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Longing, Heartache Love에서 이어집니다.
단편 Longing
단편 Heartache Love
단편 Pure-White 上 中 下

문득 아스리엘, 그가 눈을 떴을때는 은은하고 옅은, 하지만 결코 따스하지 않은 한기가 온 몸을 불쾌하게 간질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느끼던 것이었으며, 자신을 향해오는 당연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그였다. 프리스크의 만남 이후로, 이런 당연하게 자신을 반겨주는 매일 저녁마다의, 그리고 아침마다의 작은 한기가 조금씩 불쾌해졌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려는 생각에 실려진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 아스리엘 자신은 결코 '플라위'가 저질렀던 짓에 대해서 용납할 수 없으며, 그것을 절대로 잊어버릴래야 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럴 만한 위인도 못되는데다, 하루의 매 순간마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있어서 더 큰 죄악이란 없었다.
그것은 아마, 집에 대한 그리움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리스크의 따뜻한 품이, 그녀의 포근한 입술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두 눈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그녀의 얼굴이... 그녀를 바라볼때마다, 그녀와 매 순간을 함께하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윽고,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이따금 갓 구운 버터스카치 시나몬 파이의 맛있는 냄새를, 아버지가 가꾸는 정원의 화사함을 떠올리며 그리워지는 아스리엘이었다.
" ... "
두 눈을 껌뻑이며, 프리스크가 처음 떨어진 하늘을 쳐다보길 얼마, 그리고 다시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받쳤던ㅡ그리고 자신이 속죄로서 돌봐주고 있는ㅡ 꽃들을 쳐다본다. 멍한 표정으로 한없이 그것을 쳐다보다...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인다.
감정이란 것을 몰랐을 적의 플라위는, 이런 고통을 모르고 있던 것일까? 그렇기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에 가차없었던 것일까?
오늘따라 왠지모르게ㅡ항상 만나왔음에도ㅡ 프리스크가 더욱 그리워진다.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속으로 들끓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 아스리엘이었다. 그의 머리위로 삐죽 튀어올랐었던 털은 좀 더 풍성해져있었으며, 그 양옆으로는 작은 하얀 뿔이 돋아나있었다.
' ...빨리 와줘, 프리스크... '
그는 앉은 채로 무릎의 위까지 팔을 둘러 껴안듯 잡으며, 옆으로 몸을 뉘였다. 두 눈을 꽉-감고, 무언가 참으려는 표정으로 고개를 자신의 품 속으로 밀어넣듯 푹 숙이는 그 모습의 위로, 그림자로도 뒤덮을 수 없는 깊은 슬픔과 혼란스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듯 싶었다.
=====
방 안. 프리스크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었음에도, 쉽사리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 위로 배개가 놓여져 있음에도, 그 위로 자신의 팔배개같이 덧붙여 뒤통수를 갖다대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심란해보였다.
' ...아스리엘. '
그가 뭐하고 있을까, 내심 궁금해진 한편으로 그 쓸쓸한 곳에서 꽃을 지키며 혼자 찬 공기를 이불삼아 자면서 떨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애잔해진 그녀였다. 그녀가 몸을 틀자, 반바지로도 가릴 수 없는 봉긋하게 올라온 엉덩이와 쭉 뻗은 다리의 매끈한 선이 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침대에 눌린 봉긋한 가슴.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면 마치 ㅡ사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ㅡ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는 어린 여성 모델이 어두운 방 안을 배경으로 화보를 찍고있는 것일까 헷갈릴지도 모르리라. 그 만큼 그녀의 몸매가 그런 시츄에이션을 조성할 만큼 제법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흘러나오고 있는 그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프리스크 그녀는 심각하게 표정을 지은 채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스리엘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지금 뭐하고 있을까... '
자신이 누워있는 옆의 벽 너머, 아스리엘이 살고있었을 방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그것을 가려내면서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그 표면 위를, 한 번 쓰다듬어본다.
그녀가 지금 이렇게 어지럽혀진 기분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이유... 그것은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였기 때문이다.
인간계와 마찬가지로 지하세계에도 발렌타인 데이가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는 다르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준다라는 사실에 관해선 놀랍도록 똑같아 있었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소중한 가족에게,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전해준다. 그 애틋함이란 겉멋과 치장, 그리고 자기 뽐내기로 밖에 뒤범벅 되어 있지 못한 인간계의 발렌타인 데이에 비한다면 훨씬 깊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준다. 줄 사람이야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프리스크가 더욱 신경쓰고 있는 상대는 단 한 명이었다.
