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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설교자’보다 ‘위대한 놀이꾼’이 필요하다

운영자 2009.03.26 15:51:12
조회 3888 추천 6 댓글 5

  투쟁에는 반드시 피해가 따르게 마련이다. 어떤 명분으로든 피해 자체가 미화될 수는 없고, 정신적 행복보다 물질적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점차 대중들을 사로잡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계 인류는 이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인류의 보편적 의식이 이렇게까지 바뀌게 된 까닭은 역시 기술혁신과 의학발달에 따른 가치관의 획기적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혁신은 고전적 의미의 ‘노동’이 갖는 종교적, 도덕적 가치를 평가절하시켰고, 피임의학의 발달은 생산을 위한 성이 갖는 경건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위선적 지배엘리트들을 제외한 솔직한 민중들 사이에서는, 일하는 것이 노는 것보다 덜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정신적 사랑 역시 육체적 사랑보다 덜 가치 있게 여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톨스토이의 경우라면 ‘내적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글쓰기 작업은 ‘피곤한 노동’에 불과했을 뿐 ‘즐거운 놀이’는 결코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톨스토이가 지금 살아 있다고 가정하면 그는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기 어렵다고 보는데, 21세기 중반쯤 가면 ‘위대한 놀이꾼’이 ‘위대한 설교자’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굳어질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톨스토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한시바삐 이혼을 결행하여 진짜 속궁합이 맞는 짝을 찾아나서야 마땅하고, 정 짝을 찾기 어려우면 그가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들을 ‘고백’하는 형식의 글을 써서 스스로 대리배설의 쾌감을 즐김과 동시에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게 낫다. 그래야만 그나마 생의 보람을 찾을 수 있고 행복한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어수선한 과도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정신적 행복(톨스토이의 경우라면 명예욕의 충족)보다는 육체적 행복이 한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가 아닌 과거라 할지라도 민심의 근저엔 언제나 도덕적 심성보다 본능적 욕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이 ‘민심’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빵에 대한 욕구, 곧 ‘식욕’에 바탕을 둔 것이었지 정치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이성적 반발 따위에 근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소련이 무너진 것 역시 이데올로기적 반발 때문이 아니라 본능적 욕구 때문이었다. 소련은 ‘빵의 평등’은 어느 정도 실현시켰지만 식욕 다음에 따라 오는 성욕, 또는 ‘성욕의 대리배설 행위로서의 놀이욕’을 만족시켜주진 못했다. 소련정권이 무너지자마자 관능적인 의상이 유행하고,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고조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나는 소련의 청년들이 공산주의체제에 염증을 느꼈거나 자본주의체제에 매력을 느껴 무혈혁명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성욕의 대리배설로서의 ‘퇴폐적 놀이’에 대한 막연한 욕구 때문에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권력이 대중을 마취시키기 위한 수법’의 대명사 정도로만 간주하는 ‘섹스에 대한 열기’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구 소련의 붕괴과정에서 역력히 드러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한국의 진보주의는 이솝우화 <여우와 신 포도>에 나오는 여우의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독재체제에 대한 항거 심리가 ‘섹스’와 전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은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뿐이다. 북한정권이 폐쇄적 독재체제를 50년 동안이나 존속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빵의 평등’을 어느정도 실현시켰고 유교적 봉건윤리 및 충효사상과 함께 섹스에 대한 억압정책을 철저히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먹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해결되어 민중들의 욕구 즉 ‘민심’이 성욕(또는 놀이욕) 쪽으로 선회했더라면 동구라파나 소련의 경우처럼 독재체제의 붕괴가 서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섹스와 놀이가 철저히 억압되는 것은 물론 빵의 공급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에 민심이 현재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볼 때 세계사는 이제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담론’의 시대에서 ‘성 또는 본능에 대한 담론’의 시대로 접어들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본능적 자아가 도덕적 초자아를 콘트롤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생각이나 여타의 수구적 도덕주의자들의 생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가치관의 전환기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바로 패륜적 범죄나 하극상 사건 같은 것들이다.


  지나간 시대, 즉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담론의 시대’엔 설사 부모를 죽이고 싶다 하더라도 대개 잠재의식 안에 묻어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것이 노이로제로 발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프로이트를 비롯한 여러 정신 분석학자들이 갖가지 콤플렉스의 정체를 밝혀보려고 애쓰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본능적 자아가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는 ‘성 또는 본능에 대한 담론의 시대’로 접어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노이로제 이전에 실제적 행동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프로이트 당시엔 동성애적 잠재욕구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노이로제가 많았지만, 지금은 동성애적 욕구에 기인한 노이로제 환자보다 아예 드러내놓고 하는 동성애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 좋은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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