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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에 의한 역사발전의 시대는 가다

운영자 2009.03.25 11:11:39
조회 3002 추천 3 댓글 4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공산혁명이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역사발전을 촉진시킨 ‘업적’이나 ‘성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혁명의 와중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했고, 그것은 결코 ‘값진 죽음’만은 아니었다.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 역시 그래서, 그의 종교개혁운동이 기독교 발전사에 큰 업적으로 기록될진 모르지만, 신,구교간의 다툼의 와중에서 엄청난 숫자의 민중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야만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보다 내면에 잠복해 있는 사실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파국적 변혁이나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 톨스토이가 늙은 나이에 가출하여 객사한 것은 그의 휴머니즘적 고뇌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위선적 이중생활로 인한 자포자기적 자학과 수십년에 걸친 부부싸움의 결과였다는 것이 바로 좋은 예다. 톨스토이는 말하자면 위선적 도덕과 시혜의식으로 솔직한 본능을 억누르려고 헛되이 애쓰다가, 장기간의 소모적 투쟁에 지쳐 객사하게 된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인류의 문화를 ‘도덕적 초자아와 동물적 본능 사이의 투쟁의 산물’로 간주하여, 인류가 문화를 발달시키고 유지해나가는 한 그러한 투쟁의 부산물로서의 갖가지 불행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는 갖가지 콤플렉스들에 기인한 개인적, 사회적 ‘사고(事故)’, 즉 인재(人災)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작게는 한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범죄로부터 크게는 권력을 등에 업은 집단적 마녀사냥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크고 작은 ‘사고’들은 문명 또는 문화유지를 위한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본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악처를 둔 사람만이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문화적 창조를 위해서는 ‘악처로 인한 불행’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톨스토이의 부인이 악처로 소문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톨스토이의 문화적 업적 때문이었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문화적 업적은 대개 ‘동물적 본능에 대한 도덕적 초자아의 승리’의 결과로 간주되는 게 보통이었다.


  물론 악처와 살다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고뇌의 폭이 넓어지고, 그러한 체험이 철학적 사고를 풍부하게 하여 문화적 업적을 낳게 한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악처와 ‘참고 산다는 것’ 자체가 바로 솔직한 본성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위선적 ‘체면주의’가 합리화돼서는 안된다.


  악처라면 당장 버려야 마땅하다. 아니 ‘버린다’는 말조차 어폐가 있다. 악처 쪽에서 보면 남편 역시 악부(惡夫)일 것이기 때문이다. 속궁합이 안 맞든 겉궁합이 안 맞든, 부부생활이 짜증나면 무조건 갈라서는 것이 진짜 솔직한 철학자가 가야 할 길이다. 이젠 철학자든 문학자든, 그가 명예욕(업적)을 위해 성욕(쾌락)을 희생시켰다면 매섭게 비난받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모해가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대표적인 보기가 바로 소련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성장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의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소련의 붕괴가 그토록 빨리 닥쳐올 줄은 몰랐었다. 소련의 붕괴는 ‘철학적 이성에 대한 믿음’과 ‘역사발전의 도식(圖式)을 어느정도 가정할 수 있다는 확신’을 여지없이 무너뜨려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애써 부정하려 했던 인간의 동물적 욕구에 대한 이해를 급속도로 촉진시켰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이론 역시 수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됐는데, 마르크스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투쟁’에 의해 인류문명이 발전해간다고 본 것처럼 프로이트 역시 도덕적 초자아와 동물적 본능 간의 ‘투쟁’에 의해 인류문명이 발전해간다고 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는 ‘투쟁’ 자체가 갖는 의미가 무색해져버리게 되었고, 투쟁이라는 통과의례 없이 ‘잘먹고 잘 사랑하고 잘 놀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만이 모든 인류의 구체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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