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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하얀 결혼(5)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9 22:46:10
조회 583 추천 11 댓글 3
														

1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6458

2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8080

3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174

4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405



해골도 몸살이 날 수 있단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어젯밤 비가 거세게 내린 탓이다. 조용히 창문 너머로 비만 감상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옆집 할머니 댁의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려는 걸 붙들고 뒷집 할아버지 댁 밭이 엉망이 되려는 걸 수습한 탓이다. 너는 지하를 이끌고 지상으로 나왔단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듯 여린 몸으로 누구보다도 굳센 움직임을 보였고, 나는 마법에만 의존하는 게으른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 여튼 네 재빠른 움직임 덕분에 옆집도 뒷집도 큰 손해는 면할 수 있었으니 그거면 충분하겠지.

문제는 나다. 그리 오랜 시간을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네가 더 격하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다음 날 앓아누운 건 나였다. 스노우딘에서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살았는데, 햇살 좋고 적당히 따뜻한 지상에서 아프다니 이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몸이 녹아버리는 것 같다. 뼈도 녹을 수 있을까? 딱딱하고 하얀 무기질이 사르르 녹아 마시멜로처럼, 엉망진창으로 흩어지는 풍경이 흔들린다.


병원에 가볼래?”


나는 잠시 고민하다 괜찮다고 대답했으나, 목이 갈라져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괴물에게 적용되는 약리 작용은 인간과 별다를 건 없지만 아직까지 확고하게 입증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단 것에 불과한, 미지에 대한 차선책에 불과하다. 이 시골에서 괴물을 위한 병원은 두 시간도 넘게 가야 하는 시내에, 그마저도 이제 막 신설된 탓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것이 전부다. 차도 없고, 지름길도 쓸 수 없는 지금은 물과 휴식이면 충분하다.


죽 먹을래? 아니면 사과 간 거 먹을래?”


사과를 간 건 네가 애용하는 특별식이다. 넌 아플 때마다 사과 간 걸 즐겨 먹곤 했다. 나는 죽이라고 대답하려다, 기왕 열도 나는데 차가운 거라도 먹으면 낫지 않을까 싶어 사과를 부탁한다. 너는 잠시 불을 끄고 문을 닫아준다. 고요한 어둠은 완벽한 까만색이 아니다. 희미하게 형체를 띄는 책장, 책상, 침대, 걸어둔 옷가지 따위가 선을 그리고 문틈으로 빛이 슬금슬금 기어들어 온다.

냉장고 문을 닫는 소리. 물을 틀었다가 잠그는 소리. 그리고 칼날이 껍질을 가르는 소리. 이 조용한 집에선 무슨 소리든 너무 잘 들린다. 사가각사각 껍질이 벗겨져 그릇에 고이 포개지는 소리가, 너무 선명하다. 사각. 사각. 사각. 주문처럼,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일정한 소리가 정신을 몽롱하게 흔든다. 시야는 무겁게 선명해진다. 아주 오래전 같기도 하고, 방금 전 같기도 한 과거로 고정된 시간이 재생된다. 나의 시작. 세상은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으나, 내가 자각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탄생한 거나 다름없이 내게 다가온다. 나는 거기에 녹아 든다. 함께 어우러진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은 채, 어쩌다 보니 구르고 짓눌리고 뭉개지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태양을 보고, 파란 하늘을 보고, 너와 같은 반지를 끼었다.

너는 무슨 연유로 비익연리의 삶을 내게 건넨 것인가.

한 쌍이 되어야만 날 수 있는 날개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샌즈.”


물에 녹아버린 솜사탕처럼 모든 것이 흩어진다. 너는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흩어낸 걸까. 그렇게 녹이다 못 해 마침내 녹지도 못할 만큼 한계에 다다른 물에서 너는 무엇을 바라봤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건가. 물어봐도 의미 없겠지. 나 역시 형체를 잃고 흩어질 뿐이니까. 거기서 온전한 건 너뿐이겠지. 화하지 않고 온전히 남을 권리는 네게만 있다.


과연.”


너의 목소리가 맑은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선명하게 퍼져간다. 내가 소리 냈던가? 아니면, 너는 소리 내지 않는 말도 들릴 만큼 마침내 삼라만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걸까? 네 손이 이마에 올라온다. 차갑다. 동시에 따뜻했다. 서늘한 온기가 나를 감싼다.


꼬맹아.”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네.”

, 아마, 안 불렀으니까.”

어차피 다른 호칭은 쓰지도 않으니까.”


거기엔 불평도 섭섭함도 없다. 어떠한 것도 없다. 조롱이나 알 턱이 없는 증오라도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조차 없다. 무색무취다.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까. 타인과 타인이 만남을 맺어도 이렇게 투명할 순 없는데.


투명하네.”

그렇게 보이는구나.”

정말... . 그래.”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선명하게 인지하고, 어렴풋이 인과관계를 짐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 시냅스란 게 뼈에도 존재한다면 지금 내게 그것들은 연결이 끊어진 채 방황하고 있는 걸까.


많이 돌아갔어?”

.”

많이, 돌아왔어?”

.”

정말, 많이?”

아주 많이.”


너는 내 얼굴을 감싸 품에 안는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와 같은 자세의 너에게서, 어쩌면 이런 몸짓이 예전에 한 번 정도 이뤄지지 않았을까 멋대로 짐작한다. 너는 내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뒤 사과 간 것을 수저로 떠서 내민다. 영락없는 아이 취급이다.


완전 애네... 애야.”

환자니까.”

이젠 무덤에 들어가야 하나.”

아직 움직이잖아.”

그래.... 뼈다귀지만.”


밀어낼 힘도 없어서 네가 움직이란 대로 움직인다. 벌레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네가 들었다 놓는 수저에 온전히 식사를 맡긴다. 한 숟갈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식사를 치운 뒤 너는 내 곁에 조용히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본다. 비가 그쳤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어김없이 불안하다.


석 달만 있으면, 결혼식 한 지도 일 년이 되네.”


사과를 먹어서 그런가, 머리가 살짝은 돌아간다. 그래도 제대로 가늠되지 않는다.


백년해로 하려면 아직...”

구십 구 년 석 달.”

떡국이 몇 그릇이지.”

구십 구 그릇.”

많기도 하네...”


졸음이 몰려온다. 그 와중에 구십 구 그릇이라고 말한 떡국이 내 앞에 들이 밀어지는, 평소 같으면 피식 웃었겠으나 지금은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너는 돌연 그런 내 풍경에 침범해 그 떡국을 한 그릇씩 비우기 시작한다. 보는 사람이 배가 부르다 못 해 구토할 법한 풍경인데, 너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릇을 싹 비운다. 그리고 그 그릇을 다 비우자마자 네가 먼지로 흩어지고, 네가 있던 자리에는 반지만 덩그라니 남는다.

- 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에 온몸이 쥐어 짜이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다. 건성으로 걸쳐뒀던 수저가 떨어진 소리였다. 옆에서 너는 잠든 건지 실눈을 뜬 건지 모를 눈으로 엎드려 있다. 끌어올리려 했으나 너는 요지부동이었기에 있는 힘껏 남은 이불을 당겨 너를 덮는다. 그 위로 달빛이 한 번 더 내려앉아, 면사포를 쓴 그 순간을 희미하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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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방금 글 올렸는데 왠 이상한 글씨들이 올라오네.
한글에서 바로 복붙하지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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