' ...아스리엘도 초콜릿을 좋아할까? '
그가 언젠가 지난번에, 자신에게 자기가 지하세계로 떨어지기 이전에 떨어졌던 아이인 '차라'에 대해서 얘기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아이는 그다지 좋진 못했고, 분명 자신의 친구였음에도 지금에서 바라본다면 자신에 비하면 많이 짖궂은 녀석이었다고. 그리고 아스리엘과의 재회 이후 사귀면서, 그 아이가 좋아했던 것은 초콜릿이라고 말한 것이 떠오른 프리스크였다. 그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라버린 이유, 아스리엘에게 있어서 초콜릿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초콜릿을 마냥 좋아하는 것은 아닐텐데- 라는 쓸데없는 고민이 생겨버린탓에 자신이 그에게 선물을 주면 반겨줄지가 걱정이 되었던 그녀였다.
' ... '
천장 위로 다시 시선을 옮겨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던 그녀, 뭔가 마음을 먹은듯 입술을 굳게 다물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평소에 신던 검은 니삭스를 신고, 이윽고 검정색의 부츠를 신는다. 그리고 오늘은 뭘 걸쳐 입을지 고민하는듯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갖다대고서는 둘러보길 얼마... 그냥 평소대로 샌즈가 자신에게 전수한(?) 하얀 털장식의 푸른 후드재킷을 걸쳐입기로 한듯 그것을 꺼내어 곧 바로 몸에 두르는 그녀였다.
방에서 나와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는 프리스크. 이윽고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머리칼을 정돈하는 것을 끝으로 마침내 복도를 나선다. 저 너머의 끝, 거실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엄마 '토리엘'의 반가운 모습이 비쳤다. 두집살림이라기에는 제법 긴 복도를 걸고 걸어, 거실로 들어선 프리스크였다.
" 어머나, 프리스크. 잘 잤니? "
" 네, 엄마. "
" 우리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선물을 준비했단다. "
그리고는 뒤돌아 무언가를 집어들고는, 프리스크에게 내보이는 토리엘이었다. 그녀의 큼지막한 두 손 위로 들려진 것은, 정성스럽게 포장된 하트 모양 상자였다. 금색 띠로 정성스럽게 묶여져 고급스러움이 더해져있었다.
" 짠! 엄마가 프리스크에게 주는 선물이야. 즐거운 발렌타인 데이 되렴. "
" ...고마워요, 엄마. "
" ...프리스크? 안색이 안좋아 보이는구나. 어디 아프니? "
" 아, 아니에요... 엄마... 그... 저어... "
" ?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수줍은듯 두 손을 꼼지락대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프리스크를 바라보는 토리엘. 왜 저러는 것일까? 큰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걱정되는 마음에 입을 떼려했지만, 선두권을 가져가버린 것은 프리스크였다.
" 어, 엄마... "
" 어... 응? 아가야? "
" 저... "
" 응, 말해보렴? "
" 초콜릿... "
" ? "
" ...만드는 법,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
" ...프리스크? "
" 엄마, 안되시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저 초콜릿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
그 말을 끝으로 잠시간 흐르는 정적과 어색한 기류... 애써 용기내 물어봤지만 괜히 물어봤구나 싶었다ㅡ라고, 프리스크가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 아가야. "
" ...네, 엄마. "
"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거니? "
" ...엄마...? "
" 언제 한번 데려와주겠니? "
" 에? "
" 걱정마렴, 그 아이를 혼쭐내거나 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니까. 요즈음 네 표정이 유달리 밝아보일 때가 많아서 기뻤는데, 프리스크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누군가라면, 나도 직접 만나보고 싶구나. "
" ...엄마. "
" 그나저나 프리스크 네가 연애라니... 그 아이, 많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야. 푸흣. "
" 어, 엄마아아아아...! "
" 히히히... 농담이야, 농담... "
토리엘은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프리스크를 한 번 꼬옥 끌어안았다. 프리스크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것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두팔 역시 그녀의 몸을 감싸안았다.
