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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47-

김유식 2003.04.03 16:35:22
조회 4933 추천 0 댓글 0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5시 20분. 런던 세인트 토마스 병원.   병원 복도를 지나면서 최명규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누군가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불과 5일 전 최명규와 미키는 이 병원에 침입하여 김창환을 살해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소호와 가까운 이 곳은 홍콩 14-K의 런던 조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이었고, 왕타이렌은 최명규와 김도현, 유형남 등에게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시해 두었다. 최명규로서는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유형남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고, 언어소통의 문제도 있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형남과 한양수는 심하게 다친 중국 청년들과 같이 응급 처치에 들어갔고, 별다른 상처가 없는 최명규와 김도현은 간단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왕타이렌은 또 있을지도 모르는 테러에 대비하여 런던의 조직원들을 모두 모아 병원 내, 외곽에 경비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였는가에 대해서도 아시아와 유럽에 퍼져있는 전 14-K 조직을 상대로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치료를 마친 김도현은 왕메이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몇 번이고 병원을 지키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물었으나 모두 모른다는 대답들뿐이었다. 낙담한 김도현은 유형남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잠시 후에 수술에 들어갈 예정인 유형남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김도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최명규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게. 치료가 끝났나보군."   "네. 별로 다친 곳도 없는데요."   최명규는 유형남을 한 번 쳐다보더니 힘든 표정으로 말했다.   "짐작하겠지만 우리는 한국의 조직폭력배들이야. 부산에서 왔지." 김도현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회사에서 출장 왔다는 건 거짓말이지. 미안하네."   "아닙니다."   최명규는 김도현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영국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세세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최명규의 이야기가 끝나자 김도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일본놈들을 도와 한국 사람들끼리 싸운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 온 첫날부터 들은 이야기가 그것이에요. 외국에 오면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라더군요. 한국인 등쳐먹는 사람들은 한국인들 밖에 없다고요. 물론 저...그냥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님께서 그러셨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데 전 왜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살아야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살면서도 아옹다옹 싸우고, 밖에 나와서도 또 싸우고.... 몇 년 전에 일어났던 LA 폭동사건 기억하시죠? 흑인과 멕시코 사람들이 코리아타운만 약탈했잖아요.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차이나타운에는 무서운 중국 마피아가 지키고 있고, 리틀 도쿄에도 야쿠자가 지키고 있어서 함부로 습격하지 못했던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LA의 한국계 갱들은 다른 민족들한테는 관대하고 한국인들 괴롭히고 등쳐먹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동족의 가게가 약탈당하는데 막아 주기는커녕 자기들도 같이 약탈했다고 하더군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직 사회 경험이 없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인지...집안에서는 싸워도 밖에 나오면 서로 돕는 것이 가족이라면 우리 한국 사람들도 외국에 나오면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요."   김도현이 이야기하는 동안 최명규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늘 최명규는 운이 좋아 총알에 맞지 않은 것뿐이지 자칫하면 자신도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애초부터 일본놈들과 손잡는 게 아니었어.'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 런던 세인트 토마스 병원.   "자네 친구는 괜찮은가?"   "시랭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가보려고 하던 참입니다."   "나도 같이 가지."   최명규와 김도현이 병실을 나와 시랭이 입원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거구의 시랭은 2인용 병실의 침대 두 개를 이어놓고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다친 곳은 부러진 발목과 몇 군데의 가벼운 총상이었다.   손님이 들어오자 어렵게 몸을 일으켜 앉은 시랭은 최명규의 얼굴을 보고 나서 얼굴을 돌렸다. 이유야 어찌됐건 자신의 발목은 최명규가 부러뜨린 것이 아닌가? 김도현이 다가가 다친 곳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한 번 물으려고 가까이 다가간 김도현은 시랭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왕메이린이 다치고 자오이가 죽자 사부인 후앙바이수(黃白水)는, 시랭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속상하기는 해도 참을 수 있었지만 왕메이린이 죽기라도 한다면 조직에 대한 자신의 죄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었다.   "아가씨의 상태는 어때?"   시랭이 '왕메이린'이 아닌 '아가씨'라고 묻자 좀 어색하다고 느낀 김도현이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거든."   -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김도현과 최명규가 문을 쳐다보자 리지펭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생긴 붉은 부분과 물집은 김도현이 던진 주전자 때문이었다. 순간 리지펭이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내밀며 앞으로 튀어왔다. 김도현과 최명규가 놀라 뒤로 물러섰다가 뒤에서 들리는 총성에 고개를 홱 젖혔다.   