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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15)

유희자(180.229) 2015.11.11 01:52:28
조회 694 추천 2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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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14)






“너 같은 말썽쟁이는 혼이 좀 나야 돼.”



엘사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안나를 선장실에 집어 던졌다. 몸이 묶여있던 터라 안나는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 쳐졌다. 바닥에 부딪혀버린 머리가 아파왔다. 아마 혹이 났으리라. 그 사이 엘사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선장실 문을 잠가버렸다.

바깥에선 해적들의 약탈이 한창이었고, 몇몇의 졸리 로저 호 소속 해적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장실에는 단 둘밖에 없었다. 좁고 어두컴컴한 선장실을 밝히는 건 책상 위에 있는 램프가 전부였다.



“풀어줘.”



안나의 말에 화가 치민 엘사는 안나의 뺨을 갈겼다. 딱딱한 반지를 끼고 있던 터라 볼이 빨개짐과 동시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 안나는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엘사를 쏘아보았다. 한스에게 맞은 것보다 기분이 더 더러웠다. 몸이 자유로웠다면 저 못된 해적의 심장에 단검을 찔러 넣었을 텐데! 안나는 저주를 퍼붓듯 사납게 말했지만, 엘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지?”

“널 혼내려고.”



엘사가 안나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신장 차이가 꽤 나서 엘사는 안나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마주보는 얼굴이 가까웠다. 엘사에게서 짙은 피 냄새가 났다.



“꼬마들 납치해오지 말라고 누누이 경고도 했고, 도움 안 되는 요정족하고도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는데 넌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넌 내거니까. 오직 나만이 널 죽일 수 있으니까.”



후크 선장은 피터 팬의 손에 죽어왔다. 피터 팬은 후크 선장의 손에 죽어왔다. 피터 팬이 후크 선장을 죽이면 새 후크 선장이 생겼다. 후크 선장이 피터 팬을 죽이면 새 피터 팬이 생긴다. 물리고 물리는 지독한 연쇄는 엘사 J. 후크와 안나 P. 팬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목숨은 안나의 것이고, 안나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된다.

치밀어 오른 분노를 손에 실은 엘사는 안나의 목을 세게 졸랐다가 힘을 풀었다. 안나는 기침을 토하며 외쳤다.



“널 죽여 버릴 거야!”

“요정이 있으나 마나 쉽게 남한테 잡혀버리는 약해빠진 애새끼 주제에 날? 흐- 어디 죽일 수 있으면 한 번 죽여 봐.”



난생 처음 당해보는 조롱에 안나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분노와 모욕감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 거렸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건 서로의 숨소리뿐이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엘사였다.



“...여긴 방해꾼도 없으니 이제 널 혼낼 일만 남았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사는 안나의 턱을 잡고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키스라기보다 폭력에 가까울 만큼 안나를 몰아붙였다. 딱딱한 벽에 어깨를 부딪친 안나가 고통에 신음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엘사의 혀가 안나의 입안을 유린했다. 탐욕스럽게, 약탈하듯. 해적같이.



거의 숨이 막히기 직전까지 가서야 엘사는 입을 뗐고, 안나는 엘사의 어깨에 기대어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두 사람의 입 주변은 타액 범벅이 되어버렸다. 엘사는 발로 안나의 몸을 걷어찼다. 안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다시 쓰러져 버렸다.



엘사의 쇠갈고리가 거칠게 안나의 목을 고정시킨다. 안나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순식간에 목에 생체기가 나며 피가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다. 엘사는 왼손으로 안나의 어깨를 잡고는 목에 난 상처에 혀를 비집어 넣었다. 매우 고통스러워서 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겨우 이 정도에 아프다고 울면 쓰나, 안나 P. 팬.”



엘사는 야비하게 웃으며 안나의 눈물을 핥았다. 안나는 엘사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공포감을 억지로 누르며 소리쳤다.



“죽일 테면 죽여! 죽음 따위, 두렵지 않아!”

“기억력이 몹시 나쁘군, 안나 P. 팬. 널 혼내려 이곳에 데려온 거라고 했을 텐데?