" 우리 아가가 사랑할 나이가 됬다니... 기쁘면서도 슬프구나... 그래도 이 엄마는, 네가 웃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기쁘다고 생각하단다. "
토리엘의 온화한 표정과는 달리, 프리스크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실린 표정으로 슬프게 두 눈을 떴다.
' ...엄마, 제가 사랑하고 있는 남자는... 엄마와 아빠의 아들이기도 해요... '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프리스크는 슬프게 마음 속으로 홀로 속삭였다.
=====
폐허 뒤 편, 프리스크는 보라색으로 뒤범벅된 바닥과 벽의 위로 도배된 함정들을 익숙하다는듯 능숙하게 피해나갔다. 그녀의 두 손에는 토리엘이 자신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은 금띠로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는, 자신이 만든 초콜릿이 담겨있는 상자가 조심스럽게 들려져 있었다.
' 초콜릿을 만드는 것도, 많은 정성이 필요한 거구나... '
모든 음식에는ㅡ레토르트 음식같은 것을 제외하고서ㅡ 정성이 들어간다는 토리엘의 가르침을 내심 되새기면서, 처음 만들어본 초콜릿을 빤히 내려다보는 프리스크였다. 토리엘은 맛있다며 칭찬을 해줬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찌할 바 없었는지 계속 긴장이 됬던 프리스크였다.
걷고 또 걷고... 기나긴 길을 지나오며 마침내 플라위를 처음만났던 그 공간이 너머에 있을 입구만이 남아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몇번씩을 반복하길 얼마... 침을 꿀꺽 삼키고 걸어가보는 프리스크였다. 전에는 이렇게 만큼 긴장이 안됬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선물을 건네준다'라는 무게감이 그녀의 두 어깨를 누르고 있어서 였는지 몰라도 상당히 진중해진 표정이었다.
" 이봐, 꼬맹아. "
" ...샌즈... "
프리스크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샌즈를 마주했다. 플라위가 있었을 그 위로, 지금은 사라진 그 존재를 대신하여 그 위에는 샌즈가 서있었다.
" 샌즈...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
" ... "
두 눈을 감고 미소를 짓고있는 샌즈. 그는 다시 두 눈을 뜨며, 프리스크를 똑바로 쳐다본다.
" 악취미로 보인다면 미안하다만 꼬맹아... 너에게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게 있어서 와봤어. "
" ... "
" 이봐 꼬맹아.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 때문에 나에게 불쾌하고 있을지, 아니면 네가 지금 들고있는 그것을 갖다줄 사람과 너와의 사이에 대해서 간섭할거라고 불안해하고 있을지는 너만이 알아. 나는 누군가의 감정따위를 읽어내는데에 빼어난 녀석이 못되니까. "
" 다... 알고 계셨군요... "
" ... "
" 다 알고 있으면서... 저한테 말해주지 않으셨던 거에요? 왜? "
" 꼬맹아. "
" 샌즈... "
"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뭐, 네 질책을 받아도 할말 없겠지만, 나는 나의 이유가 있어서 여기까지 와서 너를 찾아온 거야. 게다가... 내가 너를 안좋은 처지에 놓게 할 이유가 있겠어? "
그야 당연하다. 샌즈는 나를 항상 지켜왔으니까. 이따금 친근하게 '삼촌'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프리스크는 샌즈를 친구 이상으로, 가족으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지금 이 순간에, 샌즈가 아스리엘과 자신 사이의 문제에 간섭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그녀였다. 샌즈는 온화한 표정으로 윙크를 지어보이며, 능글맞게 미소를 짓는다. 프리스크는 한숨을 쉬며, 표정을 살짝 풀었다.
" 나는 네가 인상쓰거나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것보단, 미소를 짓는게 더 좋아보인단 말야. 그리고 그 녀석이 너를 미소짓게 하고 있어서... 나는 그 녀석을 신뢰하고 있다구. 그러니까 내가 그 녀석을 해친다라거나 너와의 관계에 훼방을 놓는다고 생각하지만 말아줬으면 좋겠어. "
" 그럼... 여긴 왜 찾아오신 거에요? "
" ...프리스크. "
그는 진중해진 표정으로 프리스크의 이름을 부르고는 한숨을 쉬었다.
