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맥주전쟁 -43-

김유식 2003.04.02 15:54:46
조회 4318 추천 0 댓글 0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3시 22분. 런던 소호. 차이나타운.   홍콩에서 건너 온 스물 네 살의 리지펭(李稚鳳)은 왕메이린을 흠모해 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직의 누구나 보스의 딸을 좋아했다. 그녀는 예쁘고 상냥했으며, 다른 고위 간부의 자녀들처럼 도도하거나 건방지지도 않았다.   리지펭은 왕메이린과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의 사부는 자오이와 시랭이 왕메이린의 경호를 맡도록 시켰다. 자신의 무술실력이 그들보다 특별히 약한 것도 아니었는데 보디가드에서 탈락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체구가 듬직하고 자오이와 시랭보다 잘 생긴 용모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이 원하던 좋은 기회였다. 사부는 아가씨부터 잘 모시라고 했고, 시랭의 비명이 들려왔으니 이번 기회에 왕메이린을 무사히 구해내면 보디가드는 바뀌게 될 것이었다. 잘 하는 영어도 못하는 것처럼 보여가며 그녀와 같이 학교 다닐 생각을 하니 절로 힘이 솟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검정색 가방을 든 두 사람이 문을 막고 식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큰 소리를 지르며 모두 함께 들어갈까? 아니면 자신만 슬쩍 들어가서 아가씨를 구해올까?   멋있어 보이기는 후자였다. 리지펭은 북적북적 소리를 내고 있는 다른 중국인 청년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시키고는 입구의 두 사람을 밀치고 고개를 내밀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리지펭은 몸을 옆으로 빼려고 했으나 두 사람 사이에 끼여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앞으로 나서던지 뒤로 빠져야 할 판이었다. 하는 수없이 그 자리에서 날아오는 물건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뜨거운 것이 온 몸을 덮쳐왔다. 리지펭은 한 순간 폭탄이 터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 소호는 특히 폭탄테러가 많은 곳이었다.   뜨거운 찻물은 리지펭과 그 옆의 프랑수아와 알렝에게도 쏟아졌고, 싸움을 구경하던 손님들과 미키 조직원들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뜨거움을 선사했다. 김도현은 던진 차주전자가 미키에게 제대로 맞지 않을 것을 알자 계속 던져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리지펭의 시선이 훤하게 뚫렸다. 주전자를 던지고 있는 괴청년의 옆에 왕메이린이 이마에 한 손을 기댄 채 앉아있었다. 그렇다. 저 녀석이 우리 아가씨를 잡고 있구나! 다가오지 못하도록 주전자를 던지고 있구나. 리지펭의 생각이었다.   순간 리지펭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양팔로 얼굴을 가린 뒤였지만 날아오는 주전자의 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새롭게 날아오는 주전자를 정통으로 맞고 리지펭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용기는 가상했지만 우습게도 주전자의 뜨거운 찻물은 그 용기를 차갑게 식혀버렸다.   리지펭의 비명까지 들려오자 계단에 몰려있던 중국인 청년들은 서로들 얼굴을 쳐다보더니 역시 큰 소리를 외치며 뛰어들어왔다. 자이오와 싸우면서도 누군가 김도현에게 덤비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최명규는 유형남에게 눈짓을 했다. 김도현을 보호하라는 신호였다.   미키는 더 이상은 화가 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아직 아물지 않은 자신의 얼굴에 자오이의 수도(手刀)와 주먹이 더해져서 피투성이가 된데다가 뜨거운 물  세례까지 받았다. 코는 자리에 제대로 붙어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아팠다. 건방진 한국의 야쿠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가 또 매만 맞은 것이었다. 무스타파가 붙여준 두 명의 사내들을 보기에도 창피했다. 그들도 외인부대 출신이라고 했다. 하물며 자신은 외인부대의 교관출신이 아니던가? 제4 외인연대의 명예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진흙밭을 헤치며" 라는 외인부대의 구호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진흙들은 깨끗이 쓸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 진흙 안에 최명규를 넣어야할 지의 여부는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았다.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3시 25분. 런던 소호. 차이나타운.   같은 시간에 프랑수아와 알렝도 미키와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무스타파는, 미키를 돕는 것은 좋으나 가급적 사건을 일으키지 말라고 못을 박아두었지만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자 생각이 바뀌었다. 시간을 오래 끌고 싶지도 않았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경찰이 오기 전에 일을 마치고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은 총기 사용에 대해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시끄러운 곳이었다. 