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자리에 앉던가! 아니면 죽어야지!"
영조는 손자인 이산의 앞에서 일갈했다. 영조의 일갈처럼 이산에게는 애초에 인생에서의 선택지가 없었다. 바로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되는 길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산의 운명은 이미 태어났을 때 '세손'으로 정해져 있었다. '세손'은 왕실의 적통으로서 세자에 이어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귀하디 귀한' 지위였고, 축복 받을만한 지위였다.
그러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그에게 주어진 '세손'의 지위는 곧 그의 생명줄이었다. 그는 '세손'이기도 하였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죄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왕이 되지 못하면 할아버지의 말처럼 죽어야만 하니까.. 왕이 되는 것은 그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덕임이에게 '필부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덕임이가 이산에게 바라는 '필부'의 삶은 애초부터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녀의 삶을 버리고 이산에 대한 사랑을 '선택'한 덕임이에게는 이산의 말은 다소 무심하고 '잔인'할 수 밖에 없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필부'라는 선택지 조차 없었던 이산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산의 사랑도 덕임의 사랑만큼 비극적이다. 아니 어쩌면 덕임의 사랑 보다 좀더 비극적일 수 있겠다. 덕임은 궁녀의 삶이라는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지만 이산에게는 오직 제왕으로서의 삶이라는 운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평생을 '제왕'으로 살아야 했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 자유로운 필부가 아닌 생사여탈권을 쥔 두려운 존재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죽음의 순간이 되어서야, 제왕의 굴레에서 벗어나 덕임을 '필부'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다.
"궁궐은 화려한 감옥이에요."
정순왕후 김씨는 이렇게 되뇌인다. 이 한 마디가 어쩌면 '옷소매 붉은 끝동'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세지일 것이다. 궁궐 안의 사람들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인형의 집에 있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순간 속박이 되고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한다. 망둥이처럼 뛰어다니던 궁녀 '성덕임'은 '후궁'이라는 이름으로 별당 안에서 왕을 기다리며 누워 있어야 했고, 조용조용하던 궁녀 '손영희'는 용기 있게 자신의 '사랑'을 선택했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혜경궁은 남편이 시아버지에게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목도해야 했고, 대비 정순왕후는 오라비의 죽음 앞에서 조문도 가지 못한다. 이러한 속박은 궁궐의 주인인 이산도 피해가지 못한다. 어쩌면 그가 궁에서 가장 속박받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제왕이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고 죽어서야 그 운명을 벗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은 하나의 비극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비극적인 결말만을 던져주지는 않는다. 비극적인 현실이었지만, 이산과 덕임은 자신들의 운명을 굴하지 않고 순간마다 진심으로 서로를 선택했고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랑은 영원이 되었다.
* 역사와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랜만에 드라마에 달콤하게 취했다. 난생 처음으로 드라마 갤러리에 참여해서 여러 글도 남겨보고.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를 보내기가 아쉽네. 그래서 그런지 글이 생각보다 잘 안 써지고 많이 부족한 리뷰가 되었네. 다른 분들이 워낙 훌륭한 리뷰들을 많이 써서 리뷰를 제대로 남길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그래도 부족하더라도 리뷰글을 남겨서 드라마 덕질을 매듭짓고 싶었다. 그동안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면서 여기 와서 여러 글들을 쓰고 보면서 참으로 재밌었다.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는 문구처럼 옷소매와 웃고 울던 순간들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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