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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함정 1 - 삼류 조서문학

운영자 2018.04.16 10:07:15
조회 238 추천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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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조서문학

  

존경하는 대법관님,

  

대법원에 대해 변론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예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 어느 영감이 자기의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은근히 옆집 남자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말하는 것도 도둑놈 같고 행동하는 것도 도둑놈 같았습니다. 그는 도끼를 찾을 때까지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게 우리보통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를 말씀드리죠. 한밤중에 산길을 가던 사람이 썩은 새끼토막을 밟았습니다. 뭉클 하는 느낌에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간 그는 새끼토막을 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뇌리에는 길바닥에 늘어져 있던 뱀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에게 그게 뱀이 아니었다고 납득을 시키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어쩌면 거의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변호인인 제가 이런 예화를 먼저 드는 것은 검사의 이 사건에 대한 화석같이 굳은 인식 때문입니다. 검사는 대학 강단에서 평생을 보내고 또 목사이기도 한 교수를 양의 탈을 쓴 여우같은 사기범으로 봤습니다. 검사의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그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기범으로 징역을 보내는데 필요한 자료만을 골라 증거로 삼고 공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중형의 유죄판결을 받아내 감옥으로 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그랬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변호인은 뒤늦게 감옥에서야 사기범이 된 교수를 만났습니다. 일단 사기범이라는 의심을 한쪽에 품으면서 이리저리 사건의 배경을 살펴 보았습니다. 거기서 내린 추정은 한 기업사냥꾼이 악마변호사들이 득실거리는 로펌과 영혼이 빠진 기계적인 검찰과 야합하여 한 인간을 날려버리려고 한 광풍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방대한 수사기록은 정의가 아니라 한 선량한 인간을 함정으로 빠뜨리기 위한 삼류 조서문학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이 생사람을 잡기 위해 만드는 조서들은 허구의 싸구려 소설에 불과합니다. 검사는 한 인간을 사기범으로 내심 단정하고 사건의 스토리를 구성했습니다. 유죄의 증거가 된 증인들은 검사와 그 배경의 어둠속에 있는 존재들이 캐스팅한 배우들입니다. 몇몇 증거서류들은 그들이 한 인간을 감옥에 보내기 위한 장치이거나 소품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의 재판은 진실을 향해 변증법적인 구조로 전개 되게 되어 있습니다. 변호인은 그 반대의 시각에서 이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가 법의 함정에 빠진 억울한 피해자는 아닐까. 거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그를 감옥으로 보낸 역할을 한 증인들이 정말 진실을 말했을까? 모략과 거짓말들을 한 것은 아닐까? 역으로 증인과 증거들을 의심하면서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소설 같은 변론서로 만들었습니다. 일심에서 검사의 조서문학이 승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변호인의 변론문학이 이겨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법원에서 검사와 변호인의 세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사는 상고이유서에서 여전히 그가 사기범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강직한 형사의 인식 그대로입니다. 그가 한번 범인으로 찍으면 범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변호인은 이제부터 처음 사건을 맡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소설같이 쓸 예정입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허구는 없음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이제 그 문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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