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언갤문학]하얀 결혼(4)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6 19:42:29
조회 663 추천 14 댓글 5
														

1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6458

2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8080

3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9174


시골이라 해서 꼭 불편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깨끗한 공기, 보존된 자연, 고요함 등등.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만큼 좋은 장소도 없겠지. 교통이 불편하단 점이나 편의시설이 부족하단 점이 있지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 때문에 도시로 나갔지만.

30분을 기다려 마을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에서 30분을 기다려 시내로 나가고, 다시 거기서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도시로 향한다. 지름길이면 1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를, 너는 돈과 시간을 정성스럽게 소비하며 풍경을 바라보고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는다. 딱 한 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 물었더니,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예뻐서란 대답을 들었고 그 이후로 나는 같은 질문을 하지 않고 너 역시 그 화제를 언급하진 않는다.

4시간 동안 너는 창밖을 보거나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나는 잠을 자거나 파피루스가 좋아하는 퍼즐 모음집을 풀었다. 유일한 교집합은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찐 감자를 사먹은 게 고작이다. 너와 나는 좌석은 같이 해도 피부를 맞대지 않는다. 물론 해골은 피부가 없으니 닿아봤자 살과 뼈가 고작이지만.

도착한 곳은 아찔한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시였다. 터미널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고, 사장되기 시작한 만화 잡지 따위를 모아 파는 가판대라던가 담배라고 크게 쓰인 간판이 달린 슈퍼, 그리고 수많은 괴물과 인간이 어지러이 모인 군중으로 정신이 없다. 새 울음소리조차 드문 시골과 달리 도시는 1초도 쉬지 않고 말소리나 발자국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따위로 시끌시끌하다.


백화점에 가자.”


너는 아이를 잃을까 손을 붙드는 어머니처럼, 내 손을 붙잡고 잰걸음으로 터미널을 빠져나온다. 백화점은 조금 조용할까 내심 기대했으나 주말이란 점이 겹쳐서 그런지 인파는 터미널 만만치 않게 정신이 없었다. 화려한 조명과 반짝이는 장식, 깨끗한 타일, 깔끔한 옷을 입은 마네킹... 인공적인 느낌이 지나치게 강해, 사람이 살고 움직이는 장소라기보단 잘 배치한 무대 같단 생각이 든다.


혹시 필요한 거 없어?”

나는 없는데, 파피루스는 있으려나.”


아이 옷을 파는 매장과 가전제품 따위를 취급하는 매장 층이 같았다. 너는 미리 알아보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직감이라던가 그런 말하기 어려운 감각이 있는지 도가미와 도가레사 아이에게 딱 어울릴 법한 옷을 단시간에 골라낸다. 그리고 뭐든지 좋다 판단되는 내 의견을 참고해 파피루스에게 선물해줄 주방기구를 고른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 단 30. 식사 한 끼를 대접해도 이보단 오래 걸릴 것이다.


시간이 조금 남았네.”

그럼 조금 더 일찍 보는 거지.”

모처럼 도시에 왔으니, 디저트 먹고 싶어.”

그럼 난 케첩 아이스크림으로.”

인절미 아이스크림은 있는데.”

언제 케첩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려나?”

언젠가 샌즈 같은 입맛을 가진 인간이 태어날지도 모르지.”

천 년 정도 살면 알게 되려나?”

의외로 금방일지도.”


너는 네가 먹을 초코 아이스크림과 내가 먹을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케첩은 빨간색이니까 같은 빨간색을 먹으라는, 황당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키 어려운 너 다운 주문이다. 몇 몇 아이들이 나를 보고 해골이라고 소리치며 지나가고, 어떤 아이는 과학실 괴담을 줄줄 읊는다. 네가 학교에 다닐 적에 있던 괴담이 아직도 건재하단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가는데 몇 번이나 다른 사람 바지에 부딪힐 뻔했고, 그럴 때마다 너는 능숙하게 내 팔을 붙들어 다른 사람의 세탁비를 물어내는 참사를 막아줬다. 지하에 있을 땐 나보다 작은 괴물도 적지 않아 불편하지 않았는데 지상에 나와 보니 인간들은 생각보다 크고 거대했다. 덕분에 몇 번이나 부딪치고, 밀쳐지고, 어린애라고 오해 받고 맥주 살 때마다 신분증을 꼬박꼬박 챙겨야 했는지.