" 지금 저 녀석이 너를 미소짓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을 수 없어. 가끔씩은 싸울 때도, 가끔씩은 서로 때문에 상처받을 때도 있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진심으로... 그 녀석을 사랑하기에 초콜릿을 가져다주는 거야? "
" ... "
" 나는 네가 꽃돌이랑 사랑하면서 받을 상처들에도, 계속 꿋꿋하게 그 녀석과 버텨나갈 수 있을지 물어보는 거야. 네가 그걸 갖다준다라는 것은... 아주 '골'빠지도록 중요한 일이라는 걸테니까, 그 확신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온 것 뿐이야. 이미 난 그 녀석에게서 확인을 했지만 프리스크... 나에게 있어선 너도 중요하니까, 물어보고 싶어 온 거야. "
항상 질나쁘고 유치한ㅡ그러나 웃을 수 밖에 없는ㅡ 농담을 내뱉는, 능글맞고 여유롭고 게으른 그 태도가 어떨 때엔 짜증나지만 정감이 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가족... 샌즈. 그는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고 있기에... 앞으로의 사소하고도 클 상처에 대해서 걱정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아스리엘과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응원해주면서도, 걱정이 되기에 확신하고 있냐고 묻고있는 것이리라.
" 샌즈... 아직 절 어리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전 아직 샌즈나 토리엘들에 비하면 어리니까요... 그래도... "
" ... "
" 그래도 전... 아스리엘을 사랑하고 있어요. 진심으로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받고, 서로가 싸울 때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때가 오게 될까, 저는 두려워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이 아예 없도록 해볼 거에요. 억지라고 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전... 그가 없으면 안되는 걸요. "
" 프리스크... "
" 샌즈... 저는 그와 함께 모든 역경을, 앞으로의 하루들을 헤쳐나가리라고 다짐했어요. 그와 싸울 일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고... 그리고 서로를 위하면서 싸우겠다고 했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샌즈... 하지만 저의 이 고백 만큼은, 진심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그래도 샌즈... 전 삼촌이 저희를 축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와 아빠에게 아스리엘에 대해 언제 얘기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때는 언젠가 오리라고 생각해요. 그 전에 샌즈... 이 모든 것을 알고있는 삼촌이 저희를 축복해주고 아껴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약속할게요... 아스리엘과의 사랑이 헛되거나 거짓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앞으로 그와 나아갈 하루들로 증명해보일게요. "
그녀의 말을 끝으로, 그 어떤 잡음도 허용되지 않는 고요함이 둘 사이로 스쳐지나갔다. 두 눈을 감고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샌즈... 그는 이윽고 가볍게 숨을 뱉어내며 프리스크를 쳐다보았다.
" 헤... 네가 의지로 충만해있는 아이라는 사실을 가끔씩 까먹는단 말야. "
" ... "
" 꼬맹아... 행운을 비마. "
" 샌즈. "
" 허? "
프리스크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떼어 샌즈의 코앞까지 다가온다. 여유로운 그 표정의 뒤로 조금은 긴장한 여력이 엿보이고 있는 그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는 그녀. 이윽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로 건넨다.
" ...제가 생각해도 안 어울리겠지만, 따로 먹는 거라면 괜찮다고 생각해서요. "
프리스크의 손에 들려진 것은 케첩통과 함께 묶여있는 초콜릿이 담긴 박스였다. 샌즈는 그것을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다... 이내 그것을 받아들며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 그래... 약속대로 '따로' 먹을게, 꼬맹아. "
" 샌즈... "
" 그럼 행운을 비마, 꼬맹아. "
프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그가 사라진 뒤였다.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원래의 목적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떼려할 때 즈음, 주머니로 묵직하고 낯선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린다. 주머니의 위로 툭 튀어나온 무언가를 꺼내보자, 리본으로 묶여있는 직사각형의 박스였음을 확인할 수 있던 그녀였다.
' ...샌즈. '
그 이름을 되내이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어보이는 프리스크. 그러나 그 표정은 매우 편안해보였다.
복도를 걷고 걸어... 아스리엘이 있을 그 곳에 다다른 프리스크. 역시나 꽃밭의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아스리엘의 안쓰러운 모습이 비쳐졌다. 프리스크는 안쓰럽다는듯 불편한 표정을 짓다, 다시 표정을 고쳐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나는 네가 인상쓰거나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것보단, 미소를 짓는게 더 좋아보인단 말야. '
샌즈의 말을 떠올리며, 프리스크는 미소를 짓는다. 억지로 만들어낸 웃음따위가 아닌 정말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윽고 아스리엘의 뒤편 가까이까지 다가가, 그의 뒤를 바로 껴안는다.
