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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리뷰북동의]성군의 조건, 성군의 사람

ㅇㅇ(218.144) 2021.12.13 17:08:48
조회 3647 추천 272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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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오지 못할 것이다."


10화에서 산의 이 대사에 진심으로 감동했어.


이거야말로 산이 덕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약속이기 때문이야.

"무사히 보위에 오르라"는 너의 소원을, 그 깊은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러니 반드시 들어주겠노라는 약조이기 때문이지.


이 암호 같은 사랑의 선언이

이 두 사람이 어떤 이들인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보여주지.


산은 자신을 향한 덕임의 사랑을, 그 깊이와 색깔을 온전히 이해한 바로 이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한동안 별당을 찾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으니까.

한동안 덕임을 만나지 않겠다는 계획은,

사실 그 순간까지 산에게 없었어.

오히려 처소를 옮기고도 덕임을 보고 싶어 서고로 배치해두고

저녁 때 별당에서 만나는 약속도 잡았었지.


어쩌면 정말로 저위가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산의 마음은 풋사랑에 홀려 태평하고 나태했고,

어쩌면 정말로 덕로의 말대로 국가의 안위보다

한낱 나인의 사랑에 더 방점을 찍어두었는지도 몰라.


그러나 자칫 역모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임금의 판단력도 위태로운 지금,

아무리 절실한 사랑이라도 얼마든지 미혹이 될 수 있고,

매 순간 서슬 퍼런 칼날 위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국본의 이성을 흐릴 수 있겠지.

실낱 같은 오점이라도 지금 산에게는 그대로 목줄을 틀어쥐는 올가미가 될 거야.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는, 곧바로 이어진 연회의 사달이 잘 보여주었고.

하지만 그런 섬뜩하고 외로운 처지마저

덕임 생각을 하면 잠시 잊을 수 있었지.

서고에서 들은 '보고 싶다'는 그 말 한 마디에 피가 끓어,

설마 설마, 이 여자도 나를 사랑할까, 구름을 밟는 듯 꿈처럼 행복한 마음에

한 번도 군주의 운명을 피하려 한 적 없고, 앞으로도 피하지 않겠다던 산은

모든 걸 놓고 그저 이 여자와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어느 찰나 필부의 욕심을 품었을지도 몰라.

그러니 앞뒤 재지 않고, 뒷일도 생각지 않고, 별당에서 다짜고짜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고백하려 들었고.


그러나 필부가 될 수 없는, 심지어 그저 평범한 왕도 아닌,

역사를 바꿀 성군의 재목인 그가 사랑하는 여자 역시 평범한 여인이 아니지.


애초에 그녀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왕도 아니고 세손도 아니고

"한성부도 포도청도 하지 않으니, 호랑이 잡는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던

비범한 기개의 겸사서. "훌륭하십니다"라는 칭찬에 살풋 웃던 의로운 사내였으니까.

그녀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선언한 주군은,

"언젠가 생길 힘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을 돕고자"

치욕과 고통을 참는다고 이를 악물던 청년,

한낱 나인의 목숨을 위해 거침없이 무릎을 꿇는 웃전.

제조상궁이 뭐라고 해도,

그녀가 보기에는 훨씬 더 좋은 나라를 세울 성군의 재목.

필사적으로 노력하기에 도와주고 싶은 사람,

평범한 여인의 행복, 나인으로서의 권력욕,

그 무엇을 희생하더라도, 지킬 가치가 있는 사람.


충성과 사랑은 덕임에게 둘이 아니야.

그저 하나이고 같은 마음이지.


충성을 바칠 만한 주군이기에,

존경을 바칠 만한 남자이기에,

그렇기에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인 의지로

산을 사랑하기로 선택했으므로.


덕임은 처음부터 그런 아이였기에,

제조상궁이 무릎에 앉혀 놓고 영빈의 장례행렬을 가리키며

"승은을 입는 것이야말로 궁인 최고의 영광"이라고 가르치려 했을 때

납득하지 못해. 그녀의 꿈은 그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는 사람,

"글씨를 잘 쓰는 궁녀"가 되는 것이었지.


그렇기에 덕임은 자신의 선택으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산이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던 '산의 사람'이 되는 거야.

그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나

지금은 우리가 사랑할 때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는 것으로.

정조의 말대로 의빈은 "그가 잘못되지 않도록 바른 말을 해주는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산은 "다른 일을 생각할 겨를이 있습니까"라는 덕임의 말에

머리가 띵했겠지. 처음엔 그저 서운했을지 모르지만,

뒤에서 뜻밖에 들려오는 한숨 섞인 진심,

"부디 무탈하소서"라는 속삭임이 한 줄기 밤바람처럼

모든 의혹을 씻어주었어.

여기 그가 찾아 헤매던

그의 사람이 있다고.



그러니 "한동안 오지 않겠다"는 조용한 산의 약조는

자기가 그녀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주군이고 사내라는

확언이기도 해.




생각해 보면

산은 처음부터 "나의 사람"이라는 말을 계속 강조해.

필사적으로 "나의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어.


잘 살펴보면

산의 사람이 갖춰야 할 암묵적 조건은 무엇보다도,

백성을 차별하지 않고 하나같이 아끼며

제 일에 충실하고

사사로운 사심이 없이 오로지 의로움을 앞세우는 것이지.


산은 덕로가 '자신의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고 바라고 있으나

덕로는 자기도 모르게, 끝없이 산의 시험에 낙방하고 있지.

덕로에게 권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사람은 쓰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니까.


그래서 덕로는 호랑이 사냥에 참여하지 않아.

한낱 궁녀들의 목숨 따위 안중에 없고.

"궁녀들의 더 희생될 때까지 기다리시라, 세손을 말렸을 것이다"라고 말렸을 때,

인신매매와 유괴 사건에서도 "보위에 오르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할 때,

"그냥 취하시면 사라질 애정이다"라고 말했을 때,

덕로는 산과 달리 사람을 숭상하기 위해 권력을 원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사람을 버리겠다는 태도를 드러내.


그러니 산은 얼마나 '사람'에 목말랐겠어.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좌익위 정도겠지만

그는 산의 속내를 천분 만분의 일도 이해해주지 못하지.


덕임의 "훌륭하십니다"라는 말에

산이 매번 흔들리고 감동하는 이유가 있어.

산이 어째서 노력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으니까.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과 비극은,

이를테면 숙종의 연애사와는 달리,

단순히 왕의 로맨스로만 볼 수가 없어.

그들의 연애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나라의 역사가 말 그대로 달려 있었으니까.


그토록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군주의 의무에 진심을 다했던 왕이

후사만은 단 한 여자에게서 보고 싶은 마음에

오랜 세월 미루고 피하고 도망을 다녔어.

단순한 연심 때문이었을까?


모든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자신의 사람'인 의빈과의 연대에서 낳은 이에게 꼭

사랑하는 이 나라를 물려줘야겠다는 절박한 충정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 이야기를 생각하며

우리가 이처럼 무한한 '만약'을 떠올리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잠시 유토피아에 가까워졌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을 걸게 되기 때문이잖아.


9-10화는 성군의 조건을,

그의 사람이 갖춰야 할 자격을 말해주는 회차 같았어.


사랑이 닥쳐온 순간, 오로지 그와 그가 섬길 나라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줄 아는 여인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한동안 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국본의 가치.

함께 조용히 눈감은 이마 키스가

그 두 사람의 쌓이고 쌓인 마음,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신뢰와 충정,

그리고 연심, 그 깊은 수천 가지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빛깔을

얼마나 멋지게 전달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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