특히 지난 '96년 토마스 해밀턴이라는 남자가 유치원에 난입, 어린이와 교사 16명을 쏘아 죽인 이후로 더욱 총기의 소지가 엄격하게 다루어졌다.   수많은 중국 청년들과 미키 조직원들, 최명규와 그의 동생들이 싸움에 가담했다. 서로 누가 적인지도, 왜 싸우는 지도 몰랐다. 리지펭은 김도현을 치라고 떠들어댔고 최명규는 자오이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도 청년들이 몰려갔다. 나머지 손님들은 앞을 다투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던 가운데 프랑수아가 가방을 열어 소총 한 정을 꺼내 들려고 하자 미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꿔챘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것이라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왔다. 미키는 '79년부터 프랑스군의 사용해온 FA-MAS를 가장 좋아했다. 외인부대원들은 좋아하는 무기가 있다면 아무 것이나 사용할 수 있다지만 미키는 입대했을 때부터 FA-MAS만을 써 왔다. 3.6kg의 육중한 무게가 손으로 느껴졌다.   "탄창은?"   "물론 채워두었지. 여분의 탄창도 이쪽에 들어 있소!"   알렝이 손가락으로 가방 안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키는 등을 돌려 소총에 탄창을 결합했다. 25발이 들어가는 탄창이었지만 탄알을 얼마나 채워 넣었는지는 몰랐다. 과거 외인부대원 시절에는 소총을 들어보기만 하면 탄알이 몇 발이나 들어있는지 척척 맞추었던 미키였다.   탄창을 끼우는 짧은 순간에 미키는 어떻게 할까 고심했다. 제일 죽이고 싶도록 미운 녀석은 어제 일대 일로 싸운 한국인이었지만 그는 지금 이 자리엔 없었다. 그 다음은 자신의 뺨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도록 만든 자오이와 김도현이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야쿠자는 무고한 사람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해 왔고 미키도 그러고 싶어했다. 이렇게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곳에서 총을 쏜다면 틀림없이 엉뚱한 사상자가 생길 것이었다.   미키는 노리쇠를 후퇴전진 시킨 후, 몸을 돌려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탕!   귀청이 떨어지도록 큰 화약 터지는 소리에 비디오 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이 눌려진 듯 난투극이 멈추었다. 그 큰 소리가 총소리라는 것을 파악하기 시작한 사람들부터 바닥에 낮게 몸을 움츠렸다. 모두들 몸을 낮추었지만 해운대파의 조직원들은 미키가 낸 소리임을 알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몸을 낮추지 않은 사람은 한 명 있었다. 김도현은 총소리가 들리자 바로 왕메이린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의자에 앉아있던 왕메이린을 안아 내렸고 미키를 향해 등을 돌렸다.   애초에 자오이를 향해 총구를 겨누려던 미키는 사선(射線)에 자오이와 최명규가 겹쳐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김도현이 대담하게도 총을 든 자신 앞에서 꼼지락거리자 총구는 그쪽으로 향했다.   총소리가 나기 이전부터 최명규는 암암리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오이와 싸우면서도 미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 온 그는 총소리 때문에 자오이의 공격이 사그러들자 가죽 재킷 안에 손을 넣어 손가락 사이에 세 개의 칼을 끼워두었다. 양손 도합 여섯 개의 칼 날리는 기술은 최명규의 전매특허였고 이는 한국의 폭력계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신기로 알려져 있었다.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3시 27분. 런던 소호. 차이나타운.   미키의 총구가 김도현에게 향하자 서너 명의 중국 청년들이 미키에게 달려들었다. 김도현과 왕메이린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수아와 알렝이 2층 입구 근처의 중국 청년들을 밀치고 퇴로를 확보한 순간 사방에서 빛이 난무하고 총성이 연발로 울렸다.   - 탕탕탕탕탕!   미처 미키 앞을 완전히 막아서지 못한 두 명의 중국 청년들 어깨에서 피가 터지고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총탄을 맞은 천장에서는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김도현을 향해 한 발만 쏘려던 것이었는데 소총의 탄알이 연발로 발사되도록 놓아두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미키는 한 동안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짧은 칼 하나가 박혀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안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똑똑한 우리말이었다. 김도현이 쓰러져 가는 왕메이린을 붙들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자신은 미키를 향해 등을 돌렸는데 어째서 왕메이린의 흰 원피스가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인지... 곧 그녀의 몸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탄공(彈孔)은 어딘지 몰랐으나 김도현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내며 넘쳐 나오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려 애쓰고 있었다.   '아차! 