코끼리 같은 시랭의 몸이 침대에 걸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머리에 붙어있던 베개가 떨어지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권총이 드러났다. 리지펭이 침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시랭은 울고 있던 모습 그대로 죽었기에 눈물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왕메이린이 총에 맞고, 자오이가 죽은 것을 알았을 때부터 자살을 생각해온 시랭은 복수를 부탁하는 쪽지를 남기고 죽었다. 그 쪽지는 김도현 앞으로 남겨진 것이었다.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6시. 런던 킬번.   미키는 다소 횡설수설하면서도 그간의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보고했다. 한국의 맥주 회사 배후에는 한국의 야쿠자들뿐만 아니라 중국 조직도 개입되어 있다는 것과 형제의 의를 맺은 한국의 부산 조직은 배신자들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조직원 둘을 잃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 남은 자신과 조직원 한 명으로서는 도오야마의 부탁을 해결하기란 어림도 없으며, 그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추가로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이것은 한 번 결정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로 밀고 나가는 7대목의 성격을 알고 있어 하는 말이었다. 어차피 도오야마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하였으니 중도에서 그만 두지는 않을 7대목이었다.     '80년대까지 프랑스가 참전했던 전투에 파병되어 실전 경험이 적지 않은 미키였지만 그는 교관이었기에 실제로 적과 총을 쏘며 대치해 본 적은 드물었다. 오히려 지금의 전투가 매우 위험한 일이기는 해도 더 박진감 넘치고 스릴 있다고 느꼈다. 호전적인 성격의 그에게 앞으로는 더더욱 흥미로운 일이 전개될 예정이었다.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7대목이 지원을 해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고, 무스타파도 정예 킬러들을 더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차이나타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대대적으로 쓸어버린다면 한국의 맥주회사 정도는 꼬리를 말고 철수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잠시 후 알렝의 친구들이 들어오더니 맥주를 꺼내놓았다. 이들 역시 외인부대 출신들로서 불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틀림없이 자신에게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이들도 미키를 기억하는지 깍듯이 대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미키는 피곤함을 느꼈다. 맥주를 마시고 샤워를 한 후에 조금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명 남은 조직원에게는 옷가지와 구두 등을 사오도록 시켜 두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두 캔 째의 맥주를 마시며 미키는 새로운 병력과 무기가 오면 어떻게 차이나타운을 공격할까 구상했다. 적은 한낱 깡패들에 불과하지만 우리들은 어느 나라의 정규군보다도 더 가혹한 군사교육을 받은 외인부대 출신들이다. 우리가 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   맥주가 떨어지자 그는 빈 캔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도 친구들 사이에서 알렝이, 오늘 있었던 자신의 전과를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곳이었는데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거실과 제일 가까운 욕실의 문을 열어 보고는 미키는 손에 든 빈 캔을 떨어뜨렸다.        세 사람이 모두 욕조 앞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목이 졸렸는지, 잘렸는지 몸뚱아리에서부터 기묘한 각도로 꺽여 있었다. 알렝의 친구들이었다. 시체 하나는 다른 두 시체의 등 뒤쪽으로 기대어져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알렝일 것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집안은 정적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죽였는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지금까지는 알렝의 목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미키는 욕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주의 깊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돌리던 미키는 지금 이 순간 제일 반가운 것 하나를 찾아냈다. 알렝이 들고 다니던 검정 색 가방이었다. 그는 터질 듯한 긴장감을 누르며 살금살금 가방 쪽으로 걸어갔다. 가방을 들자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최소 세 정 이상의 FA-MAS 소총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가방을 들고 그는 베란다를 등지고 섰다. 여기는 아파트 7층이므로 엘리베이터나 층계가 있는 현관보다는 안전하리라는 계산에서였다. 베란다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미키는 가방의 지퍼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플라스틱과 철제로 이루어진 FA-MAS 소총의 단단한 감촉을 기대하고 있던 그의 손에 물컹하고 기분 나쁜 것이 잡혔다. 의아해진 미키가 가방을 활짝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뒤로 속이 울렁거리며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방 안에 들은 것은 알렝의 머리였다. 미키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 흐흐흐흐!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와 있었는지 검은 색의 중국 전통 복장을 한 사내가 거실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사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베란다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겁에 질린 미키는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좁은 베란다에서는 더 갈 곳도 없었다. 검정 옷의 사내가 몇 걸음 더 앞으로 다가왔다. 미키의 머리 속에 아까 욕조 앞에서 목이 꺽여 죽어있던 알렝의 두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7층이지만 뛰어내린다면 6층이나 5층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미키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난간을 잡고 점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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