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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법원

운영자 2017.09.04 1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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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법원

  

얼마 전 몇 명의 변호사들이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중 좌장이 되는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대한변협회장을 했던 친구한테 말을 들었는데 요즈음 법조계의 세태는 법원의 이념화, 검찰의 무력화, 변호사의 사기화라고 하더라구. 이념화된 판사들은 먼저 결론인 주문을 결정해 놓고 그 다음에 이유를 쓴다고 하더라구.”

아침신문에 특이한 한 기사를 봤다. 사십대 판사가 법원게시판에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개개의 판사들 저 마다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등을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쓴 내용이었다. 그 정치적 성향에 대해 나는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다만 몇 년 전 대한변협이사회에서 사회를 보던 회장이 지금 판사들도 좌우로 갈려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던 말이 떠오르는 정도다. 변호사를 오랫동안 해 왔지만 나는 사람들을 좌우로 가르는 사회에서 좌우개념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때그때 기도하고 양심이 시키는 대로 결정을 해 왔다. 좌우라는 그럴듯한 정치적 성향보다는 그 껍질 속에 들어있는 출세주의 권력욕을 보곤 했었다. 1974년 반독재투쟁을 한 학생들이 기소되어 법정에 섰었다. 담당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렇게 변론했다. 

“법률공부를 한 게 후회가 됩니다. 그 이유는 변호인인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법이 권력의 시녀, 정치의 시녀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학생들 사건을 맡으면서 법은 정치의 시녀, 권력의 시녀라고 단정하게 됐습니다. 지금 검찰은 나라의 일을 걱정하는 학생들을 국가보안법위반의 빨갱이로 몰아치고 사형을 구형하고 있으니 이는 법을 악용하여 저지르는 사법살인일 것입니다.”

그 변호사는 며칠 후 법정모욕죄로 구속됐다. 그리고 징역10년을 선고받았다. 그 변호사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처럼 당당하게 할 말을 한 것이다.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변론권의 행사였다. 대법원은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십년동안 그 변호사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았다. 이 나라 최고법원의 비겁함이다. 그들은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보신을 위해 정치의 시녀가 됐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재판을 대법원에서 하고 있었다.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의 군맥과 참모총장인 정승화의 인맥이 시가전까지 불사하면서 부딪치고 있었다. 전두환 측이 승리를 거두었다. 김재규를 내란목적살인으로 만들어야 정승화세력에 대한 제거명분이 될 수 있었다. 권력 측은 대법원에 김재규를 내란목적살인 쪽으로 몰아 조속한 사형확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담당 대법관들의 운명이 그 사건으로 갈렸다. 협조한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됐고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모두 축출됐다. 법은 계속 정치의 시녀였다. 그 후 20년이 지나지 않아 김영삼 정권이 탄생하자 김재규를 내란목적살인죄로 사형을 하라고 대법원에 압력을 가했던 권력자가 이번에는 그 자신이 군사반란죄의 주범으로서 기소가 되었다. 청와대에서는 수시로 담당재판장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전두환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김재규 때처럼 전두환은 죽을까봐 겁을 먹었다는 소리를 측근으로부터 들었다.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당시의 판사와 검사를 권력의 허수아비로 욕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사법부가 보여준 용기 없는 모습들이었다. 두고두고 사법부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세상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에 대한 근본 인식이 바뀌고 있었다.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였다는 소리가 들렸다. 친일파와 지주가 세운나라라고 했다. 친일파척결의 광풍이 불었다. 오래전 죽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파헤쳐져 인격살인을 당하고 있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결정하는 위원회들이 생기고 그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소급입법이 제정됐다. 국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 중에는 이렇게 헌법에 위반되는 소급입법을 만들어 국민들의 재산을 박탈해도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는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구체적인 개인의 권리는 법원이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법원의 판사들은 대부분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완장을 찬 위원회의 편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정치적 격류 속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방파제가 될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 법조문만 공부한 판사가 중심 잡힌 역사의식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나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법관이 마음 속으로 네 편 내편을 가리고 판단하는 걸 분명히 감지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고 구조조정과정에서 경상도출신 관료가 대폭해직 된 경우가 있었다. 그 취소소송의 소송대리인이 된 적이 있다. 전라도 출신 판사를 만나면 그 눈빛에서 몇 초 걸리지 않아 재판에 질 것을 예감했었다. 그 예감은 지금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판사들이 좌우만이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갈려 있었다. 인천의 한 판사가 재판이 정치라고 하면서 개개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차라리 솔직한 면이 있다. 얼마 전 서울중앙지법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하는 걸 막았던 경찰서장과 경비과장에게 손해배상판결을 선고했다. 다른 정권에서도 이렇게 판결했을지 의문이다. 민노총 불법천막을 철거했던 구청공무원들이 직권남용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들이 기소가 될지 어떤 판결을 받을지 궁금하다. 법관은 시대의 격류에서도 묵직한 중심을 잡는 닻이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돛이 되려고 하고 있다. 승진에 목을 맨 오합지졸들도 많다. 정치성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양심과 법에 따라 재판을 하는 판사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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