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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함정 15 - 전문가의 증언

운영자 2018.04.30 09:41:17
조회 168 추천 0 댓글 0
8월 25일 고등법원 형사법정으로 올라가기 위해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낯이 익은 듯한 오십대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 남자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 고개를 꾸벅했다. 문요셉 교수였다. 다른 교수들과 나의 사무실에 왔을 때 본 적이 있었다. 문요셉 교수는 학자적인 소신이라고 할까 고집이 강한 것 같았다. 변호사나 검사에게 휘말리지 않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아는 것만 소신을 가지고 증언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사건의 쟁점에 적합한 증언을 해 주어야 하는데 걱정이었다. 과학자이고 교수라는 사람들은 모든 걸 자신의 관점에서만 보는 면이 있었다. MIT를 나온 토라의 기술이사 추영석도 어쩌면 그 비슷한 관점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 그가 재판장 앞에서 선서를 하고 증언석에 앉았다. 내가 그를 보면서 묻기 시작했다.

“심현기 교수는 롤투롤 플랫폼 분야의 전문가가 맞습니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고 조금은 간격이 있는 대답이었다.

“롤투롤 플랫폼은 어떤 기술인가요? 예를 들면 컴퓨터나 핸드폰 내부의 전자회로기판을 생산하는 전자인쇄기술이 아닌가요?”

“말씀하신 제품 전체를 롤투롤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고 부품 일부는 롤투롤로 만드는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의 말투 속에서 나는 ‘너에게 순순히 끌려들지는 앉아’하는 것 같은 그의 의식을 희미하게 감지했다.

“ALD는 롤투롤 플랫폼 위에 얹는 방수공정이 아닌가요? 어떻습니까?”

그가 전공인 기술을 보조공정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롤투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 있겠죠.”

나는 변호인 석 위에 놓았던 일심의 판결문을 들어 그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여기 판결문을 보면 ‘롤투롤 ALD시스템’이라는 용어를 결합해서 쓰고 그 시스템에 대한 특허가 있는 것처럼 심교수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롤투롤에 방수공정인 ALD를 얹은 걸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 결합하는 걸 매칭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전자회로를 만드는 데는 기본공정인 롤투롤위에 여러 기술공정이 필요에 따라 얹히기도 하는데 방수공정은 그 중의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증인은 심교수가 사우디의 국영화학회사에 제안서를 제출한 사실을 알고 있죠?”

“제안서를 작성할 때 심 교수와 기술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우디의 회사가 롤투롤 장비개발을 요청했고 저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조언을 했습니다.” 

“일심판결문을 보면 토라가 사우디의 회사의 요청에 응할 기술력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요?”

“그런 표현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죠?”

“네이버를 검색해 보시면 심현기 교수는 롤투롤 플랫폼 공정의 연구 및 기술에 관해서 그 분야의 국제적 표준화에 참여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최고의 전문가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아직 국제표준화위원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증인은 토라의 기술이사 추영석을 알죠?”

“알고 있습니다. MIT 박사라고 얼핏 얘기 들었는데 토라의 다른 연구원들처럼 능숙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전문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추영석이라는 사람은 토라가 ‘기술력이 전혀 없는 회사’라고 증언했는데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 말에 대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설사 추영석씨가 전문가라고 해도 그런 표현을 쓰면 안되죠.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기술력이 없다고 명확하게 얘기해야 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기술력이 없다고 하는 건 전문가다운 얘기가 아닙니다.”

“일심판결문은 롤투롤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ALD기술이 필요하다고 쓰고 있는데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고도의 어려운 작업이 아닌데요?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심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롤투롤 ALD 시스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롤투롤 기술이 없다는 것인지 ALD 기술이 없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유하면 자동차라인에서 본체를 만들고 나중에 방수공정으로 도장작업을 하는데 도장을 외부에 하청을 주거나 협업을 했다고 자동차제조기술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심판결문을 보면 심현기 교수의 롤투롤 플랫폼 기술에 대해 있어도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어떤가요?”

“그건 너무한 말씀이구요 . 심교수의 회사 토라는 국가과제인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 지원대상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나는 주신문을 마쳤다. 기술이사였던 추영석의 일심증언을 흔들어 놓는 데는 성공한 느낌이었다.

“검사 반대신문 하시죠”

재판장이 검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검사가 자리에서 증인을 보며 묻기 시작했다.

“롤투롤 기술은 심현기 교수 개인이 개발한 게 아니라 대학교 산학협력센터의 소속원의 지위에서 한 게 아닌가요?”

“같은 대학교수인 저의 경우는 모든 연구 활동의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은 대학에서 가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롤투롤 기술은 심현기 교수에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논리가 아닌가요?”

“심현기 교수는 벤쳐회사인 토라의 CEO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저와 다를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모르겠습니다.”

“만약 증인이 회사를 만들어 그 기술을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대학으로부터 특허권을 다시 양도받아야 하지 않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발명자인 제가 그걸 가지고 무슨 사업을 하겠다면 돈 내고 쓰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규정이 그렇습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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