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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 사고에 따른 문명과 원시의 ‘편의적 결합’

운영자 2009.02.26 11:33:01
조회 2592 추천 1 댓글 4

  이럴 경우 우리는 다시 한번 차분하게 ‘유연성 있는’ 사고를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자칫 빠져들기 쉬운 이분법적 사고, 또는 흑백논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명이냐 반문명이냐, 현대냐 원시냐, 지성이냐 감성이냐, 과학이냐 자연이냐 하는 식의 이분법은 겉보기엔 매우 명석해 보이지만 우리를 더욱 혼란스런 미망 속으로 빠뜨릴 수밖에 없다.


 인류의 운명이든 한 개인의 운명이든, 그것은 언제나 탁월한 혜안을 가졌다는 사상가들의 예상이나 점술가들의 예언과 전적으로 부합하여 전개되진 않았다. 예수는 자기가 죽은 후 얼마안 있어 곧 말세가 닥칠 것이라고 예언했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곧바로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명석한 철학자요 문명 비평가라고 할 수 있는 버트런드 러셀은 1950년에 발표한 ‘인류의 장래’라는 글에서,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류가 멸망하든지 ‘세계 정부’가 생기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러셀이 그 글을 쓴 것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였다. 그래서 그는 가공할 핵무기의 위력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전쟁무기를 독점하는 단일정부에 의한 세계통일이 이루어지든지 할 것이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그는 고대 로마가 무력에 의해 일정기간 세계평화를 실현시켰듯이, 초강대국(그는 미국을 의중에 두었다)의 힘에 의한 독재적 세계정부 건설과 세계평화가 가능하다는 시대착오적인 믿음을 가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가 끝나도록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핵무기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그대신 베트남전쟁 등 대리적 국지전이 많이 일어나 약소민족을 괴롭혔고, 미국이나 러시아 등 초강대국이 차츰 자중지란에 빠짐으로써 세계정부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단계에 와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세계는 지금 ‘문명과 반문명의 혼재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관찰이 될 것이다. 볼테르식의 지성적 문명국가가 선진국 형태로 존재하고, 루소식의 원시적 반문명국가 역시 아프리카 오지의 원시부락 형태로 존재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알기에 루소식의 개인주의에 기초한 반문명사회는 이젠 없다. 아무리 아프리카 오지라 하더라도 부락이 있으면 추장이 있어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사유재산제도와 관습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계몽주의자들이 갈망했던 합리적 지성으로 충만한 완전한 문명국가도 없다고 볼 수 있는데, 미국 같은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자국이기주의적 극우사상이나 종교적 편견, 또는 빈부격차의 증가 등에 따른 지성의 혼란상태가 사회 일각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는 지금 문명과 반문명의 혼재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 것은, 과학과 지성의 발달과 배치되지 않는, 그리고 관습적 사고가 아니라 개방적 사고에 따른 ‘반문명 상태’가, 현재 절대적 빈곤 상태를 벗어난 중, 선진국 사회의 일반대중들 사이에서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짐은 정치양식이나 문화양식에서보다도 생활양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성관의 변화와 결혼제도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의 인류는 루소가 말했던 것처럼 사유재산으로서의 ‘토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경작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무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한 곳에 정착할 필요도 없었고, 경작을 위한 집약적 노동력도 필요없어 가족이 필요치 않았다. 가족적 연대가 필요없으니 결혼제도 역시 필요없었다. 이리저리 떠돌며 자유롭게 섹스하고 자유롭게 먹이를 채취하며 살아가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보니 ‘자유’만큼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추울 때 먹이를 못 구하면 굶어죽거나 얼어죽기 쉬웠고, 혼자서 짐승을 사냥하다가 짐승한테 잡아먹히기도 쉬웠다. 그래서 차츰 한곳에 정착하여 경작을 하거나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효과적 노동력 창출과 사유재산보호를 위해 가족이 필요하게 되어 결혼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결혼제도는 곧 씨족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고, 씨족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씨족국가가 커져서 차츰 큰 규모의 국가로 발전했고, 국가의 지배자는 가족제도의 영향으로 인해 ‘아버지’의 상징으로 되었다.


 그러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 교통의 발달은 원시시대의 ‘자유로운 이동’을 감정적으로 재현시켜주었고, 농업 기술의 발달과 기계화에 따른 원활한 식량공급은 한곳에 정착하여 ‘가족적 연대감’에 의지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시큰둥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또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됨에 따라 여성들 역시 ‘노동력 창출’을 위한 출산의 의무로부터 한결 홀가분하게 되었고, 피임의학의 발달은 더더욱 자유로운 섹스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원시시대에 누렸던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향수가 거세게 고개를 들어 결혼제도를 서서히 무의미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이혼율의 증가만 눈에 뜨일 뿐 결혼제도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의 끊임없는 되풀이가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츰 프리섹스를 즐기는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왔다갔다하며 살아가거나 최소한 잦은 여행을 통해 생의 기쁨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국제화(또는 세계화)’라는 말에 부합되는 것인데, 한마디로 말해서 인류는 이제 문명상태를 한껏 즐기는 한편 원시적 성생활과 원시적 방랑생활을 함께 누리는 상태로 접어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관습적 사고는 한결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습적 사고는 과거지향 일변도의 사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제 과거지향적 사고(원시문화를 그리워하는)와 미래지향적 사고(과학문명의 발달추구를 위주로 하는)를 함께 포괄하여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단계로 접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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