엘사의 키스는 안나가 받은 그 어떤 공격보다 날카롭게 안나를 몰아붙였다. 차라리 엘사의 레이피어에 찔리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만큼 안나를 숨 막히게 했다. 산소가 부족해 졸도해 버릴 정도였다. 안나가 기진맥진해지자, 엘사가 다시 안나를 내동댕이쳤다. 한스에게 붙잡힌 이후로 잠도 못자고 취조를 받고, 얻어맞기까지 했던 안나의 체력은 한계에 달해있었다. 눈앞은 밤처럼 어둑어둑해졌고, 몸도 몹시 둔해졌다.



“이 일도 잊게 되겠지, 넌. 잊어버린 사실도 모르고 멍청하게 또 내 앞에 서겠지.”



돌연 엘사는 광소를 터트렸다.



“이번만큼은 잊지 못하게 될 거다, 안나 P. 팬. 그 몸에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기억을 새겨줄 테니까.”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안나는 엘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램프의 빛을 받아 붉게 보이는 백 금발, 타오르는 푸른 눈동자가 꼭 깊고 깊은 밤바다 같았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쳐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외딴 바다에 조난당한 사람처럼 가빠졌던 숨이 애처로울 만큼 옅어졌다.



“네가 잊어버린 기억까지... 전부 내가 가지고 있어. 오직 나만이-.”



엘사는 더 이상 웃고 있지도 화내고 있지도 않았다.












나룻배 한 척이 해안에 닿았다. 백사장과 지척에 있는 울창한 숲속은 고요를 유지하고 있었다. 곧, 저벅저벅 발소리가 고요를 깨트렸다. 모래를 밟는 두 개의 발이 몇 걸음 가지 않고, 무언가를 거칠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작은 체구의 적갈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였다.

엘사 J. 후크는 안나 P. 팬을 백사장에 버리듯 던져놓았다. 모래는 침대가 되어 안나의 몸을 받혀주었다. 안나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등이 조금 부풀어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걸 보면 아직 숨은 붙어있는 모양이었다.



엘사는 그런 안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숲속으로 들어갔다. 남쪽으로 200보, 동쪽으로 150보를 걸으면 목적지인 인어의 호수가 나온다. 엘사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익숙한 돌무더기를 지나, 더 숲속으로 들어가면 저 멀리 호수가 눈에 보인다.

엘사는 호수 앞에 서서 인어의 이름을 불렀다.



“에리얼-.”



물소리와 함께 호수에서 붉은색 머리칼을 가진 한 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사는 인어, 에리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은 언제나 다쳐서 이곳에 오는군요.”



에리얼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전에 제가 준 약초는요?”

“부하들에게 줬다. 그놈들에게 더 유용할 테니.”

“당신도 많이 다쳤잖아요. 몸이 만신창이야...”

“멋대로 나아버린다고, 이 몸은. 신경 안 쓰면 다 나아있어.”



그녀의 손은 엘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엘사의 얼굴에 말라붙은 피딱지가 젖은 손에 녹아들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옅은 피눈물이 두 세 방울턱 끝에 맺혔다.



“엘사 J. 후크는 너한테 동정 받으러 올 만큼 한가한 몸이 아니야.”



엘사는 그런 그녀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자기 자신도 놀랄 만큼 쉰 목소리였다. 그러고는 에리얼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이 손에 낀 반지를 빼, 그녀에게 내밀었다. 에리얼은 두 손을 모아 반지를 받았다. 엘사가 피투성이가 되든 말든 여전히 무색투명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반지?”

“요정과 직접 맞닥뜨리면 아무 소용없지만 적어도 감시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 모양이야.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더군.”



반지의 효과를 직접 체험한 엘사가 말했다. 실제로 이 반지를 끼고 있는 동안은 요정의 지배를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에리얼은 조심히 반지를 손에 끼웠다. 이로서 엘사는 다시 맨몸이 되었다.



“감사하다고 전해줘요.”

“나중에 네가 직접 감사를 표해.”