" ...프리스크. "
" 안녕, 아스리엘. "
" ...안녕, 프리스크. "
우울해져있던 아스리엘의 표정은, 많이 풀어졌다. 사랑하는 여자가 왔다는 두근거림과 기쁨으로, 마음이 조금씩 차올랐다.
" 오늘 또 우울해져 있었네, 우울한 염소 왕자님. "
" 아, 아냐...! "
" 거짓말 하지 마. "
프리스크는 아스리엘의 앞으로 몸을 옮기고는 그 두 어깨를 잡는다. 아스리엘은 당혹한 표정으로 진지한 표정의 프리스크를 마주했다.
" 아스리엘... 나는 네가 인상쓰거나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것보단, 미소를 짓는게 더 좋아보인단 말야. "
" ...프리스크... "
" 그리고 그래... 언젠가, 엄마와 아빠 곁으로 다시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고있어. "
" ... "
" 그러니까 아스리엘, 미소를 지어줘... 그리고 나를 껴안아줘... 너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
아스리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듯 보였다.
" 프리스크... 난... 이런 과분함을 받아도 될 지 모르겠어... "
" 넌 충분해. 나같이 까다로운 여자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단 말야. "
" 푸흣... 그래놓고 지하세계의 모든 괴물들을 친구로 만들었잖아. "
" 그건... 음... 어... 내 아량이 '뼛속까지'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거야. "
" ...프리스크... 너 정말... "
" 에? "
" 너 정말 너무 사랑스러워. "
이윽고는 아스리엘, 그는 참을 수 없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프리스크를 와락- 껴안는다. 프리스크 역시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며, 그의 목 뒤와 등 뒤로 자신의 팔을 부드럽게 둘러싸듯 감싸안았다.
" ...아스리엘. "
" 응, 프리스크? "
" 오늘부터 내가 너의 여자임을, 네가 나의 남자임을 확실히 해두고 싶은 선물을 가져왔어. "
" 어? "
프리스크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스리엘에게 가져다 주려 했던 상자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받고서는 멍청한 표정으로 두 눈을 몇번을 깜빡이며 내려다보는 아스리엘의 표정이 너무나도 귀여웠던 프리스크였다.
" ...해피 발렌타인 데이야, 아스리엘. "
" ...고마워, 프리스크. "
" 일단 말로만 고맙다 하지 말고, 뜯어봐 주겠어? "
프리스크의 말에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포장끈을 풀어 상자를 열어보는 아스리엘. 그 안에는 달팽이껍질 모양에서부터 조개껍질 모양 등으로 만들어져있는 하얗고 검은 초콜릿들이 에쁜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 ...이거 전부 다 네가 만든 거야? "
" 사실... 엄마가 좀 도와주긴 했지만... 응, 그렇다고 할 수 있어. "
" ... "
" 한번 먹어봐 줄래? "
아스리엘은 천천히 박스 안에 빼꼭히 들어있는 초콜릿 중 하나를 집어들어 입 안에 삼킨다.
" ...어때? "
이윽고 프리스크가 입을 벌리자, 그녀의 입술을 향해 자신의 것을 갖다댄다. 당황한듯 두 팔을 살짝 떨며 두 눈을 크게 벌린 프리스크. 그러나 이윽고, 두 눈을 천천히 감으며 그것을 받아들인다. 두 혀의 사이로 단단했던 초콜릿이 부드럽게 녹아든다. 그리고 서로의 입 안으로 초콜릿이 모두 녹자, 서로의 것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프리스크와 아스리엘. 둘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있었다.
" ...짖궂어. "
" 헤, 미안해... "
" 하지만... 좋아. "
" ...응, 나도... "
" 어때? "
" ...달콤해. "
프리스크와 아스리엘은 서로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서로를 향하여 초콜릿을 하나씩 집어들어 입 안으로 넣어준다. 그저 이런 행동만으로, 너무나도 큰 기쁨과 따스함이 차오르는 둘이었다.
화사한 노란 꽃밭의 앞. 서로 마주보고 앉아 웃고 떠드는 두 소년소녀의 얼굴 위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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