한 발 늦었구나!'   좁은 공간에서 울린 커다란 총소리에 짧은 시간이나마 정신을 잃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 상황을 파악한 최명규의 후회였다.   최명규의 칼 세 자루는 총구에서 불을 뿜는 순간에 그의 손을 떠났다. 싸움에 물러서는 법이 없는 최명규였어도 이런 협소하고 적이 많은 공간에서 총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바라던 상황이 아니었다. 히라타 구미를 통해 생긴 총 때문에 해운대파가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는 총에 심한 반감을 느껴왔다. 총이 있으면 그 외의 실력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대 일의 싸움이라면 절대로 지지 않고, 칼 한 자루만 있으면 혼자로도 나와바리 한 개를 접수할 수 있는 최명규로서는 총기 사용이 달가울 리 없었다.   세 자루의 칼 중 하나는 미키의 어깨에, 다른 하나는 미키 옆의 벽면에 가서 박혔고, 마지막 한 자루는 미키가 들고있던 소총을 쳐서 튕기고는 프랑수아의 눈썹과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 번째로 정신이 돌아온 자오이가 알 수 없는 큰 소리를 외치며 미키에게 달려들려다 멈칫 하고는 왕메이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른 중국 청년들은 동료 두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왕메이린이 다쳤다는 사실을 깨우치자 눈에 핏발을 세우며 미키를 노려보았다.   중국 청년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미키는 자신의 어깨에 박혀있는 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궁금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각목과 쇠몽둥이를 든 청년들이 한 걸음씩 더 다가오고 있었다. 곧 각목을 휘두르면 미키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미키는 침착하게 다시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성을 울리지 않았다. 0.07초마다 한 발씩 발사할 수 있는 FA-MAS는 순식간에 탄창의 탄알을 모두 소비하고 난 후였다. 당황한 미키가 뒤를 돌아다 본 순간 귀가 멍멍하게 연발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어느 새 프랑수아가 미키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소총을 꺼내어 쏘고 있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2층 전체에 또 빛이 현란하게 춤을 추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59 맥주전쟁 -58- 김유식 03.04.03 120661 47
58 맥주전쟁 -57- 김유식 03.04.03 13669 7
57 맥주전쟁 -56- 김유식 03.04.03 8680 1
56 맥주전쟁 -55- 김유식 03.04.03 7885 0
55 맥주전쟁 -54- 김유식 03.04.03 7117 0
54 맥주전쟁 -53- 김유식 03.04.03 6181 0
53 맥주전쟁 -52- 김유식 03.04.03 5862 1
52 맥주전쟁 -51- 김유식 03.04.03 5610 0
51 맥주전쟁 -50- 김유식 03.04.03 5334 0
50 맥주전쟁 -49- 김유식 03.04.03 4736 0
49 맥주전쟁 -48- 김유식 03.04.03 4812 0
48 맥주전쟁 -47- 김유식 03.04.03 4931 0
47 맥주전쟁 -46- 김유식 03.04.03 4581 0
46 맥주전쟁 -45- 김유식 03.04.03 4586 1
45 맥주전쟁 -44- 김유식 03.04.03 4634 0
맥주전쟁 -43- 김유식 03.04.02 4318 0
43 맥주전쟁 -42- 김유식 03.04.02 4621 0
42 맥주전쟁 -41- 김유식 03.04.02 4645 0
41 맥주전쟁 -40- 김유식 03.04.02 5102 0
40 맥주전쟁 -39- 김유식 03.04.02 9707 0
39 맥주전쟁 -38- 김유식 03.04.02 3056 0
38 맥주전쟁 -37- 김유식 03.04.02 2504 1
37 맥주전쟁 -36- 김유식 03.04.02 2564 0
36 맥주전쟁 -35- 김유식 03.04.02 2628 1
35 맥주전쟁 -34- 김유식 03.04.02 2683 0
34 맥주전쟁 -33- 김유식 03.04.02 2869 0
33 맥주전쟁 -32- 김유식 03.04.02 2582 0
32 맥주전쟁 -31- 김유식 03.04.02 2594 0
31 맥주전쟁 -30- 김유식 03.04.02 2426 0
30 맥주전쟁 -29- 김유식 03.04.02 5417 1
29 맥주전쟁 -28- 김유식 03.04.02 2244 0
28 맥주전쟁 -27- 김유식 03.04.02 2128 1
27 맥주전쟁 -26- 김유식 03.04.02 2006 0
26 맥주전쟁 -25- 김유식 03.04.02 2163 0
25 맥주전쟁 -24- 김유식 03.04.02 2122 1
24 맥주전쟁 -23- 김유식 03.04.02 2095 0
23 맥주전쟁 -22- 김유식 03.04.02 2270 0
22 맥주전쟁 -21- 김유식 03.04.02 1992 0
21 맥주전쟁 -20- 김유식 03.04.02 2902 0
20 맥주전쟁 -19- 김유식 03.04.02 2483 0
19 맥주전쟁 -18- 김유식 03.04.02 2587 0
18 맥주전쟁 -17- 김유식 03.04.02 2515 0
17 맥주전쟁 -16- 김유식 03.04.02 2546 0
16 맥주전쟁 -15- 김유식 03.04.02 3067 0
15 맥주전쟁 -14- 김유식 03.04.02 2614 1
14 맥주전쟁 -13- 김유식 03.04.02 2257 0
13 맥주전쟁 -12- 김유식 03.04.02 2439 0
12 맥주전쟁 -11- 김유식 03.04.02 2594 1
11 맥주전쟁 -10- 김유식 03.04.02 2681 0
10 맥주전쟁 -09- 김유식 03.04.02 2744 0
1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