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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48-

김유식 2003.04.03 16:36:04
조회 4814 추천 0 댓글 0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6시 16분. 런던 킬번.

  알렝이 일러준 대로 킬번 하이 로드의 시장과 막스 앤 스펜서에서 옷가지와 구두 등을 사들고 오던 고이즈미는 조장이 바뀌자마자 별 일을 다 겪는다며 불평했다. 몇 일전만 해도 도쿄에 있는 폭력단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교토로 오게되었고, 또 지금은 런던으로, 최근 몇 일 동안을 아주 정신없이 보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런던에 오던 날을 포함해서 세 번씩이나 한국의 싸움꾼에게 매를 맞았는가 하면 오늘은 총에 맞을 뻔한 위기도 겪었다.

  
  고이즈미는 알렝의 아파트를 못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비슷비슷한 모습의 아파트가 여러 채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7층 어디였더라? 한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던 고이즈미에게 3일간 생사를 같이 해 온 조장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반갑다는 생각도 잠깐뿐, 조장은 난간에서 버둥거리다가 아파트 아래로 추락했다. 고이즈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을 질끈 감은 고이즈미의 귓가에 육신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장이 떨어진 곳까지는 20초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두려웠다. 위를 올려다보니 한 사람이 베란다에 서서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호의적인 인물은 아닐 것이었다. 여기서 조장에게 달려간다면 자신에게도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느낀 그는 눈에 띄지 않도록 천천히 역을 향해 걸었다. 조장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었고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갈 곳이 없어진 고이즈미는 15분 후, 킬번 역 근처의 공중전화기에 매달려 흐느꼈다. 도쿄의, 이제는 조장이 죽어버린 미키 구미의 다른 조직원들과의 통화였다. 미키의 사망 소식은 곧 교토의 히라타 구미 본가에도 전해졌다.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6시 20분. 런던 세인트 토마스 병원.

  "얘들이 어딜 가서 이렇게 안 오지?"

  "제가 가서 찾아보지요."

  "같이 가자."

  이광혁과 김응진이 병실 문을 나섰다. 응급실을 구경 간다던 이승영과 백준영이 돌아오질 않자 찾으러 나온 것이었다. 1층을 향해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추어 섰다. 여러 사람이 탔는데 그 중에는 두 명의 동양인도 끼어 있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을 알아본 이광혁이 반갑게 불렀다.

  "자네, 도현 군이 아닌가? 여기는 웬일이지?"

우리말로 부르는 소리를 듣자 두 명의 동양인이 같이 돌아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김도현의 옆에 서 있던 최명규는 이광혁을 쳐다보고 크게 놀랐다. 그것은 이광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선배님 아니십니까? 여기 웬일이십니까?"

  "아우님이 아닌가? 정말 여기는 무슨 일로?"

  네 개의 눈빛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한국에서도 웬만하면 서로 마주칠 일없는 두 사람이었다. 잠시 서로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명규는 기분이 착잡했다. 한국 맥주회사의 사주를 받고 폭력을 휘두른 것이 이광혁의 신목포파란 말인가? 그렇다면 김재수를 죽인 것도 그란 말인가? 최명규는 재빠르게 사태를 파악하였지만 이광혁으로서는 작년까지 같은 교도소의 같은 사방에서 복역하던 최명규가 왜 이곳에 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어렵게 최명규가 입을 열었다.

  "아우님이 명성맥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이광혁은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최명규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이광혁은 그의 질문을 무시한 채 딱딱한 어조로 되물었다.

  "혹시 선배님이 저희 형님께 총을 줬습니까?"

  "응? 유 선배님께서 총을 맞으셨는가? 나는 모르는 일이네."

  최명규가 유정후를 죽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 이광혁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는 거짓말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저와 제 동생들은 명성맥주 때문에 이곳에 와 있습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음...그렇군. 아우님이었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췄다. 최명규는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바쁘지 않으시면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저는 도현 군과도 구면입니다."

  김도현이 동의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명규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지만 사양했다.

  "아닐세. 우리는 가보아야 할 곳이 있네. 아우님 연락처가 있다면 알려주게."

  왕타이렌은 최명규와 김도현이 치료를 마치고 차이나타운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그리로 가려던 중이었다. 이광혁이 종이를 꺼내어 묵고 있는 곳의 전화번호와 휴대전화기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헤어지기 전 이광혁은 생각났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있는 최명규에게 급하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히라타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알고 있네. 같이 일하고 있어.'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최명규는 김도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없네."라고 대답했다. 문답이 또 이어졌다.

  "유 선배님이 히라타 사람에게 총을 맞으셨는가?"

  "네. 히라타 조직의 호시노라는 사람이라더군요."

  두 사람은 눈빛으로 대화가 끝이 났음을 알아차렸다. 최명규는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여기서 접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8시 10분. 런던. 레스터 스퀘어.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똘똘해 보이는 중국 청년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뭔가?"

  "13일, 일요일에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들이 히라타 구미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간부들인지는 파악되지 않습니다만 야마구치 구미의 벤츠 일곱 대가 히라타 구미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히라타의 조장이 직접 나와서 영접했다는 소식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왕타이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곱 대의 벤츠가 히라타 구미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도오야마가 한 개의 산하조직을 이끌고 야마구치의 벤츠를 빌린 후 히라타의 7대목을 만나러 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왕타이렌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홍콩 삼합회의 대표격인 14-K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대만의 사해방은 십 수년 전부터 일본 최대의 광역폭력단체인 야마구치 조직과 형제의 의를 맺고 있었다. 이들의 끈끈한 교류는 '96년 2월에 있었던 사해방의 보스 천융허(陳永和)의 장례식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시 야마구치는 고위 간부 중의 한 명인 노구치 마츠오(野口松男)와 함께 100명도 넘는 조문단을 보냈다.

  스무 명에 달하는 조직원이 총에 맞아 죽고, 딸이 사경을 헤매고 있자 왕타이렌은 짐작을 사실로 단정해 버렸다. 사해방은 형제 조직인 야마구치 구미에게 런던 차이나타운을 테러하도록 사주했고, 광역폭력 조직인 야마구치는 이를 히라타 구미에게 맡겼다는 것이 그의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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