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살면서 좋은건 버번이나 라이 위스키들을
나름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과
질좋은 쇠고기도 좋은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것임.
질좋은 립아이 잘 구워놓고 버번 한잔 곁들이면 아주 행복함.
간혹가다가 맛이 좋은듯 하면서도 식도를 확 긁고 내려간 후
속에서 헛트림이 나올 정도로 매운맛이 강한
버번이나 라이위스키가 걸릴때면 당황스럽고 난감함.
몇잔 먹은 후 몇년동안 방치한것아 아까워서 요리에 쓰자니
음식 전체에 버번향이 진동하는 경우가 있어서 처치곤란임.....
대표적으로 포로지즈 배럴프루프..
포로지즈는 맛있기는 맛있는데 공복에 마시면 속이 얼얼..
포로지즈 배럴프루프는 값이 나가는데 그런 경우고
보통은 20-30불대 위스키에 그런 지뢰들이 많은데
동네 주류상 아저씨에게 E.H Taylor 스몰배치를 추천받았을때도
30불 후반의 가격때문에 괜히 지뢰 하나 더 들이는거 아닌가 싶었음.
하지만 뭔가 느낌있어 보이는 라벨과 케이스에 그려진
부티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왠지 믿음이 생겼음.
패피 반 윙클에도 할아버지가 있으니 이 할아버지도 왠지 맛을 보장할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음.
또 몇년 전 주인아저씨의 추천을 대차게 씹은 덕분에
아직도 패피 반 윙클의 향도 모르고 애타게 찾아해매는 입장이라 이번에는 말을 들었음.

그날 저녁, 다른 위스키들 보다 몇센티미터 높은 키를 자랑하는
키큰 병목을 비틀어 오픈를 하고 한잔 마셨는데 매운맛은 미미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향과
견과류 계통의 고소함, 고급스런 카라멜 향, 싸지않은 단맛이 조화로웠음.
뭐 하나 튀는게 없고 순차적으로 여러가지 맛들이 느껴짐.
견과류 계통의 고소함이 오래 남기는 하는데 그게 아주 매력적임.
버번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 싶었음.
피니쉬는 부드러우면서도 길고 과일계통의 상큼함과 약간의 민트향이 남음.
이 술이 진정 40불 미만이라니...
엔젤스 엔비를 참 좋아하는데 테일러를 접한 이후로는
엔젤스 엔비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음.
맵고 자극적인 맛이 있어야 진짜 버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테일러 스몰배치 보다는 일라이저 크레이그를 추천함.
다만 술의 장르를 떠나서 테일러 스몰배치가 부쉬밀16보다
더 내 입에 맞음.

아무튼 그 이후로 미친듯이 E.H Taylor 위스키들을 찾아다녔고
운좋게도 배럴 프루프, 싱글배럴 몇병을 구했음.
스몰배치 다 마시고 싱글배럴을 마실 계획인데
테일러 싱글배럴과 패피 반 윙클 15년을 비교하기도 하는 포럼도 있는걸 보니
보통 맛이 아닐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음.
물론 반 윙클 15가 더 맛있다는 의견이 더 많음.
그래도 조금만 발품, 손품을 팔면 반 윙클 10%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버번이
두들겨 맞고 KO당한다고 해도 천상계의 버번과 맞짱이라도 뜰 수 있다는게 어디임..ㅋ
암튼 구할 수 있으면 꼭 구하시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