시간 맞출 수 있으려나?”

아마.”


지하철이 생각보다 붐벼 이동하는데 불편하다. 너는 선물이 찌그러질까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거기다 나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선물이 생각보다 커서 내가 들었다간 망가지거나 흐트러질 게 뻔하다. 겨우 도착해보니 공들인 네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너는 거기에 속상해하지도 않고 내 걸음에 맞춰 도가미 집으로 향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역에서 다소 먼 종합 주택에 도착하고 너는 벨을 누른다. 나간다는 대답과 함께 살짝 살이 붙은 도가미와 도가레사가 밖으로 나오고, 반갑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 한 채 겨우 형태를 유지한 네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린다. 너는 햇살처럼 웃으며 둘의 환대를 온 몸으로 받는다.


프리스크, 이게 얼마만이야?”

우리 결혼식에 오고, 우리가 결혼식에 온 이후로 처음이지?”

야아, 정말... 작은 멍멍이 같던 프리스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거기다가 스노우딘의 코미디언이랑...”


그렇게 말하며 도가레사는 나를 쳐다보다 프리스크를 보며 짓궂게 웃는다. 그리고 집으로 우릴 들였는데, 거실 한 가운데 펼쳐진 보자기 위에 작은 괴물 한 명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포데기로 감싼 아이는 세상 더러움이나 슬픔 따윈 조금도 모르는 얼굴로 평온함에 잠겨 있다.


우리 아이야! 이름은 도가미사!”


아주머니 댁도 그렇고 괴물은 자식을 낳으면 자기 이름에서 하나씩 따는 풍습이 있나보다. 익숙치않은 괴물의 풍습에 뺨만 긁적인다.


그러고 보니 괴물과 인간은 아이가 안 생기나?”


차를 가져오며 태평하게 묻는 도가미의 질문에, 너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으나 나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프리스크가 나랑 결혼하면서 미리 언급한 사안이긴 했지만 실제로 받아보니 기분이 여러모로 이상하다.


아마 안 될 거예요. 알피스도 궁금하다고 사례를 조사해보는 중이지만,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대요.”


알피스가 궁금하다며 눈을 반짝인 게 생각난다. 옛 기록은 남아있는 게 없고 왕 부부도 기억이 옅어졌으니. 괴물이 지상에 녹아들긴 했지만, 아직 괴물과 인간 사이의 간극은 상당히 넓어 둘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결혼하는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니.... 생각해보니 프리스크가 나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뉴스거리가 되긴 했었다. 괴물의 이사로 자처한 인간이 괴물과 결혼한다.... 거기에 그 괴물이 별 볼일 없는 해골이란 점 때문에 놀려먹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신나게 떠들었었지.


그래? 아쉽네, 그거.”

프리스크의 아이라면 정말 귀엽고 예쁠 거야!”

프리스크를 닮았으니 차분하고 점잖겠지!”

? 근데 샌즈가 아빠면 게으른 거 아니야?”

그리고 농담을 좋아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쿠키들이 압정이 된 기분이다. 혼자 살 때조차 결혼이니 자녀계획이니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는데, 프리스크랑 결혼한 뒤론 이런 문제들에 종종 부딪히곤 한다. 거기다 지난밤은 잘 보냈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데 그럴 때마다 손을 세게 움켜쥐며 눈알만 데굴데굴 굴려야 했다. 골이 빠개질 것 같다 여러모로.


근데 나름 괜찮지 않아?”

! 프리스크라면 게으른 아이라도 잘 키울 거야!”