“그럴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에리얼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전할 건 또 있다. 날개 부족은 협상에 실패했고, 해적들 반 이상은 찬동했어. 반대하는 해적은.... 없었다. 이게 끝이야.”



엘사는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에리얼은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물속으로 사라졌다.











“안나!”

<안나, 안나! 정신 차려!>



안나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은 너무도 익숙한 땅 밑 집에 있었다. 안나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 주변을 아이들과 팅커 벨이 둘러싼 상태로, 그녀를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대장이 눈을 떴어!”

“큭-”



아이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의식을 잃은 채로 백사장에 쓰러져 있었을 때는 안나가 죽어버린 게 아닌가 덜컥 겁을 먹었다. 하지만 안나는 하루가 지나고 눈을 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피터 팬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안나는 아픈 머리를 짚었다. 지끈지끈 밀려오는 두통에 눈앞이 어질어질 거렸다. 충격 탓일까, 환청까지 들렸다.


- 어째서, 어째서야?! 어째서!


- 넌 평생 그 이유를 알 수 없을걸. 왜냐하면 넌 어린애니까!


<잊어버려요, 피터 팬>


자신의 절규, 누군가의 비탄, 요정의 속삭임이 한데 뒤섞여 안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안나가 깨어난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아이들이 겁을 먹을 만큼, 안나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 이번만큼은 잊지 못하게 될 거다, 안나 P. 팬. 그 몸에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기억을 새겨줄 테니까


“아파, 벨! 아파 죽겠어!!! 아파!! 싫어-!!!”

<안나, 안나! 이런, 상태가 심각해. 안나를 옮겨야겠어!>



안나를 요정의 성소까지 옮긴 팅커 벨은 이 상황을 요정 여왕에게 알렸다. 안나의 몸 위로 요정 가루가 뿌려졌다. 그제야 안나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안나의 몸에서 성한 구석을 찾기가 힘들었다. 워낙 모험을 즐기는 안나인터라 이런 상처를 처음 입는 것은 아니었다. 안나에게 있어서 상처를 입는 일은 익숙했고, 다쳤다 할지라도 요정의 약초를 바르면 금방 나아버린다. 하지만 안나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했던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몸의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팅커 벨은 초조하게 안나와 요정 여왕을 쳐다보았다.



<엘사 J. 후크의 짓이로군요>



요정 여왕이 안나의 몸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충격을 많이 받은 탓에 기억이 역류하고 있어요>



역시 그 저주받은 여자의 짓이었다. 팅커 벨은 요정답지 않은 깊은 혐오와 분노를 드러내며 이를 갈았다.



<용서 못해. 엘사 J. 후크. 절대로!>







-------------------------------------------------------------------------------------------------------------------------------------------



ps. 참고로 말해두자면 쥬미들이 바라는(?) 십구금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걍 잡아먹을 듯이 키스만 함. 안나 정신 잃고 엘사도 체력고갈됨. 엘사도 많이 다친 상태였음. 폭력이든 떡떡이든 1g그램의 체력이 남아있어야 가능한 일....



psps. 3편동안 쳐맞은 안나, 2편동안 피터지게 쌈박질하고 허공답보(?)까지 한 엘사. 하지만 앞으로 더 고생하고 구를 예정. 애도.


pspsps. 다음 편까지 쓰면 외전임. 외전 3편쓰고 음음... 하... 그래도 완결까지 몇 편은 더 써야할듯. 빨리 털고싶다. 나쥬미 떡밥을 왜이리 많이 뿌렸을까...



pspspsps. 이 동네의 흔한 생몰년


피터 팬 : 후크에 의해 전대 피터 팬 사망 ~ 후크에 의해 사망

후크 : 피터 팬에 의해 사망 후, 해적끼리 혈투 & 선장취임 ~ 피터 팬에 의해 사망

요정 : 새로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웃을 때 그 웃음이 가루처럼 부서져 깡총거리고 나가선 요정이 됨 ~  아이가 '난 요정을 믿지 않아'하고 말할 때마다 요정 하나가 죽는다고 함(원작 참고). 수명은 긴것 같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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