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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 들에게

운영자 2017.03.10 14:54:21
조회 245 추천 0 댓글 0
군에서 제대한 조카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몇 년간 고시원에 묵으면서 시험에 응시해도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공직이 인기인 것 같다. 안정되고 연금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장점이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 후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는 친구들은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방학이 있고 노후에는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런 안정이 정말 삶에서 순위 일번을 차지하는 제일 중요한 것일까. 장교생활 5년을 마친 후 삼십대 공무원생활을 얼마간 했었다. 나의 경우는 성격상 조직생활이 맞지 않았다. 아침마다 하는 지루한 회의도 싫었고 목줄을 쥔 상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진심이 담기지를 않았다. 사회성도 부족해서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유지도 쉽지 않았다. 인내심도 부족했다. 나는 냉정하게 자신을 관찰했다.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정했다. 경주마가 되어 트랙을 달리는 걸 포기하고 초원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사표를 쓰고 나와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나의 작은 사무실은 나만의 성전이고 자유가 충만한 공간이었다. 조직을 배경으로 한 ‘갑’의 위치에서 ‘을’내지 ‘병’의 위치로 바뀌었다. 갑의 무시와 조롱이라는 댓가를 치를 각오를 했다.


 재미삼아 백번까지는 수모를 참는 훈련을 하겠다고 작정하고 당할 때마다 공책에 적어 나갔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내심을 키우고 그게 진짜 수모인지 반성해 보기 위해서였다. 수입도 불안정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 하나님이라면 일용할 양식정도는 주실 것으로 굳게 믿고 금전출납부를 쓰지 않았다. 그건 불안의 요인일 뿐이었다. 


행복해지려고 하니까 불행해 진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음악을 듣기로 했다. 이따금씩 일거리가 들어오면 놀이같이 즐겁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구에 소풍을 온 나의 영혼이 가급적인 많이 보고 되돌아가고 싶었다. 틈틈이 보던 성경 한권이 든 배낭을 메고 세계를 흘러 다녔다. 기차를 타고 눈덮인 자작나무 숲이 울창한 시베리아대륙을 횡단했다. 평택에서 LNG선을 얻어 타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동중국해를 건너기도 했다. 돈황과 우루무치의 사막을 건너기도 하고 히말라야의 계곡을 떠돌기도 했다.


 내가 신으로부터 허락받은 시간 속을 흐르다 보니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젊은 시절이나 노인으로 들어서는 지금이나 나는 똑같은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는 변호사다.


 주위를 둘러봤다. 젊은 시절 동료였던 많은 친구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경찰의 총수가 되기도 하고 장관이 되기도 했다. 대법관이 되기도 하고 국회의원도 여러 명 됐다. 그런데 이상한 건 성공한 친구들일수록 더욱 갈증을 느끼고 불행해 한다는 사실이었다.


 장관을 지냈던 친구는 청와대에서 그만두라고 해서 나온 후 몇 개월 동안 가슴에 꽉 찬 울화를 풀 수가 없어 매일 골프장에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경찰총수나 대법관을 지내고 나서도 또 다른 자리를 얻기 위해 사다리 끝에서 날개를 활짝 펴려다가 곤두박질 치기도 한다.


 그만큼 했으면 자연인으로 돌아오는 것도 괜찮을 텐데 관직에서 바로 무덤으로 가고 싶은 것 같았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대접받던 버릇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탈감과 공허를 이기기 힘들어 한다. 높으나 낮으나 지위라는 건 잠시 걸쳤다 벗는 옷에 불과한 게 아닐까. 


공무원시험공부를 하는 조카에게 말해주고 싶다. 경전 한권을 등짐 속에 넣은 채 노동을 하는 투박한 손을 가진 순례자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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