누가 나 좀 여기서 꺼내줘라, . 결혼 질문 받기 싫어서 가족 모임에 참석 안 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이 뼈저리게 이해된다. 그런 나와 달리 너는 아무 능숙하게 받아 치는 게 세계급 테니스 선수가 따로 없다.

2시간이 이틀 같은 만남이었다. 막차를 타야한다는 사실과 핑계로 적당히 만남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30분이 남았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커다란 텔레비전을 본다. 유명한 가수가 명을 달리한지 1주년이 됐다는 뉴스가 무심하게 흘러 나온다.


앞으로 그런 질문 종종 받을걸.”

, 생각보다 치 아프네.”

괜찮아. 괴물과 인간사이니까 그나마 덜 받을 거야.”


덜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받는다는 거 자체가 문제인데.


설령 추궁당해도, 내가 불임이라 하면 돼.”

내가 고자라고 하는 게 낫지 않나?”

네가 고자라고 하면, 너랑 얼른 헤어지고 아이 보는 게 낫지 않냐는 질문 받을 걸?”


그럴싸한 가정이다. 아니 가정이 아니라 결론인가? 프리스크라면, 모두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아이인 만큼 다들 프리스크의 아이를 보고 싶겠지. 그런 아이가 제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다들 슬퍼할 테니.


버스 타기 전에 뭐 먹을래?”

가서 결정하지 뭐.”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런 우리 등 뒤로 가수를 애도하는 뉴스가 끊기고, 내일도 날씨는 오늘처럼 맑을 거란 무미건조함이 이어진다. 누가 죽건 말건 태양은 뜨고 지니까.


-------------------------------------------------------------------------------------------------------------------------------------


이거 쓰면서, 괴물과 인간 사이에 혼혈은 성립할까 안 할까가 참 궁금함.

토비폭스 대답을 들려줘어어어.


처음엔 적당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시골 중에서도 꽤 시골스러운 느낌의 동네가 배경이 됐다.

