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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냐 반문명이냐

운영자 2009.02.25 10:55:01
조회 2782 추천 1 댓글 3

 우리나라는 합리적 지성의 부재와 표현의 자유 제약면에서만봐도 여지껏 문화적 후진국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고급 문화인들일수록 더 봉건적 문화관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며 그들의 기득권을 챙기고 있어, 우리 사회를 보편적 상식이 부재하는 ‘목소리 큰자’ 위주의 획일주의 문화로 이끌어간다.


 그들이 갖고 있는 비합리성이나 무지가 어쨌든 근대 이전의 편협하고 관습적인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면, 아직도 문명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라는 견해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계몽주의적 역사관에 속하는 것인데, 어찌보면 개량주의적 견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국의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여 비합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면, 계몽주의적 역사관 또는 문명관에 대해 일단 입장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어쨌든 계몽주의는 ‘합리적 지성의 회복’을 들고 나온 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개화기 문화의 선두주자였던 춘원 이광수가 내세운 도덕적 계몽주의와 서구의 합리주의적 계몽주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광수의 계몽주의는 금욕주의적 설교와 유교윤리적 자성(自省)위주의 계몽주의였다. 즉 그가 주장한 ‘계몽’은 이율곡이 쓴 ‘격몽요결(擊蒙要訣)’이나 주자(朱子)의 ‘계몽도설(啓蒙圖說)’의 제목이 시사해주는 것처럼 수구적 봉건 유교윤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계몽’, 말하자면 님중을 훈도(訓導)하여 순치(馴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몽이었다.


 서구의 계몽주의는 베이컨으로부터 시작된다.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것이 힘이다”에 바탕하여, 볼테르를 비롯한 일군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지성의 발달에 의해 역사는 진보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 사상가로 장 자크 루소를 꼽을 수 있다. 루소는 지성발달에 의한 자연의 문명화는 오히려 인류의 비참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일종의 반문명사관(反文明史觀)인 셈이다.


 동양 역시 고대로부터 비슷한 대립상을 보인다. 비교적 낙관주의에 기초한 발전적 문명사관을 가졌던 동양의 대표적 계몽주의자를 꼽으라면 역시 공자와 맹자가 되겠고, 루소처럼 문명의 진보가 곧 인류의 불행으로 연결된다고 본 대표적인 사상가는 노자와 장자가 될 것이다.


 서구의 계몽주의 역시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말하자면 서구의 공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인 것이다. 서구의 노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에피쿠로스라고 할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나 공자가 지식과 절제를 중시한 반면 에피쿠로스나 노자는 본성과 쾌락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조직이나 법, 또는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들이 달랐다.


 내가 아는 한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치사하게 도망가기를 거부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죽음을 놓고 “악법도 법”이라며 그의 사형집행을 합리화시키려드는 법만능주의자들이 아직도 한국엔 많다. 이것을 만약 노자나 장자 또는 에피쿠로스가 안다면 바보 같은 궤변이라고 혀를 찰 것이 틀림없다. 글들은 늘 법만능주의나 도덕만능주의, 또는 국가권력만능주의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루소의 사상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교육소설 ‘에밀’을 지었을 만큼 어쨌든 일종의 계몽주의자였다(물론 그는 이성보다 감성을 중요시하는 다른 일면을 보였다). 그런데도 그가 원시적 자연 상태를 동경하고, 인류가 문명화된 세계를 일구어나감에 따라 불행을 자초하게 됐다고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주장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공동노동과 공동분배를 희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원시상태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지성발달의 결과물인 학문조차도 인간을 불행으로 이끈 주범이라고 ‘학문예술론’에서 주장하였다. 학문과 예술은 인간이 얽매어 있는 쇠사슬 위에 수놓아진 화려한 장식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루소에 의하면 학문이나 예술(즉 문화)은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압살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노예상태를 즐기게 한 장본인이고, 그러한 ‘즐거운 노예상태’야말로 문명인의 생활상태라는 것이다.


 노자도 루소와 비슷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긴 했지만 국가나 사회 또는 정치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을 이상적 국가 형태로 내세웠으므로 사실 완전한 반문명사관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럴 때 우리는 상당히 헷갈리게 된다. 우선 인간을 불운으로 이끄는 관습적 사고나 폐쇄적 사고가 합리적 지성의 미발달 상태에서 온 것이라고 보는 볼테르(20세기의 경우에는 버트런드 러셀) 등의 생각에 동조하자니, “그럼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라는 회의가 고개를 든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거의 미신에 가까운 관습적 사고나 편견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보다 지성이 발달한 구미 선진국가도 결코 예외는 아니어서, 광신적 종교집단이나 광신적 민족주의 사상 같은 것이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을 불행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소식(式)의 반문명주의에 무조건 찬동할 수도 없다. 어쨌든 인류는 지성에 의한 과학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웬만큼 잘먹고 잘살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워서이다. 나 역시 예전엔 헷갈릴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과학 발달이야말로 유일한 구제책(또는 운명극복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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