 말을 끊는다.

”당신도 마찬가지십니다. 우리 모두 너무 암시에 너무 푹 빠졌잖아요. 존재하지 않는 패턴과 연관성을 보면서. 그런 걸 가리키는 단어가 있었는데-“

<아포페니아.(각주 1)>

사이버 스컬이 끼어든다.

<파레이돌리아.(각주 2)>

”그게 뭐가 됐건.“

마우어가 쏘아붙인다.

”좀 더 체계적으로-“

”다시 보시오, 보이타르크.“

로켄이 입을 연다.

”이 지도는 광기로 뒤얽힌 위치들을 표시하고 있소. 거기에는 동의하오. 하지만 저 이중 나선 형상은 어떻소? 무한을 표시하는 기호 같지 않소? 그리고 보시오, 저기 새겨진 관문들의 위치를. 주요 구조는 또 어떻소? 이것은 존 임페리알리스 배치도의 메아리나 다름없소.“

”아니-“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황궁 구역의 도해를 익혀 왔소.“

마우어가 말하려는 순간 로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술 도식, 전투 평가까지… 비교하면, 초자연적이리만큼 들어맞소. 이건 거의 어린아이가 만들어 낸 황궁 설계도거나… 혹은 불안정한 마음이…“

”모든 도시는 다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그 기본 요소들은-“

”어둠 속에서는 모든 고양이가 다 비슷해 보이기 마련이지요.“

신더만은 둘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애쓰듯 말한다.

”도움이 안 되네요.“

마우어가 신더만을 노려보며 말한다. 그녀는 지도를 가리킨다.

”저도 황궁 구역 지도를 잘 알아요, 아스타르테스 나으리. 그래요, 일치하는 게 몇 있긴 하네요. 하지만 불일치가 훨씬 많단 말입니다. 저게 생텀이면 저건 뭐죠? 저거는요? 저 건축물은 뭐죠? 저게 사자의 문이면, 저건 뭐고요? 제발, 넘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지도가 맞물리거나 겹쳐진 것처럼 보이오만.“

신더만이 말한다.

”두 도시의 다이어그램이 겹쳐 있는 것 같군. 어쩌면 둘 이상이-“

”그래서 이 지도가 다 뭔데요, 키릴? 규모도 없고, 지표도 없고, 정의도 없어요. 이 지도가 비례를 맞춰서 그려졌다는 증거도-“

”만약 이것이…“

신더만이 잠시 멈춘다.

”이것이 황궁이 변화하는 것을 어떻게든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면? 워프의 침입을 반영해서, 혹은 다른 장소나 시간의 중첩을 고려해서 그려진 것이라면? 그렇다면 가비엘이 묘사한 재배치와 왜곡 역시 설명할 수 있지 않겠소?“

”이 옛날 지도에서 그런 모습을 담아낸다고요?“

마우어가 쏘아붙인다.

”이것은 언제 만들어진 지도인가?“

로켄이 기록관에게 묻는다.

”작품의 날짜나 출처는 미상입니다, 각하.“

기록관이 답한다.

”다만 ‘카오스 예언의 서’의 일부였다는 추정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어요.“

”이 가장자리의 텍스트는?“

로켄이 묻는다. 기록관은 다시 사이버 스컬을 조심스레 만진다. 로켄이 가리킨 부분 위로 움직인 사이버 스컬이 다시 붉은 빛의 막대를 펼쳐 희미한 갈색 잉크로 새겨진 낡은 필기체 위로 서서히 미끄러뜨린다.

<그대들은 이곳이 진정 영원한 광기와 거짓의 장소임을 아나니, 수많은 거리와 훌륭한 관문 속에 모든 진실을 감출 땅이라. 어둠 속에 지어졌기에 시간의 시작 전부터 서 있었고 시간을 통해 서 있으며 모든 시간의 너머 영원한 어둠의 속에 서 있으리라. 필멸의 눈을 벗어나 영원히 서 있을지니, 저편을 잇는 거울 너머에 서 있는 이 대지는 오직 환상과 가장 희미한 꿈에서만 드러나리로다. 영원히 흐를 파도 속에 흔들리는 파멸의 집이자 광기의 집이로다. 어둠을 사냥하는 넷의 거처일지니, 아직 수없이 많은 텅 빈 옥좌와 복수와 파멸을 찾는 영혼들이 거기 거하리로다. 칼라스타에서 일생을 바친 여정 끝에 이를 수 있을지니, 그 벽과 포탑은 불가능의 도시와 이어질 것이라, 먼지의 도시에서 영원의 순간이 걸릴 이 대지는 위게벨라쉬(Uigebealach, 각주 3)와 이어지리니 존재하기도 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이곳은 모든 이성에서 해방된, 전후의 모든 사물을 벗어난 존재이리니->

”그만.“

로켄이 끊어낸다.

<-날들의 날 위로 모든 것이 될 것이니, 그 문은 인간의 만물과 인간을, 천사와 별들을 삼킬 것이로다, 인간의 강대함이 빚은 것은 무와 절망으로 화할진저, 모든 민족은 잊혀지고 모든 제국은 기억되지 아니하리로다, 한 큰 눈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는 그 눈 안에 거하는 파멸의 필연적 승리를 바라모며 눈물을 흘리리라, 모든 것의 파멸이자 그 파멸이 가져올->

”그만.“

사이버 스컬이 침묵에 잠기고, 붉은 빛의 선이 깜빡인다.

각주 1 : 서로 무관한 것으로부터 연관성을 찾으려 드는 사람의 심리를 가리키는 용어.

각주 2 : 시각적 자극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무언가를 보았다 여기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가리키는 용어.

각주 3 : 시간이 뒤로 흐르는 웹웨이 내의 장소. 아엘다리조차 두려워하며 건드리지 않는 구역. 물론 이 설정이 나온 소설 자크 드라코 시리즈가 거의 30년 전 소설이라, 이 설정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