추천 비추천

14

고정닉 1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내 며느리, 사위로 만나면 부담스러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6/03/09 - -
AD 게이밍 노트북 지금이 기회! 운영자 26/03/05 - -
AD 전설을 키우다, 창세기전 키우기 지금 시작하기. 운영자 26/03/10 - -
공지 언더테일 갤러리 이용 안내 [502/1] 운영자 16.01.27 175049 274
1242387 . 언갤러(118.235) 03.12 19 0
1242386 질문 [1] 언갤러(14.38) 03.11 59 1
1242385 ㅌㄹㅇ ㅊㅈㅍㅌ ㅂㄱㅉ [2] ㅇㅇ(125.185) 03.10 247 4
1242384 최근에 AU 공부했는데 [11] 언갤러(14.38) 03.10 116 2
1242383 저만 희망과 꿈 이라는 ost 좋나요? [3] Mitasid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100 4
1242382 이러고 밖에 나간적 있음ㅋㅋ [5] 며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9 438 3
1242380 샌즈의 비밀 [1] 언갤러(116.32) 03.08 154 2
1242378 한글판 코메디 번역 [1] ㅇㅇ(106.101) 03.07 179 6
1242377 의지 번역판 한놈들이 왜 불쌍하냐면 [2] ㅇㅇ(106.101) 03.07 202 0
1242376 언더테일 한글판 한 놈들은 다 경험 망친거임 [16] ㅇㅇ(106.101) 03.07 246 3
1242375 이겜은 진짜 샌즈가 존나 잘 만들었음 [8] 언갤러(1.242) 03.07 182 2
1242374 샌즈&파피루스 [2] 언갤러(211.235) 03.06 554 1
1242372 언갤 언제부터 망갤댐? [3] 언갤러(1.241) 03.06 178 0
1242371 노말 불살 엔딩 다 보고 몰살 샌즈까지왔는데 [1] 언갤러(1.241) 03.06 105 0
1242370 님들 이거 초기화 안된거임??? [2] 언갤러(218.53) 03.06 572 0
1242369 뭐야 이거 왜 한글이 없냐 [5] 언갤러(58.141) 03.04 158 1
1242368 예전에 그런 만화가 있었는데... 야인러(1.234) 03.04 116 2
1242367 델타룬 언텔 불살엔딩만 보고 해도 됌? [2] ㅇㅇ(221.158) 03.03 145 2
1242365 내가 진짜 네거티브 샌즈다 [9] ㅇㅇ(180.66) 03.01 220 0
1242361 아스리엘vs여섯인간 영혼 흡수한 아스고어 [1] 언갤러(220.88) 02.25 182 0
1242360 샌즈전 조작감 진짜 좆같네 너시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200 2
1242359 갤 활동하는거 보니깐 기분이 좋다 ㅇㅇ(45.112) 02.24 160 1
1242357 몰살하다 중간에 불살로 갈아탐 [1] 용팔이 헌터(175.209) 02.23 247 0
1242355 몰살루트는 샌즈의 오만함때문에 생김 [2] 익명(218.149) 02.23 245 1
1242354 언더테일 로켓굿즈 이거함 껴보고싶다 ㅇㅇ(45.112) 02.22 148 1
1242352 스팀 언더테일 몰살 초기화 질문 ㅇㅇ(118.235) 02.16 178 1
1242348 언더테일 101개 곡을 전부 듣는데 걸리는 시간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243 3
1242346 언더테일 덕분에 성공한 인생 살고 있네요. [6] 언갤러(175.210) 02.14 838 28
1242344 델타룬 히든보스 안 잡으면 안 좋음? [1] 언갤러(112.150) 02.10 298 1
1242343 여기 쓰는 콘 없음? [2] 절때아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0 338 0
1242339 근데 크리스 일행들은 왜 그렇게 강한거임? (스포) [1] 언갤러(116.46) 02.09 368 2
1242337 해외직구한 언더테일 굿즈 도착했다. [1] 호옹이(116.120) 02.06 498 23
1242336 뉴빈데 불사의 언다인 [2] 언갤러(175.209) 02.04 353 2
1242335 자꾸 튕기는데 왜이러는거임? 언갤러(222.232) 02.03 170 1
1242331 엔딩 순서 추천점 [1] 언갤러(180.229) 02.01 331 1
1242328 아 아스 차라 야설 있었는데 제목 뭐였더라 [1] 언갤러(49.237) 01.27 812 6
1242327 스포) 뉴비 질문 있어요 [1] 언갤러(121.142) 01.27 432 1
1242326 근데 여기 갤주 아직 여기 남아있나? [1] 언갤러(1.235) 01.26 379 2
1242325 아..언텔도 곧 있음 11년.. 언갤러(1.235) 01.26 231 6
1242324 아직 언텔 유튜버 남아있나.. [1] 언갤러(1.235) 01.26 408 2
1242322 불사의언다인 애미 뒤졌네 [1] 언갤러(211.235) 01.25 471 4
1242321 몰살에서 차라가 얻은 영혼이 프라스크의 영혼임 아니면 플레이어 영혼임? [2] 언갤러(121.176) 01.22 452 4
1242320 뉴비인데 [6] ㅇㅇ(58.121) 01.22 374 0
1242318 이거 30대가 해도 재밌나요? [3] ㅇㅇ(58.127) 01.21 431 0
1242317 불피루스 개어렵네 ㅇㅇ(180.66) 01.21 204 0
1242316 이 십ㄹ들 왜 한글화 안해주냐 [1] ㅇㅇ(116.36) 01.20 343 2
1242315 언더테일 공식한글패치가 있음? [4] ㅅㄷㅈㅆ(182.231) 01.19 3855 2
1242314 오늘 언더테일을 깼다 [1] ㅇㅇ(220.94) 01.16 365 2
1242311 인스타 댓글 달아 줄 사람 [1] 언갤러(222.103) 01.13 357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